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최초 연고지 내 6번째 팀 안착
SK 시절 끌어 올린 관중 동원 유지가 관건
지난 1월말 유명 야구 커뮤니티에서 언급된 ‘핵폭탄 설(說)’은 스토브리그 최대 화두로 떠올랐고 온갖 추측 속에 3일이 지나고 나서야 윤곽을 드러냈다. 바로 SK의 야구단 매각이었다.
21년간 이어졌던 SK 와이번스의 역사는 유통계 대기업 신세계 그룹으로 넘어갔다. 매각 대금은 1352억 8000만 원이었고 이는 한국 프로스포츠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인수 금액이었다.
인수 과정과 비하인드 스토리를 살펴보면 양 측의 이해관계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먼저 재계 서열 3위의 SK는 야구단 운영에 큰 어려움이 없었으나 그룹사 자체가 소비재 중심 기업이 아니고, 프로 구단보다는 아마추어 종목 육성에 많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었다. 마침 야구단 인수에 적극적이던 신세계 그룹이 등장했고 구단 매각 협상이 속전속결로 이뤄지면서 말 그대로 야구계에 핵폭탄이 투하됐다.
다사다난했던 인천 야구의 역사
팬心 돌보지 않은 삼청태현의 퇴장
구단의 주체가 바뀌자 기대와 우려의 시선이 동시에 신세계 그룹으로 향했다. 특히 21년간 SK를 응원했던 인천 팬들이 크게 동요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인천은 ‘구도’라는 수식어가 무색하게 KBO리그 연고지들 가운데 가장 많은 팀이 바뀐 아픔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하고 인천에 첫 뿌리를 내렸던 팀인 삼미 슈퍼스타즈다. 그러나 삼미는 슈퍼맨이 되지 못했고 KBO리그 최저 승률 등 흑역사만 잔뜩 쓴 뒤 3년 역사를 뒤로 하고 청보 핀토스에 바통을 넘겼다.
청보 역시 짧았던 3년이 굴욕으로 점철됐다. 워낙 얇았던 선수층 탓에 강팀들의 승리 제물이 되기 일쑤였고, 결국 1987시즌 후 태평양에 구단 운영권을 넘겼다. 태평양은 달랐다. 구단의 구호대로 태풍과 돌풍을 일으켰고 창단 2년째였던 1989년 인천 야구에 첫 가을 야구를 선사했고, 1994시즌에는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하며 승승장구했다.
인천 연고팀의 첫 전성기는 1995시즌이 끝나고 태평양을 인수한 대기업 현대가 맡고나서 찾아왔다. 현대는 막강한 자금력을 앞세워 선수 영입에 적극적으로 달려들었고, 정민태 등 인천 연고 유망주들이 잠재력을 폭발시키며 강팀으로 도약했다.
마침내 1998년, 현대는 인천 야구팬들에게 사상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선사했고, 현대는 인천 팬들의 자랑이었다. 그러나 현대와 인천의 인연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서울 연고를 추진하던 현대는 1999시즌 후 갑작스레 연고지 이전을 발표했다.
인천팬들의 상실감은 대단했고 쌍방울 선수단을 인수해 새롭게 창단한 SK 와이번스가 자리를 메웠으나 자리를 잡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인천 팬心을 잡기 위한 신세계의 노력
창단 초기 팬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던 SK는 2006년 지금의 붉은색으로 팀 컬러를 변경, 스포테인먼트를 앞세워 성적과 인기, 두 마리 토끼를 잡는데 성공했다. SK는 2007년과 2008년, 2010년 우승 포함 무려 6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며 새로운 왕조의 탄생을 알렸고 2018년 다시 한 번 우승을 일궈내며 인천에 완전히 뿌리를 내렸다.
이제 신세계 야구단이 명맥을 이어나가야 한다. 주목할 점은 신세계 그룹이 허망한 인천팬들을 달래기 위해 많은 부분에서 신경을 썼다는 점이다.
먼저 신세계는 구단명을 SSG 랜더스로 확정했다. 다소 생소한 랜더스는 ‘상륙자’라는 뜻을 담고 있는데 대표적인 관문인 인천항과 인천공항, 더불어 인천상륙작전을 절로 떠오르게 하는 작명이다.
팀 컬러 역시 팬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기존 붉은 색을 유지하기로 했다. 또한 인천 팬들은 SK의 얼트 유니폼 가운데 하나인 인천군 유니폼에 대한 애착과 선호도가 매우 높은데, 이를 감안한 신세계 그룹은 이번 스프링캠프서 선수들에게 해당 유니폼을 지급했다.
추신수의 깜짝 영입도 빼놓을 성과 중 하나다. 16년간 메이저리그서 활약한 추신수는 한국이 낳은 역대 최고의 야구 선수로 통한다.
이제 불혹을 앞둔 추신수이지만 여전히 정상급 기량을 지니고 있으며 이는 KBO리그에서 훨씬 더 큰 영향을 발휘할 것으로 전망된다. 신세계 그룹은 구단 창단 후 곧바로 특급 스타플레이어를 영입하며 단번에 인천 팬들의 눈도장을 얻는데 성공했다.
코로나19 후 성적표로 드러날 관중 동원
전신인 SK의 평균 관중수 이전보다 2배 증가
인천 야구는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야구 인기와는 동떨어진 곳이었다. 초창기 삼미와 청보는 저조한 성적 속에 관중 동원마저 시원치 않았고 태평양, 현대 역시 가뜩이나 좁은 도원구장(1만 2000석)을 절반도 채우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SK가 2003년 지금의 문학구장(2만 3000석)으로 옮기고 우승 등 성적에서도 확실한 성과를 내자 야구장을 찾는 팬들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실제로 SK는 인천과 역사를 함께 했던 21년간 경기당 평균 1만 367명을 기록했다. 이는 태평양, 현대 시절보다 2배 이상 늘어난 수치이며, KBO리그 전체 평균 관중(8423명)을 웃도는 수치다.
SSG 랜더스가 인천에 성공적으로 상륙하려면 SK가 어렵게 늘렸던 팬들의 숫자를 유지해야 한다. 관중 동원의 첫 번째 원동력은 역시나 확실한 팀 성적이며, 스타플레이어의 배출과 구단의 홍보 및 마케팅도 매우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코로나19로 인해 당분간 100% 관중 입장은 어려우나 언젠가는 야구장의 문이 활짝 열리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때까지 SSG 랜더스가 인천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며 새로운 주인으로서의 역할을 해낼지, 많은 이들이 지켜보고 있다.
[SSG 상륙①] 쓰윽 상륙한 SSG랜더스, 모든 것이 신세계!
[SSG 상륙②] ‘치유되는 상실감’ 인천 팬들은 답할까
[SSG 상륙③] 인천 탈환 나선 신세계, 롯데와 어쩌면 야구 아닌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