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패(牌) 읽힌 사드 도박, '전략적 모호성' 걷을 때 됐다
중동 희망하는 사드, 원치 않는 한국에 묵힐 까닭 없다
미국 방문 때 가부(可否) 매듭 지어 불확실성 낮춰야
중동 희망하는 사드, 원치 않는 한국에 묵혀둘 까닭 없다
대통령 미국 방문 때 가부(可否) 매듭 지어 불확실성 낮춰야
8일(현지시각) 세계 특히 미국인의 모든 눈은 트럼프 대통령의 러시아게이트 수사 중단 강요 의혹에 대한 코미 전 FBI 국장의 미 상원 정보위원회 청문회 증언에 쏠렸다. TV 시청률이 가장 높다는 슈퍼볼(프로미식축구 챔피언 결승전) 실황 중계를 뛰어 넘는다는 말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런데 CNN은 코미 청문회 실황중계 중 긴급속보 형식으로 THAAD(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국배치가 suspend(중단)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미국 국민들은 아마도 이 소식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 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국무장관, 국방장관 그리고 안보보좌관을 불러 한반도 안보상황에 대해 집중 협의를 했다. 그리고 미 국무성 대변인은 아주 이례적으로 트럼프의 사드 긴급회의 소식을 브리핑하면서 참석자와 의제를 소상하게 공개했다.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드배치를 둘러싼 설왕설래에 대해서 사실상 가장 고강도의 불쾌감을 피력한 것이다. 그러자 몇 시간 후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직접 청와대 춘추관으로 내려와 “사드 약속을 근본적으로 바꿀 의도가 없다”며 긴급진화에 나섰다.
‘모호성의 원칙’ 줄타기의 예고된 압박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사드 문제에 대해서는 가타부타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이른바 ‘모호성의 원칙’을 앞세워 애매모호한 발언으로 일관했다. 그런데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국방부의 사드 관련 보고 누락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지금 사드 배치 문제는 경우에 따라서는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환경영향평가 등의 국내 절차를 거치게 되어, 사실상 배치된 것도 아니고 배치되지 않은 것도 아닌 그런 상태로 가게 되었다.
그렇다고 연초부터 금도를 벗어난 사드 보복을 감행하고 있는 중국이 흡족해 하는 것도 아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사실상 대외선전매체)는 “한국이 사드 배치의 속도를 늦추는 것처럼 하고 있지만 이런 '지연'과 '취소하지 않는 것'은 각각 중국과 미국에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평가절하 했다. 환구시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중대한 전환점이 없다면 ‘한류’의 쇠락을 되돌리기 어려울 것”이라며 압박의 강도를 높였다.
사드 문제에 대한 낭만적․감성적 접근의 덫
문재인 정부는 사드 문제에 상당히 낭만적․감성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 같다. 사드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필요가 없어질 테니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트럼프와 김정은 사이에서 조정자 역할을 하고, 미국과 북한이 협상을 통해 관계정상화를 이룬다면 북한이 핵을 순순히 포기할 것이라고 보는 듯하다. 다만 그 때까지 말미가 필요하니 미국과 중국에 각각 그들 구미에 맞는 자세를 취하면서 조금 시간을 끌어보자는 심산인 듯하다.
한가로운 소리다. 북한은 파키스탄 모델로 맹렬하게 가고 있다. 핵무기 전력을 보유하니 P-5(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등 공식 핵보유 5개국)도 어쩔 수 없이 파키스탄을 사실상의(de facto)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했던 전례를 따르려 한다. 10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도 “미국도 핵과 대륙간탄도탄(ICBM)을 보유한 나라와는 감히 전쟁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며 핵무기 보유를 포기했다가 정권이 붕괴된 리비아와 이라크의 사례를 거론했다.
사드 문제는 한미동맹의 리트머스 시험지
사드 문제를 두고 우물쭈물하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미국 조야의 불신이 점증하고 있다. 사드에 대한 미국의 정의는 확실하다. 사드는 동맹국을 보호하고 주한미군을 보호하는 전략자산으로 규정한다.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거하여 주한미군 2만8,500명이 전초(前哨)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유사시 작계5027에 의해 증원군이 한국에 도착할 때까지 그들을 지키고 증원군의 한국 내 전개를 보호하는 방어무기가 바로 사드다. 그런데 그것을 배치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그들에게는 맨몸으로 북한을 막으라는 것과 다름 아니다.
사드 문제가 지금과 같이 계속 지루하게 지속될 때는 미국의 입장에서도 과연 한국과 미국이 함께 전쟁을 치렀던 동맹인가 하는 부분에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 세계에 전개되어 있는 미군의 최고 지휘관들이, 특히 중동을 관장하는 중부사령부는 중동지역에 사드배치를 간절하게 희망하고 있다. 현재 미국도 5개 포대밖에 없는 사드를 굳이 원하지도 않는 한국 내에서 그냥 묵혀둘 까닭이 없다. 얼마 전 방한했던 딕 더빈 미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가 사드의 철수 가능성에 대해 말한 것도 그런 흐름의 일환이다.
지금 성주에 배치되어 있는 사드는 X밴드레이더와 2문의 발사대다. 나머지 4문의 발사대(사드 1개 포대는 6문의 발사대로 구성)는 왜관의 미군 기지에서 잠자고 있다. 그나마 진보시민단체가 성주 사드기지를 사실상 봉쇄하다시피 하여 X밴드레이더가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 고압전류 공급설비공사를 착수조차 하지 못한 상태에서 기름으로 발전기를 돌려 근근이 작동하고 있다. 그런데 그 기름을 제대로 공급할 수가 없어 헬리콥터로 실어 나르고 있는 형편이다. 며칠 전 실링 미국 미사일방위청장(해군 중장)이 주한미군사령관의 요청에 따라 급거 방한하여 성주 사드기지를 돌아보고 갔다. 심상치 않은 조짐이다.
사드 철수와 코리아 리스크의 확대 가능성
웩 더 독(Wag the Dog).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는 뜻이다. 영화 제목이기도 하다. 탄핵 위기에 몰린 미국 대통령이 알바니아와 가상전쟁을 꾸밈으로써 외부의 위기를 통해 내부의 갈등을 해결하려한다는 그런 내용이다. 실제 클린턴 대통령 당시의 르윈스키 스캔들 그리고 수단과 아프가니스탄 공습을 모티브로 했다는 말도 있다. 문제는 현재 트럼프 정부도 웩 더 독의 유혹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면담했던 딕 더빈 상원의원은 “(문 대통령이) 북한을 억지하기 위해서 미국보다는 중국과 협조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은 자신들의 국익을 위해서라면 굳이 싫다는 한국에 머무를 까닭이 없을 것이다. 태평양을 지키는 방어선은 일본-필리핀-호주로 이어지는 라인을 지키면 된다. 사드문제로 한미동맹의 축이 흔들리기 시작하고, 주한미군의 철수 가능성 이야기가 슬슬 나올 수도 있다. '코리아 리스크'가 커지는 것이다. 그러면 한국에 투자하고 있는 외국자본들은 한국의 안보상황을 우려하면서 한국 시장에서 썰물 빠지듯 빠져나갈 것이고, 한국의 가치 하락(코리아 디스카운트)은 우리 경제에 엄청난 깊은 주름살을 지울 것이다.
제일 나쁜 선택은 아무런 선택도 하지 않는 것
사드를 둘러싼 논란의 시작이 전임 박근혜 정부의 애매모호한 3-NO 정책(사드 배치와 관련하여 요청도 협의도 결정도 없었다)에서 시작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북한이 지난해 두 차례에 걸쳐 핵 실험을 하고 금년 들어서 계속적으로 미사일 발사를 함으로써 긴급하게 사드 배치가 결정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사드를 두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전략적 모호성으로 포장된 우리의 패를 이미 미국도 중국도 북한도 다 읽고 있다. 카드를 치는데 배팅할 밑천도 넉넉지 않은 데 게다가 나의 패까지 다 읽혔다면 게임의 결과는 보나마나다. 그렇다고 마냥 시간을 끌 수 있는 형편도 못된다. 어떤 결정이든 아무런 결정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세상에 공짜 점심이 없고, 산 좋고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은 없는 법이다. 6월 말 문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할 때 가(可)든 부(否)든 매듭을 지어 불확실성을 조금이라도 낮추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글 / 황태순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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