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내수시장 전년비 7% 감소한 173만대 예상…완성차 비상
현대차·기아 신차 골든사이클 지속…중견 3사 볼륨 신차 없어
올해 국내 자동차 시장이 전년 대비 위축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가뜩이나 실적 악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GM과 르노삼성자동차, 쌍용자동차 등 완성차 중견 3사에 비상이 걸렸다.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볼륨 차급(수요층이 넓은 차급)에서 신차 출시가 잇달아 예정돼 있어 점유율을 더욱 늘릴 것으로 예상되며, 수입차는 과거 수요 부진 상황에서도 꾸준한 성장을 지속해 온 전례가 있지만 완성차 중견 3사는 딱히 난국을 타개할 방도가 눈에 띄지 않는다.
13일 현대차그룹 글로벌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국내 자동차 시장은 173만대 규모로 전년 대비 7%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자동차 내수 시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도 불구, 개별소비세 감면과 신차 출시 등의 효과로 전년 대비 6% 증가한 185만대 규모를 형성했지만, 올해는 지난해의 호조 요인이 희석되며 오히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179만대)보다 더 위축될 것이라는 게 글로벌경영연구소 측의 예상이다.
완성차 업계만 놓고 본다면 시장 위축은 더 크게 다가올 수 있다. 수입차들의 내수 시장 점유율 확대가 빠르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완성차 5사가 4.8%의 성장을 보이는 동안 수입차는 12.3%의 고성장을 나타냈다.
과거 내수 시장이 마이너스 성장을 보일 때도 수입차는 성장을 멈추지 않았었다. 올해 시장 수요가 7% 감소한 가운데 수입차는 성장을 지속한다면 완성차 업체들의 판매 감소폭은 더 커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이같은 시장 위축은 자동차 업계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더욱 심화시킬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국내 시장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보이는 현대차와 기아는 시장 위축을 극복할 수 있는 신차 출시가 다수 예정돼 있는 반면, 중견 3사는 볼륨 측면에서 크게 기여하기 힘든 수입 판매 차종 외에는 별다른 기대요인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1년여간 K5, 쏘렌토, 카니발 등 볼륨 차종의 풀체인지 모델을 잇달아 히트시키며 신차 골든사이클 효과를 제대로 본 기아는 브랜드 및 엠블럼을 바꾸고 새출발하는 올해도 신차 붐을 이어간다는 전략이다.
기아는 올해 풀체인지(완전변경)로만 3종의 신차 출시를 예정해놓고 있다.
우선 1분기 준대형 세단 K7 후속 모델을 선보여 그랜저의 독주 견제에 나선다. 일각에서는 기아차가 K7의 차체 크기와 사양, 동력성능을 업그레이드한 K8으로 출시해 그랜저와 차별화되는 수요층을 겨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2분기에는 기아의 대표 볼륨 모델 중 하나인 준중형 SUV 스포티지 5세대 모델이 출격한다. 지난해 히트작인 쏘렌토와 닮은꼴 외양을 갖출 것으로 보이는 스포티지는 가솔린, 디젤과 함께 하이브리드까지 다양한 라인업을 갖출 것으로 예상된다.
7월에는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를 적용한 기아 최초의 전용 전기차 CV가 출시된다. CV는 1회 충전으로 500km 이상 주행하고, 4분이면 100km 주행 가능한 급속충전이 가능해 기존 전기차들과는 차별화된 편의성과 효율성을 제공할 뿐 아니라 정지상태에서 100km/h까지 3초대에 주파하는 강력한 퍼포먼스를 갖출 예정이다.
풀체인지는 아니지만 디자인과 상품성을 크게 개선한 페이스리프트 모델도 내놓는다. 1분기에는 K3, 2분기에는 K9이 출격한다.
현대차그룹 산하 완성차 브랜드들은 최근 들어 페이스리프트(부분변경) 타이밍에도 큰 폭의 디자인 변경을 가하는 추세를 감안하면 K3와 K9 페이스리프트 모델들도 상당한 신차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 역시 막대한 판매량을 보장해 줄 신차들을 여럿 대기시켜놓고 있다. 1월부터 인도를 시작한 제네시스 GV70은 첫 달 판매량이 1000대에 불과했지만 물량 공급이 본격화되는 이달부터는 폭발적인 성장이 예상된다. 지난해 12월 22일 계약 첫 날 이미 사전계약 물량 1만대를 돌파한 바 있다.
제네시스 브랜드의 두 번째 SUV이자 첫 번째 중형 SUV인 GV70은 빼어난 디자인과 고성능, 첨단 편의·안전사양을 갖추고 상위 차급인 GV80에 비해 낮은 진입장벽으로 제네시스의 새로운 볼륨모델 역할을 톡톡히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제네시스의 플래그십(기함) 세단 G90도 이르면 올해 말 풀체인지 모델로 출시된다. 새로 출시되는 G90 풀체인지 모델은 에쿠스와 EQ900 시절의 ‘사장님차’ 이미지를 벗어 던지고 수입 프리미엄 대형 세단들과 정면승부를 펼칠 만한 경쟁력을 갖출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1년여간 K5, 쏘렌토, 카니발 등 볼륨 차종의 풀체인지 모델을 잇달아 히트시키며 신차 골든사이클 효과를 제대로 본 기아자동차는 올해도 비장의 무기들을 준비하고 있다.
현대차 브랜드로는 스타렉스 후속 모델인 ‘스타리아’가 올 상반기 중 출시된다. 지난 2007년 이후 무려 13년간 풀체인지가 없었던 스타렉스를 단종시키고 새로운 차종으로 대체한다는 계획이다.
스타리아는 기존 포터와 플랫폼을 공유해 승합차로 분류되던 스타렉스와 달리 기아차 카니발의 플랫폼을 사용해 편안한 승차감을 갖춘 미니밴으로 재탄생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소형 상용차’였던 현대차 내 차종 분류도 ‘RV’로 바뀔 것으로 보인다.
E-GMP 플랫폼을 적용한 전용 전기차 아이오닉5와 제네시스 JW(프로젝트명)도 올해 출시된다. 아이오닉5의 경우 기아 CV보다 앞선 4월에 출시될 예정이다.
이처럼 현대차와 기아가 공격적 신차 출시를 준비하고 있는 반면, 중견 3사는 판매량에 크게 기여할 만한 신차 출시계획이 눈에 띄지 않는다.
한국GM의 경우 올해 풀체인지와 페이스리프트 모델을 포함, 4개 차종을 출시할 예정이지만, 국내에서 생산하는 신차는 전무한 실정이다.
출시가 확정된 모델은 순수 전기차 볼트EUV다. 기존 CUV 형태의 전기차 볼트EV의 SUV 버전인 볼트EUV는 넓은 실내공간과 활용성으로 높은 경쟁력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다만 이 차는 제너럴모터스(GM) 본사에서 수입해 판매하는데다, 시장이 한정된 전기차라는 점에서 한국GM의 판매량을 늘려주는 데는 한계가 있다. 올해 환경부의 보조금을 지급받을 수 있는 승용 전기차는 7만5000대다. 보조금 없이 전기차를 구매하는 소비자는 거의 없으니 시장이 이정도 규모로 한정되는 셈이다.
그밖에 국내 소비자들 사이에서 관심이 높은 풀사이즈 SUV ‘타호’를 비롯, 트레일블레이저의 형님 격인 ‘블레이저’, 콜로라도보다 더 큰 사이즈의 대형 정통 픽업트럭 ‘실버라도’ 등의 출시도 검토하고 있지만 이들 역시 많아야 월 수백대 판매 정도나 기대할 수 있는 수입 차종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GM 자체 브랜드로 판매되던 경상용차 라보와 다마스가 단종된 것도 한국GM 판매량에는 마이너스 요인이다. 라보와 다마스는 비록 수익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했지만 연간 7000대 이상의 판매량을 보장해주던 차종이었다.
지난해 신차 부재로 완성차 5사 중 유일하게 내수 판매에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쌍용차는 올해 첫 전기차 모델 E100을 출시할 예정이다.
국내 첫 준중형 SUV 전기차인 E100은 코란도를 기반으로 한 넓은 차체에 LG화학의 고성능 배터리팩을 탑재해 1회 충전 주행거리 480km 수준을 확보해 넓은 수요층을 공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다만 경영난 속에서 새 주인 찾기에 난항을 겪는 가운데 단기 법정관리인 P플랜(사전회생계획·Pre-packaged Plan)을 모색하고 있는 형편이라 신차 출시가 계획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새 주인 찾기가 성공적으로 이뤄져 E100이 출시된다고 해도 시장이 한정된 전기차라는 점에서 쌍용차의 판매실적을 끌어올려주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XM3를 출시해 신차효과를 톡톡히 봤던 르노삼성은 올해는 아예 신차 없이 버텨야 한다. 풀체인지는 물론, 페이스리프트 모델도 출시 계획이 없다. SM6와 QM6 등 주력 차종들이 모두 지난해 페이스리프트를 마쳤으며, 르노로부터 수입해 판매하던 QM3도 2세대 풀체인지 모델로 교체하며 캡처로 이름을 바꾼 상태다.
이같은 상황은 현대차와 기아로의 쏠림 현상을 더욱 심화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완성차 5사 내 현대차·기아의 점유율은 2019년 82.3%에서 지난해 83.4%로 상승한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소비자들은 신제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크고, 현대차와 기아는 글로벌 자동차 업계에서도 모델체인지 속도가 매우 빠르기로 유명하다”면서 “반면 한국GM과 르노삼성은 GM과 르노 본사의 신차 출시 스케줄에 연동돼 있고, 쌍용차는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지 못해 시장의 요구에 즉각 대응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