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삼성, 삼원계 기반 4680 집중 투자…프리미엄 원통형 배터리 정조준
니켈 낮추고 망간 높인 고망간 배터리도 개발…LFP 누르고 '보급형' 대세될지 관심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 프리미엄 차량에 적용되는 고급형과 중저가 차량에 탑재되는 보급형으로 양분되면서 국내 배터리사들의 기술 개발도 투트랙(two-track)으로 전개되고 있다.
특히 LG·삼성은 삼원계(NCM·NCA) 기반의 하이니켈 배터리로 고급 전기차 수주에 나서는 한편, 저가의 경형·소형 전기차에 주로 적용되는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겨냥한 하이망간 배터리 개발에 모두 속도를 내고 있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 파나소닉 등 글로벌 배터리사들은 중대형 원통형 배터리 4680 양산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4680은 현재 주로 쓰이는 원통형 배터리인 21700 보다 관리가 용이하고 에너지밀도와 출력도 높아 먼저 선점하는 기업이 전기차 시장 판도를 뒤집을 것이라는 기대를 모은다.
현재 LG에너지솔루션은 오창 2공장에 5800억원을 투자해 총 9GW(기가와트아워) 규모의 원통형 배터리 신규 폼팩터(4680) 양산 설비를 구축하고 있다. 주요 고객사인 테슬라를 겨냥한 것으로, 내년 하반기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일본 파나소닉도 4680 배터리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2024년 3월까지 양산체제를 갖춘 뒤 테슬라에 본격적으로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삼성SDI도 천안 사업장에 46파이(Φ, 지름 46mm) 라인을 구축중이다. 지름은 46mm라고 밝혔지만 높이는 아직 확정하지 않았다.
전기차 1위 기업인 테슬라가 일찌감치 4680 배터리 탑재 계획을 밝힌 만큼 향후 수주를 감안해 4680 규격을 생산라인에 적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삼성SDI는 현재 리비안, 볼보, 루시드 등에 원통형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다.
삼성SDI는 지난달 '2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46파이 배터리 장점에 안전성을 강화한 설계 콘셉트를 추가해 개발하는 동시에 회사의 강점인 하이니켈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의 SCN 소재 기술을 적용해 업계 최고 수준의 용량을 구현할 예정"이라며 복수의 완성차업체들과 공급 논의를 진행중이라고 밝혔다.
LG·삼성 등이 4680 배터리 개발에 속도를 내는 것은 테슬라를 포함해 글로벌 전기차업체들의 4680 수요가 눈에 띄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볼보, 재규어랜드로버, BMW 등은 기존 원통형 보다 용량과 출력이 높으면서도 비용을 낮출 수 있는 4680에 일제히 관심을 보이고 있다.
4680은 기존 원통형 배터리(21700) 보다 지름(46mm)과 높이(80mm)가 큰 원통형 배터리로 에너지 용량과 출력이 각각 5배, 6배 확대되고 주행거리도 16% 향상시킬 것으로 평가받는다. 같은 용량의 21700 보다 공정 횟수도 적어 비용절감 효과도 있다.
4680은 국내 기업들이 강점을 보여온 삼원계(NCM·NCA)를 기반으로 한 하이니켈 배터리인만큼 속도전에서만 승리한다면 최대 경쟁자인 일본을 누르고 원통형 강자로 입지를 굳힐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특히 4680은 에너지 밀도를 높여주는 니켈 함량이 높은 만큼 프리미엄 전기차를 주 타깃으로 한다. 고부가 제품이 많이 팔릴수록 이익은 수직 증가할 수 밖에 없다.
프리미엄 전기차를 삼원계 중심 배터리로 대응한다면 저가의 경형·소형 전기차에는 망간 비중을 높인 하이망간 배터리로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을 정조준한다.
삼성SDI는 올해 초 원가 부담이 큰 코발트 대신 망간 비중을 높인 NMX 배터리를 개발중이라고 밝힌 바 있으며, LG에너지솔루션도 상대적으로 비싼 코발트와 니켈 비중을 낮춘 대신 망간 비중을 높인 하이망간 배터리를 내놓겠다고 했다.
이같은 국내 배터리사들의 움직임은 CATL 등 중국 기업들이 강점을 가진 LFP 배터리에 대한 대응 차원이다. 실제 테슬라는 단거리 주행 모델에 사용하는 배터리에 LFP를 채택하고 있으며, 메르세데스-벤츠, 폭스바겐, 포드 등도 일부 모델에 LFP를 탑재하겠다고 밝혔다.
LFP는 단위 면적당 에너지 밀도가 낮고 무거워 일반 승용차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평가가 있지만, 철을 양극재로 하기 때문에 생산 비용이 낮고 폭발 위험도 적어 완성차업체들의 수요가 점진적으로 늘고 있다.
삼성SDI는 LFP 대신 니켈 비중을 낮추고 망간 비중을 높인 NMX 배터리를 중심으로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NMX는 니켈 비중이 높은 하이니켈 배터리 보다는 에너지밀도가 낮지만 원가경쟁력이 높기 때문에 유력한 LFP 배터리 대항마로 거론된다.
LG에너지솔루션도 파우치 형태의 하이망간 배터리 개발에 속도를 내는 한편 상대적으로 저렴한 알루미늄을 넣은 NCMA 배터리도 함께 개발하고 있다. 한양대학교는 최근 연구를 통해 NCMA의 알루미늄 특성상 출력 성능이 개선돼 트럭 등 차세대 전기차에 더 적합한 배터리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이망간 배터리가 시장에서 인정받게 되면 국내 배터리사들은 고급차 뿐 아니라 중저가 전기차 시장에서도 중국을 누르고 탄탄한 입지를 구축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망간, 리튬 등 배터리 소재의 중국산 비중이 높은 만큼 원재료 공급 다각화 문제는 풀어야 할 숙제로 꼽힌다. 수산화리튬과 망간은 90% 가량을 중국에서 수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차세대 기술 개발에서 아무리 성과를 내더라도 배터리 소재 조달 및 가격 협상에서 열위를 보이면 시장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특히 최대 시장 중 하나인 미국이 자국 원자재 비중이 높은 기업에만 보조금을 주겠다는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는 평가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기업이 중국과 일본을 누르고 경쟁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중국 비중을 현저히 낮춘 새 원료 공급망 확보에 사활을 걸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