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은 청와대->대통령실 바꾼 윤석열 연상
민주당도 재집권시 쓰고 싶은 이름으로 지어야
대청은 영국 사용하는 Great Offices와 같은 뜻
대통령 대(大)에 정부의 으뜸 관청이란 뜻 담겨
국민 공모 후 압축된 ‘국민청사’ 등에 대해 새 집주인인 대통령 윤석열이 이렇게 말했을 때 대통령 청사 새 이름 후보들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작명 위원회가 엊그제 ‘무결정’을 결정했다.
‘당분간’ 쓴다고 발표된 ‘용산 대통령실’에 대한 여론은 대체로 환영이다. SNS에 올라오는 의견들을 보면, ‘뭔가 불편했는데 다행’이란 반응이 많다. ‘국민’이란 말이 남용되고, 관청 청(廳)을 들을 청(聽)으로 억지 조어(造語)를 하며, ‘누리’ 같은 아마추어적 부자연스런 우리말로 낙착될까봐 조마조마했을 터다.
대통령실은 대통령이 일하는 곳이지 국민이 일하는 곳이 아니다. 국민을 대표해서, 국민을 위해 일한다고 해서 국민이란 말을 붙여야 한다는 건 강박이다.
그런 이름 없이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위해 일만 잘하면 된다. 국민청사에서 일 잘못하면 국민 글자 없는 곳에서 일하는 것보다 훨씬 더 원성을 듣게 될 것이다.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다.
국가기관 작명(作名)은 그 뜻이 누구나 알아듣기 쉬워야 하고, 그 발음과 표기가 그 뜻을 연상시키기에 가장 자연스러우면서 시원하고 묵직해야 좋다. 평범한 듯 하면서도 세련된 맛이 있어야 다수 국민들로부터 사랑받고 오래 가는 이름이 된다.
우선, 용산(龍山)이라는 좋은 이름을 굳이 피할 필요가 없다. 용(龍)은 대통령(왕)을 상징하는 단어가 아닌가? 옛날 왕조 시대에 임금의 얼굴을 용안(龍顔)이라고 했고, 임금이 정무를 보던 평상을 용상(龍牀)이라고 했다. 용산은 대통령실이 위치한 지역명이면서 대통령이 있는 높은 곳(산)을 가리키는 말이니 안성맞춤이라고 하겠다.
그 다음은 관청을 뜻하는 단어를 붙여야 하는데, 보통명사로 가는 게 최선의 작명이다. 관청 청(廳) 앞에 큰 대(大)를 붙이면 된다. 정부 청사 중에 으뜸이라는 뜻이다. 큰 대는 대통령을 의미하기도 하니 여러 가지로 적절한 글자다.
그리하여 용산+대청, 용산대청이란 조합이 이뤄진다. 용산궁의 다른 이름이다. 외국에서는 대통령 관저(官邸, 관청+저택)를 대통령궁으로 많이 부른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집 궁(宮)이 썩 좋게 들리는 말이 아니다. 전제 군주(專制 君主) 임금이나 독재자 대통령이 사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그러니 청사에 대(大) 자를 붙인 대청이 무난하다.
대청(大廳)은 필자가 만든 말이 아니다. 선진국들에서 비슷한 의미의 단어들로 자기 나라 정상 집무실 건물 이름으로 지어서 오랫동안 써오고 있는 종류다.
영국 총리 관저는 다우닝가 10번지(10 Downing Street)란 이름으로 유명하다. 이번 윤석열 대통령실 이름 후보 중 ‘이태원로22’는 이걸 본떠서 지은 것이다.
실제로는 영국 총리 집무실이 관저가 아닌 ‘대청’에 있다. Great Offices of State 라는 이름이다. ‘대국무청’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데, 총리를 비롯해 재무, 외무, 내무 장관 등 국가 ‘빅4’ 행정 책임자들이 일하는 곳이다.
프랑스는 The Elysee Palace(엘리제 궁), 독일은 The Office of the Federal President(연방 대통령실) 또는 Bellevue Palace(벨뷰 궁)로 부른다. 캐나다는 Office of the Prime Minister(수상실), 일본은 그냥 수상관저, 대만도 총통부(總統府)라고 해서 특별하지 않은 이름을 쓴다.
우리가 잘 아는 미국만 선진국 중 유일하게 The White House(백악관, 白堊館)라는 지역 명도 관직 명도 없는 고유명사를 지었다. 우리는 관(館), 옥(屋), 루(樓), 각(閣), 대(臺) 같은 요릿집 아니면 지난 권위주의 시대 고관대작(高官大爵)의 집(별장)을 연상시키는 글자에 대한 반감이 크다.
청와대를 윤석열이 그래서 안 들어가게 됐다. 따라서 용산 대통령실을 용산대나 용와대로 부르자는 건 구중궁궐(九重宮闕)의 향수에서 못 벗어나는 발상이다.
‘용산 대통령실’은 5개 후보 가운데서 여론조사로 고르는 작업에 불만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원래부터 쓰자고 한 이름이다.
“대통령실로 그냥 가지 뭐 하러 굳이 새 이름을 붙이려고 하는가?”
‘용산 대통령실’은 위 선진국 사례에서 보듯이 무작명이 명작명인 경우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용산대청’은 이것보다는 약간 특별한 이름이면서 입과 귀에 착착 감기는 맛도 있다. 대통령실이 나오는 TV 뉴스를 한번 상상해보라.
“용산대청에 나가 있는 OOO기자를 불러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용산대청에서 OO방송 OOO이었습니다.”
대통령 청사 이름은 백년대계(百年大計)로 잘 지어야 한다. 특정 대통령이나 집권당에 맞춰 작명해선 안 된다. ‘국민’이란 단어가 들어가서는 곤란한 이유다. ‘국민의힘’ 출신 대통령만 쓰게 될 집무실이 아니지 않는가?
‘대통령실’은 그런 점에서 야당이 그렇게 좋아할만한 이름은 아니다. 단 한 가지 흠, 옥에 티다. 논란 속에 강행해서 ‘청와대’를 ‘대통령실’로 바꾼 윤석열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그걸 민주당은 반대하지 않았는가?
그런 사람들이니 싫어할 게 뻔하고, 건물도 이름도 다시 바꾸려고 하기 쉬울 것이다. 이러면 국가적으로 큰 낭비고 국제적으로도 우스운 나라가 된다.
민주당도 재집권하면 들어가고 싶은 건물, 쓰고 싶은 건물명이 되도록 지혜와 영감을 모아서 짓도록 하자. 용산대청은 이러한 고려 사항에도 맞는 중립적인 명칭이다.
여론조사가 능사는 아니다. 중요한 일일수록 그 일을 맡은 기관의 수장(대통령)이나 전문가가 용단을 내려야 더 좋은 결과가 나온다.
글/정기수 자유기고가(ksjung724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