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서만 2000억 넘게 불어
건전성 관리 압박 계속 거세질 듯
국내 5대 은행들이 부동산업체에 내준 대출에서 불거진 연체가 올해 들어서만 2000억원 넘게 불어나며 8500억원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잠재돼 있던 위험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하면서 대출의 질에도 균열이 이는 모양새다.
금융당국의 부동산 PF 구조조정 압박이 거세지면서 관련 대출의 건전성 관리를 둘러싼 은행권의 긴장감은 날이 갈수록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31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말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개 은행이 부동산업체에 내준 대출에서 발생한 고정이하여신은 총 8425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37.3%(2288억원) 늘었다.
은행은 보통 고정이하여신이란 이름으로 부실채권을 분류해 둔다. 고정이하여신은 금융사가 내준 여신에서 통상 석 달 넘게 연체된 여신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금융사들은 자산을 건전성에 따라 ▲정상 ▲요주의 ▲고정 ▲회수의문 ▲추정손실 등 다섯 단계로 나누는데 이중 고정과 회수의문, 추정손실에 해당하는 부분을 묶어 고정이하여신이라 부른다.
은행별로 보면 국민은행의 부동산업 관련 고정이하여신이 4465억원으로 같은 기간 대비 41.4% 증가하며 조사 대상 은행들 중 최대를 기록했다. 우리은행 역시 1176억원으로, 신한은행은 1052억원으로 각각 123.1%와 14.3%씩 증가하며 해당 금액이 1000억원을 넘어섰다. 농협은행도 946억원으로, 하나은행은 786억원으로 각각 12.9%와 13.1%씩 부동산업 고정이하여신이 늘었다.
이처럼 부실이 꿈틀대고 있는 배경에는 생각보다 길어진 고금리 여파가 자리하고 있다. 높은 금리로 인해 부동산 시장이 크게 위축되면서 관련 업체들의 부담이 커지고 있어서다.
한국은행은 2022년 4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사상 처음으로 일곱 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이중 7월과 10월은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했다. 이에 따른 한은 기준금리는 3.50%로, 2008년 11월의 4.00% 이후 최고치를 올해 8월까지 유지해 왔다.
특히 부동산 PF 대출은 위험의 진앙으로 꼽힌다. 부동산 PF는 건물을 지을 때 시행사가 공사비를 조달하기 위해 이용하는 금융 기법이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미분양이 속출하자 부동산 PF 대출을 타고 위험이 전이되는 양상이다.
결국 금융당국이 칼을 꺼내 들면서 긴장감은 한층 고조되고 있다. 부동산 PF 연착륙을 위해 부실 사업장에 대한 정리에 착수하며 옥석 가리기가 본격화하는 분위기다. 이를 위해 강화된 부동산 PF 사업성 평가 기준이 본격 적용되면서 부실 우려 등급 사업장은 속출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금융당국의 사업성 평가 결과 경·공매 등 정리나 신규 자금 투입을 통한 재구조화가 필요한 유의(C)·부실우려(D) 등급 여신은 22조9000억원 규모로 집계됐다. 금융사들이 제출한 재구조화·정리 계획에 따르면 지난 10월 말까지 3조8000억원, 올해 말까지는 9조3000억원, 내년 상반기까지는 16조2000억원이 완료된다.
다만 대형 은행들의 경우 이같은 부실 여파에서 다소 빗겨서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제1금융권인 은행권의 부동산 PF는 대부분 외부 기관의 보증을 끼고 선순위 대출이 이뤄진 만큼, 부실 위험이 당장 크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시중은행들의 경우 비교적 부동산 PF 여신이 제한적이고, 위기 흡수 여력도 충분하다"면서도 "다양한 금융권이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어 불확실성이 큰 관련 사업의 특성을 고려하면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건전성 관리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