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이완규 헌법재판관 임명 논란 지속
헌법재판소, '윤석열 파면' 선고일 당시
민주당 '국회권한 일방 행사' 지적에도
지도부·중진·초선 줄줄이 '강경 탄핵론'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잠잠해지는가 싶던 더불어민주당의 '줄탄핵'이 재부상했다. 파면 선고 당일 헌법재판소가 '민주당이 정부에 대한 정치적 압박수단으로 탄핵을 남발해 정부와 국회 간 상당한 마찰이 빚어졌다'고 지적한 지 엿새 만이다.
10일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 일각에서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친윤(친윤석열) 검찰 인사인 이완규 법제처장을 대통령몫 헌법재판관으로 지명한 것을 '월권'으로 규정, 한 대행에 대한 재탄핵 가능성을 거론했다.
박찬대 대표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한 대행에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을 지명한 것은 권한 없는 자가 자행한 명백한 위헌이자, 내란수괴 윤석열의 지령에 따라 헌재를 장악하려는 제2의 친위쿠데타"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앞서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으로 지명된 이완규 처장이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학 동기, 사법연수원 동기이자 윤석열 대선캠프에서 법률 자문을 맡았고, 윤 전 대통령 장모 사건까지 변호했던 대표적 친윤 인사라는 이유로 한 대행이 '제2의 친위쿠데타'를 꾸미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와 관련, 박찬대 직무대행은 "한 총리의 만행을 좌시하지 않겠다. 민주당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내란수괴 대행의 책임을 묻겠다"며 "(지명을 철회하지 않으면) 한 총리는 120년 전 을사오적처럼 역사의 죄인으로 오명을 남기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 대행을 확실하게 정리해야 한다는 강경 발언도 이어졌다. 박성준 원내수석부대표는 "내란수괴의 대행 한 총리를 그냥 둬서는 안 되겠다"면서 "주불이 꺼져도 잔불을 정리하지 않으면 산불은 다시 번진다. 확실한 정리가 필요하다"고 재탄핵 카드를 시사했다.
노종면 원내대변인은 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한 대행의 탄핵 여부와 관련 "지금 여러 의견을 당 지도부가 수렴하는 과정에 있다. 다양한 의견들이 분출하는 과정이고, 가능성은 다 열려있다"며 "현실적으로 볼 때, 만약 (탄핵소추를) 한다면 다음 주를 넘기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당내 중진 의원들도 한 대행 재탄핵에 힘을 실었다. 6선의 추미애 의원은 SBS라디오 '정치쇼'에서 "(한 대행 재탄핵을) 당연히 해야 된다고 본다"며 "국정공백 우려를 해서 (헌재가) 복귀를 시켰더니 도로 본인이 국정혼란의 중심이 돼버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친명(친이재명)계 좌장인 정성호 의원(5선)도 MBC라디오 '시선집중'에서 "나도 굉장히 탄핵에 대해 신중한 (입장)"이라면서도 "권한 밖의 행동을 한 한 대행을 대선 관리에서 배제해야 한다. 결국 탄핵밖에는 없다. 더 이상 어떻게 용납하겠는가"라고 말했다.
초선의원 일부에선 탄핵 국면 당시 민주당이 '주적' 삼은 직전 권한대행인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윤 전 대통령 석방 이후 즉시 항고를 하지 않은 심우정 검찰총장까지 묶어 탄핵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당 초선 의원 모임인 '더민초'는 전날 '내란 극복을 위한 한덕수·최상목·심우정 탄핵 추진 관련 더불어민주당 초선 의원 성명서'를 낸 뒤,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파면으로 윤석열 내란이 끝난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처럼 민주당이 줄탄핵 추진을 재개할 가능성을 시사한 것은 헌재가 "민주당이 정부에 대한 정치적 압박수단으로 탄핵을 남발해 정부와 국회 간 상당한 마찰이 빚어졌다"고 지적한 지 약 일주일 만이다.
앞서 헌재는 지난 4일 윤 전 대통령 탄핵 선고 당일 그가 비상계엄령 선포 사유로 든 민주당의 '입법독주' '탄핵남발' 등에 대해 계엄을 선포할 만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민주당이 '줄탄핵'을 정치적 압박수단으로 삼은 것을 지적하며, 정부와 국회 사이 상당한 마찰이 빚어진 배경엔 민주당의 탓도 있다고 봤다.
아울러 결정문의 '결론' 부분에서 "피청구인(윤석열)이 취임한 이래, 국회의 다수의석을 차지한 야당이 일방적으로 국회의 권한을 행사하는 일이 거듭됐고, 이는 피청구인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와 국회 사이에 상당한 마찰을 가져왔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피청구인은 행정부의 수반이자 국가원수로서 야당의 전횡으로 국정이 마비되고 국익이 현저히 저해돼 가고 있다고 인식해 이를 어떻게든 타개해야만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게 됐을 것으로 보이지만, (중략) 이는 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조율되고 해소되어야 할 정치의 문제"라고 했다.
당내에선 헌재의 '탄핵 남용' 지적에도 민주당이 엿새 만에 재탄핵 카드를 꺼내든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두 달도 남지 않은 대선 국면 한 가운데, 중도층 표심을 끌어안아야 할 이재명 전 대표에 탄핵 강경론이 악영향을 미칠 거란 이유다.
익명을 원한 민주당 중진 의원은 통화에서 "헌재가 당의 탄핵 기조를 비판했음에도 초선 의원들이 앞장서 또 탄핵하자고 하고, 원내지도부도 힘을 싣는 것은 대선 국면에서 좋은 모습은 아니다"라며 "국민 시각에서 볼 때 지도부가 초선들을 앞세우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할 수도 있어 여러모로 우려스러운 부분"이라고 했다.
한편 헌재는 이날 박성재 법무부장관의 탄핵심판 사건 선고에서 평의에 참여한 재판관(8인) 전원일치 의견으로 기각 결정했다.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을 제외한 박 장관과 한덕수 국무총리, 최재해 감사원장 등 다른 고위공직자에 대해 민주당이 소추한 탄핵안 6건은 모두 기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