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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정당 재건의 길-下] 호남 접근…美 공화당 '남부 전략'은 어땠나


입력 2020.05.04 05:00 수정 2020.05.04 04:59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북군에 초토화됐던 남부가 지금은 공화당 텃밭

공화당, '사회문화적 보수주의'로 남부에 접근

'호남 포기 전략' 포기하고 공통분모 내세워야

미래통합당(당시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 등 핵심 지도부가 지난 2016년 8월 전북 전주화산체육관에서 열린 전당대회 호남권 합동연설회장에 지역 특산품인 부채를 들고 입장하고 있다. 통합당은 당시 전주에서 32년, 전북에서 20년 만에 지역구 국회의원 당선자(정운천 의원)를 내면서 의욕적으로 호남권 합동연설회를 진행했다. 그 이후 통합당은 두 차례의 전당대회를 더 치렀지만 호남권에서는 다시 합동연설회를 갖지 못하고 있다. ⓒ데일리안

1861년부터 1865년까지 전개된 남북전쟁 당시 미국 링컨 공화당 정부는 윌리엄 셔먼의 북군을 남부로 보내 '바다로의 진군'이라 불리는 초토화 전술을 감행했다. 북군은 병원과 교회만 남기고 전부 불사르며, 식량은 모조리 약탈했다. 북군의 초토화 전술에 남부에서는 40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남부 사람들은 셔먼을 '북부의 악마'라 부르며 치를 떨었다.


이후 미국 남부에서는 100년 가까이 공화당 후보는 발도 딛지 못했다. 남부의 수도가 있던 버지니아 주는 1874년 민정 이양 이후 1970년까지 96년 동안 민주당 주지사만 당선됐다. 셔먼의 초토화 전술에 가장 큰 피해를 입었던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도 1877년 민정 이양부터 1975년까지 98년 동안 민주당 주지사만 당선됐다.


지금 이들 심남부(Deep South)는 군대를 끌고와 자신들의 조상을 초토화했던 공화당의 텃밭이다. 1960년대부터 시동이 걸린 공화당의 '남부 전략' '텃밭 바꾸기' 시도가 결실을 거두면서 1970년대부터 공화당의 아성으로 변모한 것이다. 옛 '학살'의 기억을 지우고 민주당의 텃밭을 갈아엎은 공화당 '남부 전략'의 열쇠는 무엇이었을까.


세계 어느 나라나 사회가 고도화하면 도농 간의 표심 분화 현상이 발생한다. 금융·서비스업과 첨단 IT산업 등에 기반하는 도시 지역은 진보 좌파 정당이 득세하며, 농어산촌이거나 광업·제조업에 기반하는 지역은 보수 우파 정당이 강세를 보인다. 영국·미국·독일 등 정치 선진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우리나라도 이미 이같은 현상의 초입에 들어섰다"며 "서울은 보수 정당의 험지로 굳어지고 있고, 경기도도 이번 4·15 총선에서 드러났듯이 보수 야당 당선 지역은 경기도 외곽의 농촌 지역을 둘러싸는 형태"라고 진단했다.


충청권도 대전 7석과 청주 4석을 전부 진보 여당이 석권했다. 보수 야당은 충남북의 시·군 복합 선거구에서 주로 당선자를 냈다.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산업적 발전이 더디며 농촌·어촌·산촌 등이 밀집한 호남 권역에 보수 정당이 발을 딛지 못하면서, 이런 도농 표심 분화 현상 속에서 보수와 진보 간의 균형이 깨지고 있다는 점이다. 500만 명이 사는 권역에서 전혀 유의미한 득표를 하지 못하면서, 나아가 이 권역 출신 출향민들로부터도 지지를 받지 못한다면 보수 정당의 미래는 절망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군의 초토화 전술에 40만 명의 사상자가 나고 도시와 마을이 잿더미가 됐던 남북전쟁의 기억이 남부의 정치 지형을 장기간 지배한 것처럼, 5·18이라는 집단적 기억이 호남을 정치적으로 진보 정당으로 견인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사회문화적으로는 호남이 대단히 보수적인 성격을 띄고 있다는 게 지역 정가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보수정당, 도농 표심 분화 속 호남에선 속수무책
동성결혼 등 사회문화 쟁점, 호남 대단히 보수적
공화당은 '히피 문화' 창궐 틈타 남부 공략 나서


한국갤럽이 지난해 5월 동성결혼 법제화 찬반 여부를 설문한 결과, 동성결혼 법제화에 대한 호남의 여론은 더불어민주당 지지자(찬성 43% 반대 49%)보다 오히려 미래통합당(당시 자유한국당) 지지자(찬성 18% 반대 73%)에 가까운 것으로 분석됐다. ⓒ데일리안

한국갤럽이 지난해 5월 28~30일에 걸쳐 사흘간 동성결혼 법제화 찬반 여부를 자체조사한 결과, 전국 모든 권역 중 광주전남북 즉 호남에서 반대 여론이 가장 높았다.


호남에서는 동성결혼 법제화 찬성이 29%에 그친 반면 반대는 66%로 나타났다. 서울에서 찬성 46% 반대 47%로 찬반이 팽팽히 맞섰던 것과 비교하면 서울보다 호남의 반대 비율이 20%p 가까이 높은 것이다. 흔히 전국에서 가장 보수적이라고 인식되는 대구경북(TK)에서 찬성 37% 반대 55%였던 점을 고려하면, 호남이 TK보다 반대 비율이 11%p나 높았다.


동성결혼 법제화에 대한 호남의 여론은 더불어민주당 지지자(찬성 43% 반대 49%)보다 오히려 미래통합당(당시 자유한국당) 지지자(찬성 18% 반대 73%)에 가까운 것으로 분석됐다.


동성애도 사랑의 한 형태인지 묻는 설문에서도 호남에서는 43%가 '그렇지 않다'고 답해 전국 권역 중 부정응답의 비율이 가장 높았다. 서울(32%)은 물론 대구경북(40%)보다도 높았다. 여론조사와 관련해 자세한 내용은 한국갤럽이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지역 정가의 한 관계자는 "기독교의 세력도 호남이 강하며, 영남은 되레 불교가 강한 편"이라며 "호남을 대표하는 정치인인 박지원 민생당 의원은 기독교계의 요청으로 국회에서 여러 차례 '차별금지법' 반대의 총대를 멨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 2018년 지방선거에서 전남 광양시의원에 출마한 정의당 후보는 동성애를 질병으로 규정하며 '치료센터'를 설립하겠다고 공약하지 않았느냐. 그 사람은 정의당으로부터 제명 처분을 받으면서까지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며 "호남 몇몇 도시에는 호텔 사우나에 남탕만 있고 여탕은 없을 정도로 농촌 지역 특유의 가부장적 문화도 남아 있다"고 덧붙였다.


보수 정당 출신으로 20대 국회에서 현란하게 전개된 정계개편 과정에서 몇몇 호남 중진의원들과 당을 같이 하게 됐던 정병국 미래통합당 의원은 "몇몇 분들은 출신과 지역구가 호남이라 민주당에서 정치를 시작하셨을 뿐, 나보다 훨씬 더 보수적인 생각을 가진 분들이 많더라"고 혀를 내둘렀다. 이 또한 호남 저변에 깔린 사회문화적 보수주의가 미묘하게 발현된 형태로 볼 수 있다.


공화당의 '남부 전략'은 사회문화적 보수주의가 열쇠였다. 베트남 전쟁 때 창궐한 히피 문화가 각종 퇴폐적 요소와 결합하며 사회문화적 보수 정서가 강한 남부의 우려를 사게 되자, 공화당은 이 지점을 파고들었다.


이후 공화당은 민주당의 린든 B. 존슨 대통령이 내세운 '위대한 사회'라는 슬로건 아래에서의 복지 정책 남발에 반대하면서 이를 사회문화적 보수주의와 결합시켜 효과를 극대화했다. 소수자에 대한 일부 부당한 특혜적 복지 정책 때문에 다수가 역차별을 받는 사례 등을 집중 부각하며 보수적인 남부 표심을 사로잡아간 것이다.


5·18 향한 무의미한 문제제기 세력과 절연해야
사회문화 쟁점 공격적으로 정치무대 끌어들여야
석패율제 도입·全大 당원비중 축소도 고려 필요


김무성 미래통합당(당시 새누리당) 전 대표가 지난 2015년 5월 광주 금남로에서 열린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전야제에 참석했다가 반대하는 시민들로부터 항의가 이어지자 자리를 떠나고 있다. 이후 김무성 전 대표는 봉변을 겪은 것을 사과하는 김정길 5·18 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 상임위원장의 예방을 받는 자리에서 이를 이해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데일리안

보수 정당이 호남을 향해 사회문화적 보수주의를 공통 분모로 진정성 있는 접근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호남 포기 전략의 포기'가 시급하다는 분석이다. 극단적 보수 세력 일각의 호남 배제 문화를 향한 단호한 절연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공화당이 계속해서 남부를 마치 남북전쟁 때마냥 '반란군(Rebel)' '폭도'로 호칭했다면 공화당은 영원히 수권이 불가능한 정치적 자멸 집단으로 전락했을 것이다. 5·18에 대해 정치적으로 무의미하고 도움이 되지 않는 문제 제기를 계속하거나, 이런 문제 제기를 하는 집단을 마치 후원하는 것처럼 비쳐지는 현상은 철저히 끊어내야 한다는 분석이다.


그와 동시에 차별금지법, 불법체류자, 자국민 역차별, 외국인의 건보 '복지 쇼핑', 전북 익산을 들끓게 했던 '할랄푸드 단지' 문제 등에 있어서 보수 정당의 입장에서 목소리를 높이면서 사회문화적 쟁점들을 정치의 무대로 공격적으로 끌어들이는 전략을 펼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지금 보수 정당 지도자들은 더 이상 득표에 도움이 되지 않는 추상적 정치·경제 개념인 '사회주의' '좌파' 운운에는 목소리를 높이면서, 사회문화적 쟁점에 있어서는 되레 점잖은 척 뒤로 물러선다"며 "사회문화적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정치쟁점화하면서 급진 세력과 호남의 일반 지역민 사이의 간극을 벌리고 괴리감이 커지게끔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물론 단순히 사회문화적 보수주의를 쟁점화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되며, 호남을 향한 여러 다른 진지한 접근 수단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보수 정당의 한 의원실 관계자는 "21대 국회에서 있을 공직선거법 개정 협상에서 석패율제를 도입해 호남에서 보수 정당이 공천한 후보가 국회에 등원하고 지속적으로 커나갈 수 있도록 시스템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며 "전당대회나 각종 당내 공직후보자 경선 과정에서 당원의 비율을 줄이고 일반 국민의 비율을 늘려, 책임당원이 적은 호남의 목소리가 좀 더 잘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고려해봐야 한다"고 밝혔다.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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