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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감독의 ‘도둑 복귀’ 도운 방송사·제작사 [박정선의 엔터리셋]


입력 2021.10.03 09:27 수정 2021.10.03 09:26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미투 가해자 조현훈 감독 '홈타운' 작가 참여 논란

필명 사용했지만 "숨기려는 의도 없었다" 해명

지난 2017년 10월, 미국의 한 영화제작사인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폭력을 고발하는 글이 SNS에 올라왔다. 피해자들은 ‘#me too’(미투)라는 해시태그도 함께 달았다. 해외에서 시작된 이 미투 운동은 국내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서지현 검사가 검찰 내의 성폭력을 고발하면서다. 이후 미투 운동은 정치계와 종교계는 물론 연극계, 연예계까지 확산하면서 대중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tvN

미투 운동은 일부 부문별한 폭로와 사실 왜곡으로 긍정적 의미가 퇴색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대부분 기존 남성 중심적인 조직문화에서 성평등한 조직문화로 변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지지를 받으면서 더욱 확산됐다.


특히 대중의 인기로 먹고 사는 연예계 종사자들의 경우는 가해자로 지목된 이후 활동을 모두 중단했고, 복귀 역시 쉽지 않았다. 미투 가해자로 지목됐지만 해당 사건이 공소시효 만료로 내사 종결되면서 오달수가 지난해 11월 영화 ‘이웃사촌’으로 복귀한 것이 유일했다.


당시 오달수의 복귀를 두고 우려의 시선도 쏟아졌다. 최근 성범죄에 연루됐던 예술인들이 속속 복귀하면서 나쁜 선례를 남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지난달에는 2016년 성매매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던 배우 엄태웅이 자숙 4년 만에 영화 ‘마지막 숙제’로 복귀한다는 소식까지 전해졌던 터다.


우려가 높아지고 있던 중, 더 황당한 복귀 방식이 대중의 분노를 샀다.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돼 활동을 중단했던 조현훈 감독이 필명(주진)으로 tvN 수목드라마 ‘홈타운’ 작가로 참여한 것이다. 조 감독은 제작사를 통해 “잘못을 잊지 않고 있다” “당시에도 지금도 그 일을 부정하거나 숨기려고 하는 의도는 없었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그의 ‘반성과 자숙’에 대해 대중적 공감대가 형성될 리 없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그는 감독조합의 징계처리에 성실히 임하지도, 피해자에게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충분한 자숙을 거쳤다고 스스로 판단하는 것 자체가 지탄 받아 마땅하다. 심지어 필명에 숨어 자신의 정체를 떳떳하게 밝히지 못하는 상황에서 ‘도둑 복귀’를 택한 태도 역시 ‘숨길 의도가 없었다’는 그의 사과에 반하는 행동이다.


논란이 커지자 뒤늦게 수습에 나선 제작사, 방송사의 부적절한 대처도 도마에 올랐다. 제작사 스튜디오드래곤은 편성 확정 후 촬영이 임박한 상태에서 논란을 인지했다고 설명했다. 작품을 접을 경우 관계자들의 피해가 커질 것을 우려해 쉬쉬한 것이다. 그러면서 제작사는 현재 방송 및 VOD 크레디트에서 작가 이름을 모두 삭제하는 것만으로 논란을 잠재우고자 했다.


이들의 입장대로라면, 조 감독의 정체를 알면서도 방송을 강행한 것이나 다름없다. 더구나 대중들이 알기 전까지 제작사와 방송사가 합심해서 조 감독을 필명 뒤에 숨겨주면서 그의 도둑 복귀를 도운 꼴이다. 가해자로 지목됐던 조 감독은 물론, 제작사와 방송사의 책임 역시 가볍지 않다는 말이다.


배신감을 느낀 시청자들이 라이브톡이나 SNS 등을 통해 ‘홈타운’의 ‘불매’를 외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미투 당시 가해자들이 온갖 방식을 동원해 슬그머니 복귀하면서, ‘이런 방식으로도 복귀가 가능하겠다’라는 잘못된 인식이 생기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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