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재주로 북한 체제 보장하나
“옥류관 국수를 처먹고 가서는”
문재인 정권의 ‘종전선언’ 조급증이 또 도진 모양이다. 더불어민주당 김경협 의원이 15일에 ‘한반도 종전선언 촉구 결의안’을 발의하겠다고 예고했다.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에 맞춰 아주 뜻 깊은 일을 하겠다고 의기투합한 모양이다. 범여권 의원 173명이나 서명했으니 본회의 통과는 기다려보나 마나다.
그런데 그 20년 동안 북한은 외투를 벗었을까 더 여몄을까? ‘햇볕 정책’ 운운해 가며 남북화해를 시도한 이래 지금까지 북한의 책략이나 태도는 순화되기는커녕 되레 악화됐다. 이솝우화의 ‘해님과 북풍’을 남북 화해 협력 교류 촉진 정책으로 삼았다는 것부터가 우화적이었다. 북한 3대 왕조 체제를 그런 정책으로 움직일 수 있으리라고 정말로 기대했을까?
무슨 재주로 북한 체제 보장하나
대표발의자 김 의원은 14일 보도자료를 통해 “종전선언은 북측이 원하는 체제 보장에 긍정적 시그널로 작동해 비핵화 협상을 촉진하는 효과가 있다. 한반도 평화정착을 견인하는 조치로 종전선언을 조속히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명분을 내 세웠다. 종전선언이 한반도 평화정착을 견인한다? 정말 별소리를 다 듣겠다.
북한의 체제보장은 남이 해 줄 수 있는 게 아니다. 과거 구소련이나 동구 공산국가들의 체제가 남 때문에 붕괴된 게 아님을 잘 알고 있으면서 자꾸 억지논리를 주장해서는 안 된다. 일제가 태평양전쟁에서 패망한데 따라 우리에게 독립의 기회가 왔다. 그런데 구소련이 잽싸게 북쪽에다 김일성 중심의 위성정권을 세웠다. 그리고 김은 교활하게도 거기에 시대착오적인 왕조를 건설했다.
북한체제의 취약성은 김씨 3대의 황당한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왕조를 유지해 나가려면 주민의 절대적 복종이 전제돼야 한다. 그걸 이끌어내기 위해 폭력이 동원되고 신화가 만들어졌다. 체제가 안정되면 폭력성은 완화되는 게 자연스런 흐름이다. 그런데 북한의 경우 오히려 상황이 더 악화됐다. 폭력에 의존하지 않고는 체제를 유지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 미국이 북한 체제를 보장해 줄 방법은 현실적으로 없다. 북한의 기형적인 통치체제가 와해된다면 그건 내부의 저항을 감당하지 못하는 탓일 것이다. 홍수에 둑이 무너지는 것과 비슷한 현상으로 설명될 수 있다.
북한이 정전협정을 종전협정(평화협정)으로 바꿔야 한다고 집요하게 주장해 온 의도는 뻔하다. 한반도 안에서 유엔군 사령부와 주한미군을 몰아내겠다는 것이다. 종전이 되면 6‧25때문에 성립됐던 주한 유엔군사령부는 해체된다. 다시 북한의 무력남침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때처럼 유엔군이 구성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주한미군도 마찬가지다. 종전 협정을 맺고도 한국에 주둔해야 할 명분이 부족하다.
“옥류관 국수를 처먹고 가서는”
올해는 6‧25동란 70주년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땅에서 그 참담했던 대사변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주 적다. 대부분이 전후세대다. 이들에게는 북한에 대한 경계심이 없다. 전후세대 가운데 일부는 미국이 김일성의 통일전쟁을 방해했다고 공격을 해댔다. 그 때마다 인천 자유공원의 맥아더 동상은 수난을 겪어야 했다.
문 정권 측 논리로는 종전선언이 비핵화협상을 촉진하는 효과가 있다. 휴전상태일 뿐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닌 상황에서도 공공연히 핵무기를 개발하고 그걸로 협박하는 게 북한 정권이다. 정전협정의 족쇄까지 풀린 마당에 무엇 하러 비핵화를 협상을 서두르겠는가. 게다가 정전협정이냐 종전협정이냐가 북한 비핵화의 변수는 아니다. 이들 명제 사이에는 상관성이 없다. 그런데도 우기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일이다.
하긴 문 대통령은 이미 ‘사실상의 종전’을 선언했다. 작년 6월 30일 판문점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이 판문점에서 회동한 것과 관련, 그는 “남‧북에 이어 북·미간에도 문서상의 서명은 아니지만 사실상의 행동으로 적대 관계의 종식과 새로운 평화 시대의 본격적 시작을 선언했다고 말할 수 있다”고 주장했었다. 이 집요함의 배경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하필이면 북한의 김여정이 더 노골적으로 우리를 위협하는 담화를 발표한 바로 다음날 민주당 의원들은 그런 결의안을 내놨다. 김여정은 “확실하게 남조선 것들과 결별할 때가 된듯하다”라고 협박했다. 그는 “남조선당국이 궁금해 할 그 다음의 우리의 계획에 대해서도 이 기회에 암시한다면 다음번 대적 행동의 행사권은 우리 군대 총참모부에 넘겨주려고 한다”라고 군사적 협박까지 해댔다. 이런 자들과의 종전선언이란 어떤 것일 수 있는가.
같은 날 북한 대외선전매체 ‘조선의 오늘’은 평양 옥류관 주방장까지 동원해 “평양에 와서 우리의 이름난 옥류관 국수를 처먹을 때는 그 무슨 큰일이나 칠 것처럼 요사를 떨고…”라며 문 대통령에게 조롱과 모욕을 안겼다. 그래도 정부 여당은 불쾌해 하는 기색조차 없다. 국민의 자존심에 상처를 줬으니 미안해 할만도 한데 오히려 ‘종전선언 결의안’을 발의하며 속을 뒤집어 놓는다. 도대체 뭘 어쩌자는 것인가.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