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징병제가 도입된다고 해서 남녀평등의 바로미터로 이어지진 않는다"
여성 징병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까지 등장해 12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고 있다. 여성계에서는 여성 징병제에 대한 논의 자체는 필요하지만 현실적인 구조의 변화 없이 단지 2030세대 남성의 마음을 얻기 위한 논의는 소모적인 논쟁만 가중시킬 뿐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지금의 논란이 정치나 성별간 갈등 문제로 비화되고 있는 것도 경계했다.
우선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여성 징병제 이슈가 정치적으로 변질되고 있는 상황을 우려했다. 특히 이 이슈가 4.7 재·보궐 선거 이후 나왔다는 점과 서울에서 20대 남성이 야당인 국민의힘을 압도적으로 지지한 현상을 거론하면서 정치권에서 제시된 과정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여성변호사회 공보이사 장윤미 변호사는 “지금 여성 징병제의 이슈 제기 방식은 다분히 정치공학적인 접근"이라며 "달라진 시대에 맞게 여러 논의가 함께 진행돼야 하는데, 현재는 정치권을 출발점으로 성급하게 진행되고 있고, 마치 2030세대 남성의 표심을 얻기 위한 논쟁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창원대 철학과 윤김지영 교수는 “현재 군대 문화는 MZ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밀레니엄(M) 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아울러 이르는 말)가 중요시하는 소통이 불가능하고, 억압적이기 때문에 남성들에게 군대 생활은 일종의 트라우마로 작용한다”며 “그러나 국가를 상대로는 이런 문제 제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만큼 군대에 가지 않는 여성, 장애인에게 화살이 돌아가는 것이다”고 분석했다.
이어 “군대 문화 자체의 개선과 제도적 개선이 나와야 하며, 모병제를 통해 적성에 맞는 군인이 사명감을 가지고 입대를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남성들의 트라우마가 치유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김교수는 특히, 여성 징병제의 도입으로 남녀 불평등이 해결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불평등의 완전한 해소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며 “여성 징병제를 도입한 이스라엘의 경우, 여성이 의무로 징병됨에도 불구하고 여성 인권 지표가 절대 높지 않다. 따라서 여성 징병제가 도입된다고 해서 남녀평등의 바로미터로 이어지진 않는다”고 강조했다.
한국여성정치연구소 김은주 소장은 “여성 군 복무와 관련해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논의를 시작해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단순히 남성들도 가니깐 여성들도 가는 게 평등하다는 일차원적인 수준에서 논의할 것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현재 징병제가 가진 문제점 보완 등 전체적인 점검 하에서 논의가 돼야만 의미 있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 소장은 특히 “여성 군복무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하려면 군 복무 제도에 대한 현실적인 검토가 반드시 함께 필요하다"며 "군대 내에 여성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시설 등 물질적인 조건뿐만 아니라 차별이나 불평등과 같이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 등은 없는지 우선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4년 남성에게만 병역의무를 부과한 병역법 규정에 대해 전원일치로 합헌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당시 "남성이 전투에 더 적합한 신체적 능력을 갖추고 있고 신체적 능력이 뛰어난 여성도 생리적 특성이나 임신과 출산 등으로 훈련과 전투 관련 업무에 장애가 있을 수 있다"며 "최적의 전투력 확보를 위해 남성만을 병역의무자로 정한 것이 현저히 자의적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