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구치 류스케 ‘드라이브 마이 카’ 23일 개봉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에서는 30분 내외의 짧은 콘텐츠들이 각광받고, 이마저도 1.5배 빠르게 재생하는 시청자들이 늘고 있다. 쏟아지는 작품들을 섭렵하기 위해 유튜브의 요약 콘텐츠로 내용을 빠르게 파악하기도 한다.
콘텐츠 감상에도 효율성이 요구되는 현재,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러닝타임 179분의 ‘드라이브 마이 카’로 돌아왔다. 전작인 328분의 ‘해피 아워’에 이어, 이번에도 인물들의 내면을 깊게 들여다보며 영화가 끝난 뒤에도 진하게 남는 여운을 선사한다.
23일 개봉한 ‘드라이브 마이 카’는 우연히 아내의 외도를 목격한 가후쿠가 이유도 묻지 못한 채 갑작스럽게 아내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2년 후 히로시마의 연극제에 초청돼 작품의 연출을 하게 된 가후쿠가 그곳에서 자신의 전속 드라이버 미사키를 만나게 되고, 조용한 차 안에서 마음을 연 두 사람이 서로의 상처를 함께 극복하는 과정을 담는 작품이다.
일본의 차세대 거장으로 꼽히는 하마구치 류스케는 전작인 ‘해피 아워’에 이어 이번에도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는 방법을 택했다. 328분에서 179분으로 줄어들기는 했으나, 여전히 3시간이라는 러닝타임은 상업영화에서 흔하지 않은 선택이다. 물론 최근 개봉한 ‘듄’이 155분을 기록했으며, 영화 ‘인터스텔라’(169분), ‘다크나이트 라이즈’(164분), ‘반지의 제왕:왕의 귀환’(263분) 등 러닝타임이 긴 영화들도 없지는 않으나, 화려한 볼거리와 스펙타클한 전개로 지루함을 상쇄시키는 경우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드라이브 마이 카’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긴 러닝타임을 활용한다. 아내의 외도를 목격하고 충격을 받은 가후쿠의 이야기를 다루는 이 작품은 뚜렷한 기승전결이 있는 작품은 아니다. 가후쿠가 그 일로 어떤 충격을 받았는지, 또 그것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줬는지 등 관객들이 궁금해할 만한 답을 직접 제시하지도 않는다.
대신 과거의 사건이 한 인간의 내면에 어떤 것을 남겼는지를 천천히 따라간다. 가후쿠가 연출하는 연극 ‘바냐와 아저씨’의 대사, 또는 ‘바냐와 아저씨’에 출연하는 배우들, 미사키와 나누는 대화 등 파편화돼 흩어진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인물들의 진심을 마주하게 된다.
관객들은 미사코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이동하며 이야기를 하나, 둘 꺼내는 가후쿠의 여정처럼,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대사를 따라 감상을 하게 된다. 처음에는 의미 없어 보이는 대사들도 전개가 거듭되면서부터는 하나의 이야기가 되기 시작한다. 가후쿠와 미사코는 물론,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는 극단 사람들과의 대화를 쫓다 보면 한 인간의 내면에 담긴 외로움, 상처, 질투 등의 감정들을 체감하게 되는 것이다. 지루하고, 혹은 어느 부분에선 이해가 되지 않아도, 하마구치 류스케가 펼쳐둔 3시간의 여정을 오롯이 함께한 이들만 경험할 수 있는 여운이 있는 것이다.
코로나19로 관객들이 극장을 찾지 않는 사이, 접근이 쉽고 효율적 감상이 가능한 OTT 콘텐츠들이 그 틈을 파고들었다. 이에 극장의 큰 화면을 스펙타클하게 채우는 블록버스터가 아니면 관객들을 스크린 앞으로 불러 모으기 힘들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드라이브 마이 카’처럼, 스킵이나 빠른 재생, 요약으로는 느낄 수 없는 진한 여운을 선사하는 작품도 또 다른 스크린의 의미를 보여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