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책임=국가의 간섭과 통제
책임만 말하며 '표 얻자'는 정치권에
한 '신인 정치인'이 던진 화두
동의 못 한다면 당당하게 언쟁하라
"현재 정부의 목표 중 제일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게 '국민의 삶을 책임지겠다'는 것이다. 국민의 삶을 국민이 책임져야지 왜 정부가 책임지나. 국민의 삶을, 정부가 모든 삶을 책임지겠다는 게 바로 북한 시스템이다"
내년 대통령선거에 나선 국민의힘 소속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이 발언을 두고 정치권이 시끄러웠다. 특히 "국민의 삶을 책임지지 않으려면 대선에는 왜 출마했느냐"며 '초짜 정치인'이 깊이 고민해보지도 않고 말을 던졌다는 식의 여권의 공세가 이어졌다.
최 전 원장으로서는 좀 억울할 것도 같다. '국가의 책임'과 그 반대편에 새겨진 '간섭과 통제'는 정치철학의 오랜 주제이며, 정치권에서도 늘상 다뤄지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최 전 원장 말은 자유주의 사상 중에서도 가장 느슨하고 기초적인 수준의 발언이었다고 보인다.
프랑스의 자유주의 경제학자 프레데릭 바스티아(1801-1850)는 "국가는 거대한 허구다"고 했으며, 영국의 자유주의 사상가 허버트 스펜서(1820-1903)는 "정부기관이 많아질수록, 시민들 사이에서는 자신들은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고 정부가 자신들을 위해 모든 것을 해야 한다는 관념이 더 많이 생겨난다"며 "이는 노예 상태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최 전 원장이 던진 '국민의 책임'이라는 화두는 논쟁의 주제일 뿐 '말실수'의 범위에는 속하는 발언은 결코 아니라는 뜻이다.
"국가가 국민의 삶을 책임지겠다"는 말의 뒷면에는 "책임지는 만큼 국가가 국민의 삶에 개입하겠다"는 말이 적혀 있다. 그러나 여야를 막론하고 대다수의 정치인들은 국가의 '책임'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지금의 문재인 정부와 그 뒤를 이으려는 민주당의 대선 주자들은 더욱 그렇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과격한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시장을 거스르는 임대차3법 등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인 '정책 실패'의 사례로 꼽히는 정책들 역시 실제로는 국가의 책임을 가장한 '간섭과 통제'의 결과가 아니었나.
"내 삶에 책임지는 정부에 동의하느냐"는 질문 대신 "내 삶에 개입하는 정부에 동의하느냐"는 질문을 던진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변심'을 할까.
여야 정치인들께 당부하고 싶다. 최 전 원장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당당하게 토론에 나서시라고. 그가 '정치 신인'이라는 점을 이용해 그가 던진 화두를 '말실수'로 몰아가려는 것은 좀 치사하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