문재인 정권이 발탁한 최고의 인물들 중 한 사람 감사원장
그가 있어서 이 암울한 시대에 위안을 찾고 희망을 갖는다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피상적 내용만으로 문재인 정부에서 가장 잘한 인사(人事) 셋을 꼽으라면 질병관리청장 정은경, 검찰총장 윤석열, 감사원장 최재형이다.
이 세 사람 중에서도 감사원장 최재형은 임명 당시 흠결이 거의 없고, 오직 그 인품에 칭송만이 자자했던, 대한민국 고위 공직자들 중에 그 유례가 드문 교과서적 인물이다. 착하고 올곧고 소탈한 그에 관한 일화는 어린 시절에 탐독했던 여느 위인전들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 일화는 물론 언론에 소개된 것인데, 상식을 가진 사람이 이 기사들을 읽을 때 전혀 의문이 들지 않고 그대로 믿고 감동하게 하는 내용이다. 당시 기사를 쓴 기자들이 없는 얘기를 지어 그를 미화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그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우리 같은 사람이 따라 할 수 없는 길을 걸어 온 사람인 것이다.
최재형은 애국심이 투철한 군인, 봉사정신이 몸에 밴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판사 장로 출신이다. 그의 아버지는 6.25 전쟁 초기 대한해협 해전의 영웅으로 유명한 해군 예비역 대령 최영섭이다. 그는 호적상 경남 진해 출생이지만, 1956년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전역한 아버지와 함께 서울 강북의 한 머슴방에 세들어 살며 자랐고, 경기고-서울법대를 나와 판사가 됐다.
최재형 하면 그를 아는 사람들 사이에 회자(膾炙, 회와 구운 고기라는 뜻으로, 칭찬을 받으며 사람의 입에 자주 오르내림을 이르는 말)되는 ‘전설’이 바로 고교 시절 지체(肢體) 부자유 소아마비 친구를 업어서 함께 등하교를 했던 일이다. 이는 그 부모 외에는 아무나 할 수 없는, 그야말로 전설 같은 선행이다.
이것을 쉽게 믿지 못하는 독자들을 위해 필자가 개인적으로 아는 사실 등으로 설명해 드리겠다. 최재형과 그의 등에 업힌 탑승자였던 변호사 강명훈은 두 집안 식구들이 다 다니는 서울 신촌의 한 교회에서 만난 신앙 친구였다. 그들은 보통의 친구 사이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청년 남자가 얼마나 무거웠을 텐데, 고교 3년-대학 4년-사법연수원 2년을 한결같이 업고 다닐 수 있단 말인가?
이렇게 의문을 표하는 이들에게는 강명훈이 좀 가벼운 남학생이었다고 하면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강명훈에게는 실례의 지난 얘기일 수도 있으나 그의 두 다리는 발육이 제대로 안 돼 매우 가늘었으며 늘 접혀진 상태였다. 그렇게 고교와 대학을 1년 차이로(나이는 서로 같다) 다닌 두 친구는 사법고시에 나란히 합격, 1981년 6월18일자 <조선일보>에 ‘신앙으로 승화한 우정10년’이란 제하의 화제 기사로 실려 많은 국민을 감동에 젖게 했다.
최재형은 이 기사에서 “인간애를 실천했을 뿐”이라고 철학적, 종교적으로 말했다. 그는 중증 장애인이면서도 세상을 너그럽게 바라보는 친구에게서 삶에 대해 배웠다고 했다. 그는 이 친구 업어주기 말고도 헌신적인 교회 선교 활동이나 부인(이소연)과 함께 고아들을 위해 일하다 둘을 아들로 입양, 어느 집 사내들보다 더 멋지게 키우는 등의 기사거리가 풍부한 화제의 주인공이다.
이처럼 나라를 위해 일하도록 하늘이 보낸 듯 한 인물을 제대로 알아본 문재인 정부는 일단 점수를 받아야 한다. 그를 감사원장 후보로 낙점해 본인에게 전화로 통보한 이는 당시 청와대 민정 수석 조국이었다. 조국도 그런 점에서는 후한 점수를 받아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사람들이 초심을 잃고 얼굴을 바꾸고 있어 우리를 좌절하게 하고 탄식케 한다.
감사원장 최재형은 지금 검찰총장 윤석열처럼 친문들 눈에 스스로 나가주기를 바라지만 버티고 있는 장관급 기관장이다. 그가 집권 세력들로부터 감사원의 윤석열 취급들 받게 된 것은 문재인 정권이 대선 공약 사업으로 밀어붙여 다수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는, 탈원전 정책의 상징적 조치인 월성 원전 1호기 폐쇄 결정에 관한 감사를 국회 청구로 시작하면서부터다.
최재형이 당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백운규를 직권심리하면서 “대선에서 41%의 지지밖에 받지 못한 정부의 국정 과제가 국민의 합의를 얻었다고 할 수 있겠느냐”라고 했다는 의혹 제기를 집권당 의원이 했고, 진보좌파 언론 매체들이 이를 받아 곧바로 백운규를 인터뷰, 그 발언이 실제로 있었다는 증언을 이끌어냈다.
최재형은 이 ‘폭로’ 하나로 하루아침에 집권 세력 눈에 흠결 없는 선비 감사원장에서 정치하는 권력기관장으로 바뀌었고, 옷을 벗겨 내쫓아야 할 대상으로 집중 포화를 맞기 시작했다.
그의 ‘41% 지지밖에 받지 못한 정부’ 발언은 언론과 의혹 제기 민주당 의원이 편집한 표현으로서 정확하지도 않거니와 그는 나중에 국회에서 “국민의 의견이 충분히 수렴되었느냐는 문제와 관련해 현 정부가 그 공약을 가지고 대선에서 41% 정도 지지를 받았는데, 이것을 국민 대다수의 의견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것 아니냐”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해명했다. 백운규는 당시 최재형에게 월성 1호기의 (경제성) 문제를 ‘국민 대다수’도 아니고 ‘전국민’이 알고 있다고 답변했었다.
그러니까 최재형은 정부가 국민 생활과 국가 장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에너지 정책의 근본을 흔드는 근거를 가지려면 국민 대다수의 동의가 필요할진대, 대선 득표율이 과반이 안되었으니 다시 국민을 설득하는 작업을 거치는 등 신중히 추진해야 할 것이라는 의미로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 졸속으로 밀어붙이면서 많은 중요 절차를 생략하고 은폐, 조작까지 한 관계 부처의 잘못을 객관적으로 지적한 것이다.
국가 행정기관의 업무 추진에 있어서 국민세금 낭비 여부나 정해진 법규대로 직무를 수행했는지 등을 감찰하는, 헌법에 의한 독립 기관인 감사원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임에도 자기들이 진보좌파 아마추어 환경론자들의 건의대로, 또 대통령 문재인이 어떤 영화를 보고 영감을 얻은 대로 수립한 공약 사업에 반기를 들었다고 보고 감사원장을 정치하는 사람으로 몰아 사퇴하라며 집단적인 괴롭힘을 가해 왔다.
그러나 (그의 지난 날 언행으로 보아 당연히) 정치에 뜻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 최재형은 여는 물론 야에도 기우는 듯 한 발언을 일체 하지 않았다.
그는 야당 의원의 ‘제2 윤석열’ 언급에 대해 “감사위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정치적 성향이라는 프레임으로 단정 짓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감사위원의 정치적 성향 문제를 자꾸 거론하는 것은 감사원과 감사 결과에 대한 국민 신뢰를 현저하게 훼손시키는 문제이다. 감사원 입장에서는 그런 논란이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고 분명히 말씀드린다. 그런 논란 자체가 감사원에 대한 압력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유념해 달라”라고 선을 그었다.
조국 사퇴 후 장관 대리로서 정권 뜻을 충실히 받들었던 법무부 차관을 감사위원으로 심고자 한 청와대의 주문을 거부하고 청와대 자문 기구 등에 대한 강도 높은 감사도 진행하며 자리를 꿋꿋이 지켜 오던 그는 엊그제 국감에서 마음에 두어 왔던 말을 쏟아냈다.
“감사 저항이 이렇게 심한 감사는 재임하는 동안 처음이다.”
그는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결정 타당성 감사 과정에서 산업통상자원부, 한수원 관계자 등 피감사자들이) 자료 삭제는 물론이고 사실대로 이야기를 안 했다. 사실을 감추거나 허위 진술하면 추궁하는 게 수없이 반복됐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의 이 증언 하나로 멀쩡한 원전을 없애기 위해 그동안 벌여 왔을 충견 공무원들의 수작과 그에 따라 자동으로 밝혀지는 탈원전 정책의 왜곡과 무리가 국민들에게 고스란히(매우 다행스럽게도) 전달되었다.
이 감사 결과는 곧 발표될 예정이다. 그렇게 되면 산자부, 한수원 등 관계 기관의 핵심 인물들은 징계 조치와 함께 고발까지도 당할 것이고, 탈원전 정책은 마침내 근본적인 전환점(유턴)을 맞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되어야 순리다.
정부 중요 기관의 장을 어떤 사람이 맡는지가 이토록 중요하다. 감사원장 최재형 같은 불편부당((不偏不黨, 어떤 이념, 어떤 편, 어떤 무리에도 치우치지 않고 중도적 입장을 지킨다는 뜻)한 고위 공직자 5명만 지금 이 정부에 있다면 걱정할 일이 없을 것이다.
보수 정당 사람들과 보수 진영 편에 있는 국민들은 최재형이 다음 대통령 후보로 나서 줬으면 하는 바램을 조만간 갖게 되리라고 본다. 그가 감사원장을 그만 두고 어떤 선택으로 계속 나라를 위해 일할 생각을 할 것인지는 본인만이 알 일이지만, 현재로서는 아마도 정치에 발을 내딛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다. 그가 살아온 삶의 궤적과 향기로 볼 때 그렇다. 그는 정치에 욕심을 두고 행동하는 이 같진 않다.
최재형이 보수 진영의 염원을 끝내 뿌리치고 낮은 데서 봉사하며 여생을 보내는 길을 가겠다고 한다면, 나라를 위해서도 무척 아쉬운 일이긴 하다. 그러나 현재 감사원장으로서 보여주고 있는 참다운 고위 공직자의 모습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아부와 몰염치와 거짓말이 횡행하는 이 암울한 시대에 위안을 주고 희망을 갖게 하는 사람이다.
글/정기수 자유기고가(ksjung724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