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기아, 주주총회서 '위기 돌파' 강조
올해 키워드는 '전기차+SDV+수익성 유지'
첫 외국인 CEO에 쏠린 시선… '美 돌파' 강조
전기차 의지 여전… 라인업 확대+신시장 개척
현대차·기아가 올해 주주총회에서 트럼프 리스크를 비롯한 글로벌 위기에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했다. 캐즘(일시적 정체기)에 더해 강화된 배출가스 규제, 전기차 보조금 폐지 등 문제가 산적해있지만 전기차에 대한 투자 의지 역시 강력하게 드러냈다.
올해 현대차와 기아의 정기 주주총회에서는 글로벌 경영 환경에 내려앉은 위기감이 짙게 깔렸다. 무뇨스 사장은 20일 서울 서초구 엘타워에서 열린 제57기 주주총회에서 인사말을 통해 "2025년 경영환경은 무역 및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환율 및 미 금리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고 무역 갈등 및 보호 무역 기조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고 했다.
지난 14일 먼저 주주총회를 연 기아 역시 전례없는 위기상황을 강조했다. 송 사장은 "지난 반세기 동안 지속됐던 세계화 추세가 지역주의, 자국 중심주의로 회귀하며, 국제간 교역질서는 새로운 재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배출가스, 연비 규제 등 규제 장벽 역시 강화되는 추세로 친환경차 위주의 사업 전환에 대한 요구가 지속 확대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올해 현대차·기아가 유독 위기를 강조하는 데에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으로 인해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관세, 전기차 전략 등 변수가 커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BYD 등 중국 전기차의 맹추격, 유럽 배출가스 규제 강화 등 각종 악재 역시 위기감을 키우는 요소다.
현대차·기아는 이런 위기 상황을 그룹 차원의 '유연한 대응'으로 정면 돌파하겠다고 강조하면서도, 양사 사장이 무게를 둔 지점에는 차이가 있었다.
호세무뇨스 현대차 사장은 사실상 트럼프 리스크 대응에 초점을 맞췄다. 첫 외국인 CEO이자, 미국 시장에서의 성장 주역인 만큼 주주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함으로 해석된다. 반대로 송호성 기아 사장의 경우 전기차 보급 의지를 앞세우면서 미국을 비롯한 유럽 등 주요 시장에서의 성장 의지를 폭넓게 강조했다.
무뇨스 사장은 "미국에서는 메타플랜트 아메리카 공장에서 아이오닉5, 아이오닉9을 생산해 전기차 판매를 확대할 계획이다. 또 혼류 생산 시스템을 구축해 하이브리드 모델도 추가 생산할 계획"이라며 "주요 시장인 미국 내 현지화 전략을 통해 어떠한 정책 변화에도 유연히 대응하겠다"고 했다.
현대차의 경우 올해 위기 돌파 전략으로 ▲권역별 최적화 전략 ▲EV리더십 강화 ▲상품 및 서비스 혁신 ▲전략적 협업 확대 ▲조직문화 최적화 등 5가지를 제시했다.
권역별 최적화의 경우 미국, 유럽, 중국 등 주요 시장의 상황에 따라 맞춤형 대응을 통해 수익성을 지속해가겠다는 전략이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으로 불확실성이 높아진 미국의 경우 하이브리드차 혼류 생산 등 현지화 전략으로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했다.
유럽 시장과 중동 시장에 대해서는 "유럽은 캐스퍼EV, 아이오닉9을 비롯한 전기차 신모델 출시, 규제 대응 엔진 탑재 등을 통해 환경 규제에 적기 대응할 계획"이라며 "사우디 아라비아에서는 현지 파트너사와 함께 CKD 생산기지를 구축하여 중동 시장을 적극 공략해갈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 상황이 좋지 못한 중국의 경우 전기차 대응력을 높이겠다고 했다.
자동차를 넘어 AAM(도심항공 모빌리티), 자율주행, 수소, 로보틱스 등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는 만큼 글로벌 파트너십을 확대하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특히 아마존, 웨이모, GM 등 주요 협력사가 미국 업체로 이뤄진 만큼 이 역시도 트럼프 리스크 대응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그는 "메타플랜트 아메리카 공장 물류에 수소전기트럭을 도입해 운용하고 있다. 다양한 이니셔티브를 통해 EREV, SDV, 배터리 기술 개선 등 신기술 개발에 지속 투자할 것"이라며 "당사는 아마존, 웨이모, GM 등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기차와 관련해선 캐즘(일시적 정체기)에 더해 각국의 전기차 보조금 폐지, 강화된 배출가스 규제 등의 숙제가 산적한 상황임에도 투자의지를 확고히 했다. 현대차는 작년 10년간 900억 달러를 투자해 신형 전기차 21종을 개발하고, 하이브리드 모델을 현 7종에서 14종으로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발표한 바 있다. 현대차의 글로벌 전기차 판매목표는 200만대다.
무뇨스 사장은 "3열 SUV 아이오닉9과 소형 캐스퍼EV 런칭을 통해 신규 세그먼트에 진입하고, 북미에서는 북미 충하전표준(NACS) 적용 및 전기차 충전 네트워크 '아이오나'를 통한 인프라 확충 등 사용자 편의성도 개선해 나가고 있다"며 "아이오닉 라인업을 지속적으로 확장해 더 큰 규모의 경제 효과를 창출할 예정이다. 배터리의 비용 절감, 효율성 증대, 주행거리 향상도 함께 실현해 나가겠다"고 했다.
폭넓게 사업분야를 다룬 현대차와 달리 기아의 경우 미래 경쟁력의 중심으로 추진 중인 '전기차'에 초점을 맞췄다. 올해 출시된 EV4와 하반기 출시 예정인 EV5, PBV 등을 통해 전기차 라인업을 구체화하고 2026년까지 풀라인업을 구축해 '위기'를 '기회'로 만들겠다는 목표다.
그는 "전동화 전략의 다음 단계로 본격적인 EV 전환을 가능케 할 대중화 모델을 출시할 예정"이라며 "2024년 EV3를 시작으로 EV4, EV5, EV2를 2026년까지 순차적으로 출시해 대중화 모델 풀라인업을 완성하겠다"고 했다.
특히 올해부터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PBV(목적기반 모빌리티)라는 신시장 구축에 나서는 만큼 전기차 의지를 더욱 강력하게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기아는 올해 국내 및 유럽 시장에서 첫번째 PBV 모델인 PV5를 출시하며, 이를 위해 화성에 PBV 전용 공장을 구축한 바 있다. PBV는 목적에 맞게 차량 내부를 제조사 차원에서 컨버전해 판매하는 전기 맞춤형 상용차다.
송 사장은 "올해 기아가 첫 PBV 모델 출시를 앞두고 있다"며 "맞춤형 차량 제작사업인 특수차량 사업에서 축적한 40년 이상의 경험과 역량을 바탕으로, 이지스왑, 컨버전 생태계 구축, 유틸리티별 트림 출시 등을 추진하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