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기순익 7조8638억원, 법인세 2조8776억원
‘손실보전용’ 누적적립금 19조3744억원
한국은행이 지난해 저금리 기조와 증시 호황으로 약 7조9000억원을 벌어들인 가운데 누적 법정적립금도 20조원에 육박했다. 역대급 순익 달성으로 두둑해진 적립금에 이목이 쏠린다. 다만 최근 대내외 금융시장 변동성이 확대된만큼 경계를 늦추기는 아직 이르다는 지적이다.
31일 한은의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세전 당기순이익은 10조7414억원으로, 사상 첫 10조원을 넘겼던 지난해보다 5525억원 늘었다. 법인세(2조8776억원)를 내고 남은 당기순이익도 7조8638억원으로 전년 대비 4980억원 증가했다. 역대 최대다.
외화자산운용이자 감소로 총수익은 감소했으나 영업비용이 큰 폭으로 늘어난 덕택이다. 구체적으로는 글로벌 증시 호황에 따른 주가 상승으로 유가증권 매매이익이 증가하고, 2020년 기준금리 인하에 따라 통화안정증권 발행 금리가 하락한 부분이 지난해 반영되며 통안증권 이자 비용이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위기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법정적립금 누적 잔액도 19조3744억원까지 늘어났다. 한은법에 따르면 한은은 세후 당기순이익 30%를 법정적립금으로 적립해야 한다. 지난해 법정적립금은 2조3592억원으로 전년 보다 1494억원 증가했다.
20조원에 달하는 법정적립금은 혹시 모를 위기 상황에 대비해 쌓아놓는 자금이다. 위기가 닥쳐 중앙은행이 적자를 내면 적립금으로 부족분을 충당하는 것이다. 한은이 적자가 지속된다면 대외신인도 추락은 물론 통화정책운용에도 제약을 겪는다. 국민들의 세금도 늘어날 수 있다.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장기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 정책에 따른 시장 ‘긴축발작’ 등으로 역대급의 순익 증가세를 지속 이어갈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다.
문제는 역대 최대 수준의 적립금을 코로나19 금융지원에 활용하자는 정치권의 목소리가 거세질 수 있다는 우려다. 지난해 3월에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의원들은 한은의 법정적립금 잔액이 17조원을 돌파하자, 코로나19 극복에 동참해야 한다며 법정적립금 출연 비율을 당기순익 30%에서 10%로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에 이주열 한은 총재는 외환보유액 확대와 국제금융시장 상황 급변 가능성을 들며 신중한 입장을 취한 바 있다.
실제 한은은 2004~2007년까지 4년 연속 당기순적자를 기록한 바 있다. 2007년 법정적립금은 1조5000억원까지 축소된 바 있다.
현재 적립금 잔액은 수치만 놓고 보면 20조원에 달하지만, 총 자산(595조6437억원)의 3.25% 수준에 그친다. 한은 내부에서는 적정 법정적립금 수준을 총자산의 5%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