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태로운 레버리지 전략에도 계속된 침묵
바뀌지 않는 금융문화 개선 방안 고민해야
유럽인들이 새로운 바닷길을 찾아 대양에 몸을 싣던 대항해시대 속 영국인들은 라이미(Limey)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따돌림을 받았다. 오랜 바다 생활에 뒤따르는 괴혈병을 이겨내기 위해 오렌지를 먹었던 다른 이들과 달리 영국 선원들은 라임으로 그를 대신했던 까닭이다. 하지만 어리석었던 쪽은 영국이 아니었다. 오렌지보다 비타민C가 더 많아 괴혈병 예방에 효과적이었던 라임은 훗날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인 영국을 만든 숨은 공신이었다.
하지만 이런 라이미들은 상대방에겐 탐욕의 상징이었다. 영국이 경쟁국들보다 라임을 싸게 들여올 수 있었던 이유는 식민지 덕분이었다. 그리고 그 라이미들은 아프리카와 중동을 넘어 아시아까지 찾아와 불공정 거래로 배를 불렸다. 한 때 인류를 멍들게 했던 제국주의의 서막이다.
이로부터 수백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또 다른 이름의 라임이 욕망의 역풍을 맞고 있다. 1조원 가까운 손실에 직면한 라임자산운용 펀드 얘기다. 라임 펀드는 빚을 내 투자하는 레버리지 전략에 기대 위태로운 다리를 여러 개 건너 온 상품이다. 내 돈 100만원을 갖고 1%의 수익률을 올리면 1만원에 불과하지만, 여기에 빌린 돈 900만원을 얹어 똑같은 투자 수익을 낸다면 10만원까지 벌 수 있다는 논리다.
라임은 이 위에 이른바 모자(母子) 펀드 구조를 더했다. 레버리지를 있는 대로 끌어당기기 위한 수단이었다. 모자 펀드는 그 명칭처럼 여러 개의 자식 펀드를 통해 모은 투자금을 몇몇의 엄마 펀드가 통합 운용하는 방식이다. 자펀드를 많이 만들면 만들수록 투자금 모집은 원활해진다. 이에 라임은 불과 3개 모펀드만 갖고 자펀드를 157개까지 불려 나갔다.
수익률만 확실했다면 라임 펀드의 결말은 모두에게 해피엔딩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역시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었다. 157개 상품에서 모인 막대한 투자금은 고작 3개 펀드의 실적에 운명이 갈렸다. 과도한 레버리지 탓에 작은 수익률 균열은 자펀드들을 통해 일파만파 확대됐다.
금융사와 당국, 투자자들은 하나 같이 자신이 원고이며 다른 이가 피고가 돼야한다고 손가락질한다. 라임 펀드를 주로 판 은행들은 상품을 만든 자산운용사의 과실이 크다고 주장한다. 금융당국은 금융사들이 위험을 알면서도 펀드를 계속 팔았다며 책임을 물을 모양새다. 투자자들은 손실 가능성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며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라임 펀드를 사고 팔 때 각자의 속마음은 분명 이와 달랐을 거다. 은행은 상품 판매 수수료에, 투자자는 저금리 속에서의 높은 수익률에 눈독을 들였을 테다. 자본시장과 펀드 활성화를 부르짖던 금융당국도 피해가 손에 잡히기 전까진 묵묵부답이었다. 서로의 욕심이 만난 침묵 속에서 라임 펀드는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이번 라임 사태도 결국 금융인의 부정과 당국의 방관, 맹목적인 투자 수요의 악순환이 맞물린 참사로 마무리될 공산이 크다. 잊을 만하면 반복되는 대규모 금융 상품 손실 사태의 전형적 패턴이다. 외형은 몰라보게 성장했지만 여전히 금융문화는 달라진 게 없다는 뒷말이 맴도는 이유다.
수많은 투자자들의 재산을 한 순간 날리게 한 금융인의 범죄행위는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 이런 잘못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세워진 금융당국도 직무유기가 없었는지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제대로 내용을 이해하지도 못한 상품에 수억원을 집어넣는 소비자들의 안일한 투자도 이제는 개선돼야 할 시점이다.
라임은 훌륭한 비타민 공급원이었지만, 어느 순간 제국주의의 간판이 됐다. 펀드도 순리대로 활용되면 자본시장의 윤활유 역할을 톡톡히 할 수 있는 도구지만, 언제부턴가 금융의 탐욕을 떠올리게 하는 단어가 됐다. 공교롭게도 이 둘이 만난 라임 펀드는 본연의 역할보다는 부작용만 부각된 상처로 남았다. 이제는 순기능이 발휘되도록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