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틴 다에 役 캐스팅
"선물처럼 다가온 작품, 관객들에 울림 주고 싶어"
원석이 보석이 되기 위해서는, 원석을 알아봐주는 누군가를 만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최근 뮤지컬계에 갑자기 등장하면서 이목을 끈 배우 김수는 원석의 상태로, EMK뮤지컬컴퍼니 관계자를 통해 발견됐다. 그의 간절함이 관계자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간의 노력들이 그를 무대 위의 크리스틴 다에로 만들었다.
크리스틴 다에는 지난 3월 17일부터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되고 있는 뮤지컬 ‘팬텀’의 여주인공이다. 파리로 상경한 시골 출신의 아가씨 크리스틴 다에는 사람들에게 노래를 불러주며 악보를 팔던 소녀였다. 우연히 샹동 백작의 추천으로 오페라 하우스에 발을 들이게 되지만 오페라의 주역을 도맡은 마담 카를로타의 의상담당으로 지내게 된다. 그러던 중 크리스틴의 노래를 들은 팬텀에게 노래를 배우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오페라극장의 디바로 발돋움한다.
극중 크리스틴 다에가 샹동 백작, 팬텀에 의해 발견됐다면 김수는 뮤지컬 배우이자 대학교 선배인 카이와 EMK뮤지컬컴퍼니에 의해 발견됐다. 성악을 전공하던 그는 어릴 적부터 꿈꿔왔던 뮤지컬 배우의 꿈을 위해 무작정 카이를 찾아가 자신의 노래를 들려주고, 카이가 진행한 ‘원더월 프로그램’에 멘티로 출연하게 되고, ‘팬텀’ 오디션을 보기까지 모두 그의 간절함이 이뤄낸 기적의 연속이었다.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이 뮤지컬 배우를 준비한 세월의 90%는 될 거예요. 망설임, 두려움, 막막함,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거라는 생각이 가득했죠. 카이 선배를 만나고 멘토링 프로그램을 한 게 작년 4월이에요. 당시 선배가 ‘겁내지 말고 뭐든지 도전 해보라’라고 하시더라고요.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제가 40~50세가 돼서 젊은 시절을 돌아봤을 때 꼭 뮤지컬 배우가 되지 않더라도 후회 없이 최선을 다했다고 답할 수 있는지 생각해봤는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후회하지 않기 위해 무조건 해야겠다 결심했죠.”
“(캐스팅) 계약서를 쓰기 직전까지도 믿지 못했다”고 말할 정도로, ‘팬텀’의 크리스틴 다에는 꿈과도 같은 캐릭터였다. 같은 역에 캐스팅된 김소현, 임선혜 이지혜는 김수에겐 꿈이자 뮤지컬 교본과도 같은 존재들이었다. 그들을 통해 살아 있는 크리스틴을 만나는 것 자체가 그에겐 다양한 해석을 볼 수 있는 공부였다.
“사실 첫 공연이 떨리진 않았어요. ‘팬텀’ 팀에서 연습을 잘 시켜주셔서 그런 것 같아요.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뿐이었죠. 그런데도 처음 무대에선 내 연기하기 바빴어요. 옆 사람이 뭘 하고 있는지,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조차 신경 쓸 겨를이 없었어요. 지금은 조금 즐길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같은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매번 새롭게 다가오는데, 이젠 크리스틴의 노래를 부르면서 스스로 힐링이 되는 걸 느껴요.”
주변의 극찬도 잇따랐다. ‘팬텀’ 관계자는 “김수의 장점은 모든 노트를 흡수하는 것이다. 배우로서 아직 백지상태이기 때문에 말해주는 대로 모든 걸 받아들인다. 덕분에 정말 순수한 크리스틴이 나왔다”고 만족스러워 했다. 뮤지컬 팬들의 반응도 기대 이상이었다. 지금까지 봐왔던 것과는 다른 또 다른 색깔의 크리스틴이 탄생한 것에 반가움을 내비치는 평들이 이어졌다.
“‘수크리는 이렇다’는 댓글이 정말 좋았어요. 김수만의 캐릭터를 느꼈다는 거잖아요. 네 명의 크리스틴이 모두 같은 대사와 노래를 하고 있지만 모두 다르잖아요. 사실 역할을 분석하기 보단 ‘나라면 어땠을까’ 생각하면서 크리스틴에 저를 대입해서 다양한 상상을 해봤어요. 그걸 관객분들이 알아봐주실 때 정말 감격스럽죠. 대극장의 무대와 관객석이 먼 것 같아도 이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이 된다는 걸 느꼈어요. 정말 신기해요.”
김수의 연기가 관객들에게까지 전달될 수 있었던 건 크리스틴의 이야기를 배우 스스로의 이야기로 받아들이고, 텍스트를 진심으로 뱉어내면서다. 수십년을 꿈꾸고, 기본기를 다져왔던 덕분이지만 그의 뮤지컬 인생에 선물처럼 다가온 ‘팬텀’을 통해 관객들에게 울림을 줄 수 있는 배우로서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정말 선물 같은 작품이죠. 시작이 ‘팬텀’이어서 정말 다행이고, 감사해요. 앞으로 10년, 20년 어떤 힘든 일을 만나더라고, 지금의 기억을 이정표로 삼아 다시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만큼 내 몸과 마음을 잘 지켜서 오래오래 제 노래를 들려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나중엔 제가 담고 싶은 메시지를 잘 빚어서 극작품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아직까진 막연한 꿈이지만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