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다이어트·플로깅 등 1일 체험기
지인의 인스타그램에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봉투에 한가득 담긴 쓰레기 사진이었다. 이 게시물에는 #줍깅 #플로깅 #탄소제로 #플라스틱_다이어트 #제로웨이스트 등의 해시태그가 함께 달렸다. 그간 방송과 미디어를 통해 접해왔던 환경 캠페인으로, SNS에서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움직임이었다.
부끄럽게도 그동안 환경 정책이나, 실천에 큰 관심이 없었지만 지난 14일 첫 방송된 KBS2 ‘오늘부터 무해하게’를 통해 공효진이 한 말이 날 움직이게 했다. 평소 환경보호에 꾸준히 목소리를 내오던 그는 “혼자서는 버겁게 느껴졌다. 그래서 이번엔 나의 친구들과 함께 해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방송을 통해 보여진 이들의 모습은, 결코 쉽지 않아 보였지만 ‘혼자서는 버겁게 느껴졌다’는 공효진의 말에 조금 불편한 하루를 살아보면서 조금이라도 미래를 위한 마음에 보탬이 되고 싶었다.
무작정 “해보겠다”곤 했지만, 막상 뭐부터 해야할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가장 쉬운 것부터 시작하자. 일단 플라스틱과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는데, 이와 동시에 내 주변에 이미 잔뜩 너브러진 플라스틱이 눈에 꽂혔다. 당장 책상 위의 펜부터 연필꽂이, 멀티탭, 물티슈와 뚜껑 그리고 지금 쓰고 있는 마우스와 키보드까지 온통 플라스틱이다.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고 ‘새로운 쓰레기’를 만들지 않겠다는 기준을 새로 세웠다.
먼저 텀블러를 챙겨들었다. 하루에 평균 2잔의 커피를 마시는데, 카페에서 커피를 사올 때 단 한 번도 텀블러를 이용해본 적이 없었다. 조금 유난스러워 보일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않아도 무거운 가방에 짐을 보태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그래도 텀블러를 제시하고 나니 나름 뿌듯함이 밀려왔다. 아, 한 가지 아쉬운 건 샌드위치를 먹지 못했다는 점이다. 모든 디저트(케이크, 샌드위치, 마카롱, 과일 등)는 모두 비닐이나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 있었다.
최근 코로나19로 점심, 저녁 미팅이 사라지면서 식사는 주로 집에서 한다. 이미 있는 식재료로 끼니를 챙겨먹기로 하고, 냉장고를 열었는데 역시나 비닐 포장지 천지였다. 냉동실은 더 처참했다. 살림 좀 제대로 해보겠다고 식재료들을 소분해 진공포장해 두었는데 역시 비닐 포장재다.
역시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다가 배고파서 쓰러진 사람이 있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는데, 다들 어떻게 음식을 사고 보관하는지 궁금해진다. 어쩔 수 없이 포장해두었던 돈가스를 꺼내 돌려 먹었다. 탄소배출을 아예 ‘제로’로 만드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고, 배출한 만큼 쓰레기를 줍기로 했다.
어차피 매일 2번, 강아지 산책을 해야 하는 집사 신세다. 산책 전 쓰레기를 담을 봉지만 하나 더 챙겨 나갔다. 약 1시간 가량의 산책 동안 주운 쓰레기만 한 봉지 가득이었다. 근처 공원을 한 바퀴 돌았는데 사실 전체 산책 시간은 1시간이었지만, 봉지를 가득 채운 시간은 겨우 30분 남짓이다. 그만큼 거리에 쓰레기가 넘쳐났다.
쓰레기를 들고 들어오면서 “나도 지구의 건강에 보탬이 됐다”는 뿌듯함이 밀려왔다. SNS에 자랑하고 싶었는데 너무 생색내는 것 같아서 꾹 참았다. 아니 사실 올리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는 산책 후 집에 들어오면서 발견한 택배 때문이었다.
오전에 평소 자주 이용하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주문했던 식재료다. 나름 ‘친환경 프레시백’을 사용한다고 했지만 그 안에 식재료의 손상을 막기 위한 포장용 완충제는 물론, 아이스팩까지 정성스럽게, 참 많이도 챙겨주셨다. 이런 식이라면 쓰레기를 두 봉지는 더 주웠어야 했다는 생각이 스쳤다.
‘플라스틱 하나 안 쓰는 게 뭐 어렵겠냐’며 당차게 도전장을 내밀었던 내 자신이 초라해지는 순간이었다. 사실 모두 나열하지 않아서 그렇지 이날 사용한 플라스틱은 생각보다 더 많았을 것이다. 의식하지 못하고 사용한 것들도 있었을 테고. 그만큼 플라스틱은 일상생활의 거의 모든 부분에 광범위하게 스며들어 있었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앞으로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행동은 이어갈 생각이다. 조금 불편했지만, 꽤 괜찮은 하루였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