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즌 김광현 '지켜준' 몰리나-웨인라이트 재계약
기자회견 때 김광현이 꼽았던 은인들..2021시즌도 함께
지난 겨울 KBO리그 SK 와이번스를 떠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계약(2년 800만 달러)한 김광현(33)은 미국 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시즌 개막이 거듭 연기되면서 상상 이상으로 힘든 시간을 버텨냈다.
가족들과 떨어져 홀로 낯선 미국의 열악한 환경에서 훈련한 김광현은 코로나19로 개막일조차 잡을 수 없던 시기에 SNS를 통해 "나한테만 불행한 것 같은 시기...힘들다. 하지만, 또 참아야 한다"며 복잡한 심경을 전했다.
그때 피어오른 은인이 아담 웨인라이트(40)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세인트루이스의 모든 운동 시설은 폐쇄됐다. 시즌 준비를 해야 하는 김광현은 막막했다. 이때 베테랑 웨인라이트가 손을 내밀었다. 웨인라이트는 2005년부터 카디널스에서 뛰며 월드시리즈 우승과 다승왕을 각각 2회 차지한 에이스다.
김광현은 “웨인라이트 집 마당이 넓었다. 그곳에서 웨인라이트와 50m 캐치볼을 한 게 거의 유일한 훈련이었다. 웨인라이트와 어울리며 외로운 시간을 견뎠다. 훗날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가족들과 꼭 함께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김광현은 “메이저리그 30개 구장을 모두 방문했던 웨인라이트가 각각의 장소에서 어떻게 던져야 하는지 조언해줬다. 힘든 시기에 몸을 어떻게 관리하고, 컨디션을 끌어올려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해준다”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꼬여버린 2020년 희망을 잃지 않게 해준 인물이 웨인라이트다.
참고 견뎌낸 김광현에게 대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7월말 우여곡절 끝에 막을 올린 메이저리그(MLB) 무대에서 김광현은 마무리 투수로 데뷔전을 치러 세이브를 수확했다. 올렸다. 불펜 투수로 남은 시즌을 치를 것으로 보였지만 팀 내 코로나19 집단 감염과 부상 선수 속출로 어렵사리 선발 기회를 잡았다.
“빅리그 타자들을 상대하기에는 스피드가 떨어진다” “한국에서도 제구력이 만족스럽지 못했다” “단조로운 구종은 수싸움에서 고전할 수 있다” 등 쏟아진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빠른 템포의 공격적인 피칭과 슬라이더로 타자들을 농락했다. 7경기 선발 평균자책점 1.62를 찍고 포스트시즌(와일드카드시리즈) 1선발로 마운드에 섰다.
김광현의 빠른 적응에는 야디어 몰리나(39)를 빼놓을 수 없다. 몰리나는 포수 부문 골드글러브를 9차례 수상한 리그 최정상급 포수다.
김광현은 “몰리나는 내가 공을 잘 던질 수 있게 한 첫 번째 은인이다. 몰리나는 타자가 못 치는 공보다는 투수가 가장 잘 던질 수 있는 공을 던지게 하는 포수다. 그만큼 나에 대해 공부를 많이 했다는 뜻이다. 앞으로 몰리나와 계속 같은 팀에서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바람대로 ‘FA’ 몰리나는 세인트루이스와 극적으로 계약했다. 몰리나는 10일 MLB.com과의 인터뷰에서 "이곳이 나의 집이다. 세인트루이스에 남게 돼 기쁘다"는 소감을 전했다.
2004년 세인트루이스에서 빅리그에 데뷔한 몰리나는 17년 동안 한 팀에서만 뛴 프랜차이즈 스타다. 형제로 여기는 웨인라이트도 몰리나의 잔류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몰리나는 "웨인라이트는 내가 세인트루이스와 재계약을 결정한 가장 큰 이유"라고 말했다. 웨인라이트는 지난달 말 세인트루이스와 1년 800만 달러에 계약했다.
김광현을 울컥하게 했던 두 명의 은인이 모두 잔류했다. 코로나19로 암울했던 첫 시즌을 환하게 밝혀준 은인들과 최소 1년 더 뛸 수 있게 됐다. “지난 시즌은 제대로 준비를 못했다”며 2021시즌을 잔뜩 벼르고 있는 김광현이 불혹의 은인들과 어떤 감동을 선사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