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속 명품시장 ‘무풍지대’…연초부터 주요 브랜드 줄줄이 가격인상
새벽부터 매장 앞 줄 서는 ‘진풍경’…배짱 영업에도 인기 여전
명품 업체들, 자국과 이중적 영업 방식 고수…한국 소비자 ‘봉’ 취급 씁쓸
지난달 명품 브랜드 샤넬의 가격 인상을 앞두고 서울 주요 백화점에서 벌어진 진풍경은 코로나19 속 경제위기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700만원대인 샤넬 핸드백 가격이 곧 800만원대로 오른다”는 소식이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자 순식간에 100여명의 인파가 몰렸다.
롯데 소공동 본점, 신세계 강남점, 현대 압구정점 등에서는 문을 열자마자 샤넬 매장으로 내달리는 이른바 ‘오픈런’이 연출됐다. 새벽부터 번호표를 뽑고 긴 줄을 서있던 손님들은 일제히 백화점 셔터가 다 열리기도 전에 매장 안으로 질주하는 기이한 현상이 펼쳐졌다.
연초부터 샤넬을 포함해 에르메스, 루이비통, 등 소위 ‘3대 명품’ 브랜드들이 한국 판매 가격을 올렸다. 오래 전부터 “명품업체들이 유독 한국에서 배짱 영업한다”는 비판이 지속되고 있지만, 소비자들은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얼마나 가격을 올리든 인기는 줄지 않는다.
물론 이들이 제품 가격을 자주 올린다고 비판의 대상이 될 순 없다. 가격 책정은 회사의 고유 권한이기 때문이다. 특히 밥상 물가와 직결되는 생필품과는 다르게 소비 장벽을 높이는 것은 희소성이 중요한 명품 브랜드의 전략중 하나에 속하기도 하다는 이유에서 더욱 그러하다.
문제는 이중적인 영업 방식에 있다. 자국에서는 ‘사회적 책임’, ‘투명한 경영’, ‘고용 증진’ 같은 다양한 사회적 가치들을 강조하는 반면, 한국에서는 막대한 매출을 올리면서도 이익 극대화에만 집중하고 있다. 과분한 명품 사랑에도 한국 소비자들은 여전히 찬밥 신세다.
루이비통이 소속된 루이비통모에헤네시 그룹과 구찌, 보테가베네타 등이 속한 케링그룹은 지난해 초 코로나19 위기에 처한 중국에 수십억원을 지원했지만, 국내엔 금전 지원을 약속한 경우는 없었다.
명품 업체들은 국내서 벌어들이는 수입 대비 사회공헌활동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오랫동안 제기돼 왔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명품 브랜드는 국내 법인을 실적은 물론 배당금·기부금 기재 의무가 없는 유한회사 형태로 한국법인을 설립하거나 전환하고 있다.
다만 외부감사법 개정으로 올해부터, 지난해 회계연도를 기준으로 이들 기업 가운데 매출이나 자본금이 500억원 이상일 경우 감사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그런데 일부 명품 브랜드는 또 다시 실적 공개를 피하기 위한 ‘꼼수’를 부리고 있다.
구찌코리아는 지난해 말 ‘유한책임회사’로 전환했다. 유한책임회사는 여전히 감사보고서 제출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유한회사에서 유한책임회사로 전환하는 것이 상법상 불가능한데, 유한회사에서 주식회사로 일시적으로 바꾼 뒤 다시 유한책임회사로 변경하는 방식을 썼다.
소비자들이 명품 소비에 열광을 하든, 기업이 돈을 많이 벌어서 이익을 창출을 하든 자본주의 사회에서 비난 받을 일은 아니다.
하지만 명품업체들이 한국 시장에서 수조 원의 돈을 벌면서 얼마나 배당을 하는지, 한국 사회에는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 공개 조차 하지 않는 것은 그저 돈만 벌어가겠다는 의도로 밖에는 해석되지 않는다.
한국 소비자를 ‘현금인출기’로만 생각하는 오만은 아쉬움을 남긴다. 이제는 한국 시장을 대하는 태도와 사회적 책임도 장사꾼 수준이 아닌, 장인정신에 걸맞는 수준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실천은 진리를 검증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명품의 진가는 품위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