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항만기업 디지털 성숙도 조사
중소기업 19점·대기업 46점 그쳐
75%는 AI 도입 필요성 인지
해진공, 올해 5대 AX 지원 발표
국내 해운·항만기업의 디지털 전환 속도가 ‘낙제’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 해외 주요 기업들이 인공지능(AI)·디지털 전환에 속도를 높이는 것과 비교했을 때 산업 경쟁력에서 뒤처질 수 있는 만큼 정책적 대응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해양진흥공사(사장 안병길, 이하 해진공)가 지난해 10월 해운·항만기업 30곳을 대상으로 디지털 성숙도를 진단한 결과 중소기업 평균 점수는 19점, 대기업은 46점에 그쳤다.
검토부터 도입, 정착, 확산, 고도화까지 총 5단계로 나눈 조사에서 중소기업 평균은 19점으로 디지털 전환에 관한 인식이 부족한 것으로 조사됐다. 대기업 평균은 46점으로 디지털 전환을 전사적으로 확대하는 과정(정착 단계)으로 나타났다. 다만 현재 디지털 전환 확산(성과 도출)이나 고도화(시장 선도) 단계까지는 갈 길이 먼 상태다.
해운·항만기업 디지털 전환이 늦어지면서 AI 도입도 늦어지고 있다. 조사에 참여한 해운·항만기업의 74%는 AI 전환과 도입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 도입(12%)하거나 정착(2%)한 기업은 전체의 14%에 그쳤다. 도입 예정 기업은 4%였고, AI 전환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한 기업도 4%에 달했다.
디지털 전환, 효율성 확대·비용 절감 등 실익
최건우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해운정책연구실장에 따르면 해운물류를 포함한 거의 모든 산업에서 산업 간 연결과 분석을 통한 새로운 비즈니스가 발생하고 있다. 이를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 DX)’이라 표현한다. 디지털 전환은 디지털과 물리적 요소 간 결합으로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드는 내용이다.
해운산업, 특히 컨테이너 부문에서 디지털 전환이 중요한 이유는 이를 통해 물류서비스 스마트화, 효율성 향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중간재나 최종재를 운반하는 컨테이너 해운산업에서 상대적으로 다른 선종(건화물, 탱커 등)에 비해 디지털 전환 효과가 크다. 컨테이너 산업은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접적으로 연결해 주는 플랫폼 비즈니스에 활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효과도 있다. 우선 컨테이너 서비스 향상이다. 글로벌 컨테이너 선사와 디지털 포워더들이 제공하고 있는 실시간 예약 서비스(Instant Quotation)가 대표적이다. 컨테이너 산업에서 실시간 예약 서비스가 활성화하면서 새로운 영업 채널이 생겼을 뿐 아니라 거래 비용을 감소시킬 수 있다.
컨테이너 서비스 확장도 가능하다. 현재 컨테이너 선사는 항만과 항만 간의 운송을 담당하고 내륙 운송회사는 항만에서 목적지까지 운송을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 선사와 포워더가 제공하는 디지털 플랫폼은 나눠진 운송 단계들을 통합해 준다. 화주는 구간별로 운임을 알아볼 필요가 없이 제공되는 서비스를 이용하게 된다. 이용자와 제공자 모두 서비스 확장이 발생하는 셈이다.
무엇보다 비용 절감 효과가 크다. 선사로서는 선대 운항, 컨테이너 박스 최적화를 통한 비용 절감이 가능하다. 한 연구에 따르면 인트라 아시아 컨테이너 서비스를 대상으로 전통적인 방식을 통한 슬롯 할당 방식과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최적화를 비교한 결과 약 1억2000만 달러의 추가 수입을 얻을 수 있었다.
해진공, 해운·항만·물류 디지털 전환 3개년 계획
이처럼 해운·항만 기업의 디지털 전환 필요성이 커지자 해진공에서는 AX(인공지능 전환) 기반 해양산업 스마트 혁신 전략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 8일 안병길 사장은 해양수산부 출입기자단을 대상으로 한 브리핑에서 “지난해 해진공이 해운·항만기업 디지털 성숙도를 조사한 결과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여타 산업에 비해 상당히 뒤처진 상태로 나타났다”며 “글로벌 공급망의 중요성, 각종 규제에 대한 대응, 시황이 나빠졌을 경우 경쟁력 등을 고려할 때 이대로는 곤란하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사업 배경을 설명했다.
안 사장은 “업계는 업계대로 무엇부터 할지, AI 도입을 통해 무엇을 얻는지 체감할 수 있는 효익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며 “이에 해진공이 AX 기반 해양산업 스마트 혁신 전략을 수립해 지원 사업을 펼쳐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게 됐다”고 덧붙였다.
올해는 5대 사업을 통해 해운을 중심으로 항만과 물류업계 AI 도입을 지원한다. 이를 위해 원스톱 AX 종합지원체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업계 요구를 파악하고 초단기 AI 도입 효과를 검증할 체감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AI 도입을 위한 기술·활용에 관한 교육과 성공 사례 발굴을 통해 구체적 성과를 보여주고 사업화를 지원한다.
기존에 해진공이 제공하던 시황 정보를 편리하게 이용할 챗봇이나, 지수 분석과 뉴스 요약에 목적별 보고서 생성이 가능한 AI 에이전트를 개발할 계획이다. AI 챗봇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분석, 각자 목적에 맞는 보고서까지 생성할 수 있도록 한다는 목표다.
“AX 가속화, 성장동력 확보 유의미한 소득 확신”
AI 오픈랩(개방형 데이터실) 제공도 올해 주요 사업 중 하나다.
안 사장은 “산업 현장에는 AI 확산에 필수인 GUP를 비롯한 기반 시설이 대체로 부족하다”며 “AI 전문기업들이 학습 데이터를 활용해 기술을 개발할 수 있도록 환경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음 단계로 AI ‘퀵 이노베이션(신속 혁신)’ 작업이다. 현장에서 인력과 예산 등으로 기술 도입에 제약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AI 전문가를 투입해 프로토타입(시제품 형태)의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끝으로 올해 안으로 해운·항만·물류 업계와 AI 기술 연계를 통해 학습 데이터를 공유하는 중개 플랫폼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업계 요구와 해법을 연계 공유하는 체계의 완성이다.
안 사장은 이를 통해 “AI 기술의 진화 속도와 우리 일상에 미칠 파급력을 고려할 때 해양기업 AX 가속화와 AI 생태계 조성, 이를 통한 성장동력 확보라는 유의미한 소득을 확신한다”며 “선박과 인프라, 이들이 형성하는 글로벌 공급망, 나아가 연관산업으로 대상을 확대하면서 AI 융합, 해양종합솔루션을 제공하는 전문기관으로 자리매김하겠다”고 말했다.
▲피할 길 없는 친환경에 발 구르는 해운산업…해법은 ‘블루본드’ [해양 혁신②]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