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에 고개숙인 교포들 "언제 다시 고개 드나"
"처음으로 조국이 부끄럽다" 이미지 실추 우려
외신들 "완벽한 인재" 보도 '안전한국' 개조해야
“민망해서 요샌 TV도 잘 안 봅니다.”
“세월호 사태에 대해 정작 외국 친구들이 대놓고 한국 정부를 비판하거나 그러진 않는데 오히려 교민들 스스로 위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처음으로 내 조국이 부끄럽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나라의 국가이미지에도 타격을 받는 모양새다. 특히, 최근 해외 유수 외신들은 연일 이번 사고를 주요 기사로 보도하는 동시에 세월호 선장과 해당 선박회사는 물론 초동대처에 실패한 우리 정부에 대한 비판도 쏟아내고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세월호 사태로 인해 한국의 국가이미지에 흠집이 났다는 지적도 나온다. 심지어 해외에서 거주하고 있는 우리 국민 상당수도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에 적잖은 상처를 받았다고 토로하고 있는 실정이다.
11년째 일본에서 거주하고 있는 40대 주부 김모씨는 “일본에서도 세월호 사태를 매일같이 보도하고 있지만 일부러 한국 언론을 통해서만 해당 뉴스를 접한다”며 “아무리 일본 언론이 이번 사고를 객관적으로 보도한다고 해도 그걸 보는 것 자체가 화만 더 키울 것 같아서 피한다”고 밝혔다.
김 씨는 이어 “10년 넘게 타지에 살면서도 늘 한국인이라는 긍지를 놓지 않았는데 세월호 사태를 접하면서 처음으로 우리 정부가 원망스러웠다”며 “나를 포함해 한인 주민들 대개 침통해 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그러면서 “물론, 통상 일본 사람은 속내를 겉으로 잘 표현하지 않기 때문에 이번 사고에 대해서도 내게 이러쿵저러쿵 직접적인 언급을 하진 않지만 다소 의식하는 경향은 있다”며 “오히려 내가 먼저 주변 일본 지인들에게 말을 꺼내면 그때서야 ‘어떻게 (한국)정부가 그렇게 안초동대응을 했느냐’ ‘왜 일본이 지원해준다고 했을 때 받아들이지 않았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하곤 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김 씨는 “이번 일로 인해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급격하게 떨어졌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일정 부분 실추된 부분은 있어 보인다”며 “특히, 이를 바라보는 재외 동포들의 고국에 대한 긍지와 자존심에도 상당한 타격을 받은 것 같아 속상하다”고 말끝을 흐렸다.
미국에 거주하는 대학원생 이모씨(30)도 “세월호 사태 이후, 외국 친구들의 추모인사가 일상이 돼버렸다”며 “심지어 식당을 가도 주인이 ‘한국인이냐’고 묻고서는 조의를 표하는 정도”라고 씁쓸해했다.
이 씨는 또 “물론, 미국 언론 등에서 세월호 사고를 중대하게 보도하며 우리 정부에 대한 뼈아픈 비난을 하는 것은 맞지만 일반인들이 한국에 대해 직접적으로 나쁘게 말하거나 조롱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전했다.
다만, 그는 “하지만 자칫 이번 사태로 한국의 위기관리 능력이 아직도 후진성을 면치 못한다는 선입견이 생길까봐 속상하다”며 “그나마 몇 년 새 싸이 등 한류가 형성되면서 한국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높아졌는데 이번 일로 ‘안전불감증’의 나라로 낙인찍힐까봐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이들의 말처럼 최근 외신들은 정치인과 공무원뿐 아니라 이번 사태를 보도하는 국내 언론까지 따끔하게 꼬집고 있다. 일부는 과연 한국을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고까지 했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22일 사설에서 세월호 사건에서 드러난 한국 사회의 안전 불감증을 신랄하게 지적했다. 우선, 신문은 이 사건이 얼마나 역설적인가를 강조하기 위해 한국의 발전상을 소개했다. 신문은 “한국은 ‘한강의 기적’을 일구며 비약적으로 성장했고, 생활수준도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했다”면서도 “그러나 1990년대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가 잇따라 붕괴된 데 이어 올해도 경주 마우나리조트 지붕이 무너지는 등 대형 참사가 많았다. (한국 사회에) 성장과 경쟁의 논리가 안전을 뒷전으로 하는 풍조를 만든 것은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NYT)도 한국의 안전 불감증을 꼬집었다. 신문은 이번 참사를 ‘완벽한 인재’로 규정, “전쟁을 제외한 최악의 참사”라고 악평했다. 신문은 또 “세월호가 침몰하는 과정에서 선장과 선원들의 판단 착오가 이어졌고, 해상 당국도 우왕좌왕했다”며 “화물도 규정대로 싣지 않았고, 안전 수칙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고 신랄하게 꼬집었다.
우리 정부에 대한 비판도 뒤따랐다. 영국의 ‘가디언’도 21일(현지시각) 전 중국 특파원이었던 매리 주디제프스키가 쓴 ‘세월호 참사 끔찍하지만 살인은 아니다’는 칼럼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을 문제시 삼았다. 칼럼은 “사고 6일째에야 박근혜 대통령은 일부 승무원들의 행동을 ‘살인과도 같은 행위’라고 비난하며 공식 입장을 밝혔다”며 “그러나 과실이나 공포로 인해 사망사고가 발생했을 때 누군가를 살인자로 낙인찍는 게 정당한 일인가?”라고 반문했다.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 역시 22일(현지시각) ‘한국 여객선 사고, 살인이었나?’라는 기사를 통해 박 대통령의 ‘살인’ 발언이 정치적으로 부적절했다고 보도하는 등 외신들의 비판 기사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형국이다.
이를 접한 국내 인터넷 여론의 한숨도 깊어지고 있다. 네티즌들 상당수가 이 같은 보도에 대해 통탄해하고 있다.
다음 아이디 ‘구름에****’는 “정말 (앞으로) 얼굴 들고 어떻게 해외로 나가냐”고 적었고, 아이디 ‘kaz***’는 “이것으로 대한민국은 선진국이 아님을 전 세계에 증명했다”고 힐난했다.
또 다른 다음 아이디 ‘날아라곰**’은 “외신 언론들이 더 믿을만하네. 속이 후련하다”고 주장했고, 아이디 ‘비내리는***’은 “지금도 외신 초기화면 혹은 월드뉴스란 메인은 항상 이 기사다”라며 “아주 국가적으로 망신살 뻗친 것도 모자라 글로벌 호구가 됐다”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이 같은 외신에 보도 대해 합리적인 지적은 지적대로 인정하되 자칫 ‘자기부정’식의 무조건적인 비난은 지양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네이버 아이디 ‘seap****’는 “아직도 외부의 눈을 의식하는가? 창피한건 맞지만 외국 신문에 오르내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내실 없이 빨리빨리만 요구해 왔는지 재점검이 필요하다”며 “이번 기회에 정말 제대로 개선하자”고 적었고, 아이디 ‘yyss****’는 “이제는 더 이상 국가를 비난만 해서는 안 된다”며 “개인, 개인이 나부터 어떻게 변화할 수 있을지 서로 밀어주고, 독려하는 움직임도 필요하지 않는가”라고 적었다.
“외신 평가 겸허히 받되, 사회적 인식도 재고돼야”
외교전문가들도 세월호 참사가 부른 국가이미지 실추 여부와 관련, 일정 부분 공감을 나타내는 동시에 이것이 사회적 갈등으로 확산되기 보다는 근본적인 해결점을 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조양현 국립외교원 교수는 30일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이번 세월호 사태로 인한 경제, 안보, 문화 등 다분야에 걸쳐 국가이미지가 하락하는 것이 아니냐는 문제제기는 충분히 논의될만 하다”며 “일부 외신의 평가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조 교수는 다만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더 중요한 것은 이번 사고를 교훈삼아 외면적인 국가 성장만큼이나 내면의 성숙을 채우는 움직임이 필요하다”며 “물론, 이 같은 의식의 변화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 과정에서 외부에서 우리를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도 바뀔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그러면서 “외신의 지적대로 우리나라는 ‘압축 성장’하는 과정에서 경제적으로는 상당한 발전을 이룩했지만 아직도 사회적 안전망의 제도 구축이나 인식의 성장은 부족했다”며 “이번 사고를 마지막으로 다시는 이 같은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의 확실한 안전시스템 확립과 아직도 우리사회 만연한 안전불감증 인식을 개선하도록 국민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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