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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던 ‘이건희 컬렉션’의 감정가, 그 이상의 가치


입력 2021.06.04 13:00 수정 2021.06.04 20:38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수도권 대 지방...미술관 건립 둔 이분법적 유치전에만 혈안

"미술사 공백 채울 만한 작품들 다수...별도 근대미술관 건립해야"

ⓒ뉴시스

총 감정가 3조원, 시가 10조원. 이른바 ‘이건희 컬렉션’이라 불리는 작품들에 대한 감정가로 알려진 금액이다. ‘이건희 컬렉션’의 사회 환원으로 문화계가 들썩이고 있다. 수집품 목록의 방대함은 물론, 그간 미술사의 공백으로 남아있던 빈자리를 채울 퍼즐이라는 업계의 시선 때문이다.


하지만 문체부가 ‘이건희 컬렉션’ 기증과 관련한 미술관 건립안을 다음 달께 발표하겠다고 밝히면서, 전국 각지에선 삼성가와 맺은 인연을 강조하거나, ‘수도권 대 지방’이라는 이분법으로 유치전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벌써 20곳에 가까운 도시가 유치 경쟁에 뛰어들었다. 업계 관계자들은 작품의 ‘가치’가 아닌, ‘돈’에만 초점이 맞춰지고 있는 현 상황에 안타까움을 내비친다.


이에 미술계에선 국립근대미술관 설립을 촉구하는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한국 단색화 거장 박서보와 서승원·한만영·김택상 등 국내 미술계 인사 400여명은 ‘국립근대미술관을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정식 발족했다. 이들은 삼성가에서 기증한 근대미술품 1000여점과 국립현대미술관이 보유 중인 근대미술품 2000여점까지 한데 모아 국립근대미술관을 지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국민국가인 대한민국 건설과 더불어 창설했어야 할 근대미술관의 부재 상황이 한 세기를 넘긴 채 2021년에 이르렀다”면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가장 영향력이 있는 시기인 근대의 정신과 물질을 상징하는 국립근대미술관의 존재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주장했다.


‘이건희 컬렉션’에 대해 정통한 한 미술계 관계자는 “작품들의 면면을 보면 국가적으로 보존이 되어야 할 만한 작품들이 다수 있다. 물론 ‘이건희 컬렉션’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생각하면 지방 유치 경쟁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역사에 남을 작품들을 어떻게 보존하는가에 대한 문제를 생각하면 별도의 근대미술관을 짓고 국가가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한국에는 근대를 표방한 국립미술관이 없다. 1969년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인 덕수궁관에서 근대미술을 관리하고 있는데, 그마저도 3개 층에 전시실이 4개뿐이고 하나뿐인 수장고도 크기가 작아 보존·복원보다 전시에 초점이 맞춰진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반면 해외 주요국들의 선진 미술관의 경우, 전근대와 근대·현대·당대의 시대 구분을 명확히 해 관리하고 있다. 프랑스의 오르세, 영국의 테이트 브리튼, 일본의 국립근대미술관, 독일·이탈리아의 20세기미술관이 대표적인 근대미술관이다. 이들 미술관은 자국 고유의 근대기를 확립하고 이 기간 탄생한 미술품의 수집·보존·연구·교육·전시·교류에 힘쓴다.


관계자는 “시기적으로 구분이 되어서 작품을 보존하는 건 교육적인 측면을 비롯해 여러 의미에서 필요한 부분이다. 단순히 ‘이건희 미술관’이 아닌, 근대미술관을 만들고 그 안에 ‘이건희 특별관’을 설치하는 식의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며 “별도의 이건희 박물관을 만들어 기증 작품을 모두 한 곳에 모으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이야기다. 도자기나 서화, 금속공예, 석조물 등 다양한 종류의 기증품은 보관과 전시 방법이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때문에 한 곳에 모으는 건 오히려 ‘이건희 컬렉션’의 가치를 떨어뜨릴 수도 있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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