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장 및 선원 건강 양호"
이란, '해양오염' 근거 제시 못 해
동결자금 문제 실마리 찾은 듯
본격적 대미협상 대비 차원일 수도
이란에 억류돼있던 한국 화학운반선 '한국케미호'와 선원들이 95일 만에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다.
외교부는 9일 발표한 보도자료에서 "지난 1월 4일부터 이란 당국에 의해 억류돼 이란 반다르압바스항 인근 라자이항에 묘박 중이던 우리 국적 선박과 선장에 대한 억류가 오늘 해제됐다"고 밝혔다.
앞서 이란 혁명수비대(IRGC)는 지난 1월 4일 오후 3시30분께 호르무즈 해협의 오만 인근 해역을 항해 중이던 한국 케미호를 '해양 오염' 혐의로 나포한 뒤 억류해왔다.
지난 2월 2일 선원 20명 가운데 선장을 제외한 19명에 대한 억류를 해제했지만, 국제사회로부터 사실상 '인질극'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선박 관리를 위한 필수 인력이 현지에 남아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번 조치로 억류 해제된 인원은 △한국인 5명 △미얀마인 5명 △인도네시아인 1명 △베트남인 2명 등 총 13명이다. 해당 인원에는 앞서 귀국한 한국인 선원 2명의 대체인력(한국인 2명)도 포함돼있다.
외교부는 "선장 및 선원들의 건강은 양호하다"며 "화물 등 선박의 제반 상황도 이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선박은 현지 행정 절차를 마친 후 오늘 오전 10시20분, 이란 현지시간으로 오전 5시50분 무사히 출항했다"고 밝혔다.
석 달여 만에 선박·선원 억류가 해제된 데는 미국의 대이란 제재로 한국에 동결된 70억달러(약 7조6000억원) 규모의 이란산 원유대금 문제가 어느 정도 실마리를 찾은 영향으로 보인다. 이란 정부 관계자들은 억류 시점 전후로 동결자금 문제 해결을 강하게 촉구한 바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란이 선박·선원 나포 배경으로 언급한 환경오염 여부와 관련해선 "확인이 안 됐다"며 "정부는 (한국케미호가) 환경오염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란 정부는 환경오염 관련 증거를 제시해달라는 우리 정부의 거듭된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정부는 그간 동결자금 문제와 관련해 스위스 인도적 교역채널(SHTA)을 활용하는 방안을 미국·이란과 논의해왔다. 이는 국내은행에 동결된 이란 자금을 스위스 은행으로 송금한 뒤, 스위스에서 약품·식량 등의 인도적 물품을 구매해 이란에 건네는 방식을 골자로 한다.
아울러 정부는 △동결자금을 활용한 이란의 유엔 분담금 대납 △국내 기업들의 대이란 인도지원 규모 확대 방안 등도 검토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정부는 동결자금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앞서 한미는 연이어 개최된 고위급 회담에 '유엔 결의안(제재안)에 대한 완전한 이행'에 합의한 바 있다. 미국은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복귀와 관련해 선제적 제재완화는 없을 것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있기도 하다.
이에 일각에서는 이란이 미국과의 본격적인 협상에 앞서 외교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는 억류 사건을 서둘러 매듭지은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실제로 JCPOA 당사국인 이란·미국·영국·프랑스·독일·러시아·중국 등은 지난 6일부터 오스트리아 빈에서 JCPOA 복원을 위한 당사국 회담을 진행하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JCPOA가 진전되면 동결자금 문제에도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며 "미국과 이란의 JCPOA 복귀 및 상응 조치를 논의하고 있다. 언론 보도를 보면 진전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