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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가 콤플렉스가 초래한 보복과 숙청의 정치


입력 2020.11.02 09:00 수정 2020.11.02 08:27        데스크 (desk@dailian.co.kr)

노무현‧문재인 가둬버린 혁명론

적폐 청산한다며 징벌에 매달려

공수처가 안전 지켜줄 수 있을까

ⓒ데일리안 DB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문재인 대통령은 혁명(가) 콤플렉스에 사로잡힌 인상을 주고 있다. 자신들의 정치적 부상과 가외의 성공을 ‘혁명’으로 설명하려는 열망이 너무 컸던 것으로 짐작된다. ‘혁명’이 아니고는 자신들의 극적인 등장을 제대로 설명할 스토리를 꾸며낼 수가 없다고 여겼던 듯하다. 정치과정에는 의외성이 있게 마련이라고 여겨, 자신들의 정치적 성취도 그 같은 정치현상의 하나로 인식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너무 과도한 욕심을 부린 것이다.


우리 현대사의 정치리더들 중에 노‧문만큼 쉽게 권력을 쟁취한 사람은 없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 모두 유장한 배경적 스토리를 갖고 있다. 김영삼‧김대중 대통령도 그 점에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전두환‧노태우 대통령의 경우는 10‧26사태 이후의 정치적 혼란기에서 사건적으로 등장했다. 그 때문에 충분히 징벌을 받고 망신도 당했다.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의 경우도 다양하고 복합적인 배경을 갖고 있긴 했지만 큰 틀에서 말하자면 비로소 제도에 의한 집권, 그러니까 국민이 평가하고 심판하고 선택한 결과였다.


노무현‧문재인 가둬버린 혁명론


그 점에서 노‧문 두 대통령도 다를 바가 없다고 하겠는데 과도한 의미부여 욕구가 결국 기형적 정권을 만들어내고 말았다. ‘기형적’이라는 표현에 너무 기분나빠할 필요는 없다(혁명이 필요한 시기도 아니고 분위기도 아니었는데, 선거를 통해 당선된 대통령이 사후적으로 ‘혁명’을 선포하면서 정권을 그쪽으로 몰아갔다는 뜻으로 하는 말이니까.)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든 건 ‘시민혁명’이라고 외쳤다. 그는 취임 이듬해 프랑스를 방문해서 자신은 혁명을 좋아하며 특히 프랑스 혁명을 좋아한다는 말을 서슴없이 했다. 후보 적에는 ‘신행정수도 건설’을 공약하더니 당선 후엔 ‘천도’라고 표현을 바꿨다. “천도(遷都)는 한 시대 지배세력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라며 그 일에 집착했다. 왕조시대의 역성혁명을 염두에 둔 말이었을 것이다.


유권자는 혁명을 하는 기분으로 그를 선택한 게 아니었다. 유권자 지층이 바뀐 결과였다. 김대중의 당선에서 이미 그런 현상이 가시화됐었다. 이 경향이 노무현 때에 와서는 인터넷의 확산 등으로 더 적극화했다. 물론 극렬지지층은 혁명을 한다는 기분을 가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국민 전반의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리고 노 후보는 가까스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이겨냈을 뿐이다. 그의 승리엔 김대업, 설훈 류의 모함, 흑색선전이 크게 한몫했음을 부인할 수도 없다.


어쨌든 노 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들에 비해 너무 쉽게, 그러면서도 극적으로 얻은 승리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지 못했다. 그 욕구가 ‘시민혁명론’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렇지만 그 주장은 확산되지 못했다. 그런 인식이 수용될 수 있기엔 우리 사회가 너무 평온했었다. 그리고 그의 리더십이 혁명론을 뒷받침하는데 턱없이 부족했다. 그는 취임과 동시에 보수는 물론 진보로부터도 파상적인 공격을 받았다. 돌파해보려고 했지만 그의 편조차 힘을 보태는데 인색했다.


적폐 청산한다며 징벌에 매달려


문재인 대통령의 집권 과정은 더 쉬웠다. 사실 그 자신이 한 일은 별로 없다. 한마디로 하자면 ‘노무현 대통령의 음덕’이었다. 90년대를 통해 급격히 비대해진 좌파세력의 우파에 대한 공세가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관통하며 과격화했다. 그 추동력은 ‘복수심’이었다. ‘노무현의 자살’은 우파 정권에 의해 강요된 것이라는 논리가 좌파세력뿐만 아니라 일반국민의 복수심을 자극했던 것이다.


문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이 존경하는 절친, 마지막 비서실장, 탄핵 변호인, 노무현 재단 이사장이라는 상징성으로 어렵잖게 좌파의 ‘대안’이 됐다. 또 그 덕에 어떤 정치적 고난도 겪은바 없는 이력으로 다 차려진 상을 차지할 수 있었다.


좌파라면 당연히 가졌어야 하는 화려하고 장기적인 투쟁경력이 그들에겐 없었다. 그런데도 대통령직은 투쟁가들이 아닌 이 두 사람에게 주어졌다. 지지세력들에게 회의감을 안겨주지 않으면서 국민적 지지를 유지해나갈 수 있는 ‘신화’가 필요했다(더욱이 문 대통령은 그 좋은 여건에서도 41%의 득표에 그쳤다). 그래서 고안된 것이 ‘촛불혁명론’이었다(좌파운동권의 핵심들, 그러니까 혁명론자들로 참모진을 구성했던 배경도 이렇게 짐작할 수가 있다).


혁명은 천둥번개요 벼락이다. 그래서 이들은 ‘적폐청산’의 기치를 내걸었다( 문재인 대통령 개인으로서는 이때부터 투쟁을 시작한 셈이다). 적폐청산은 누적된 폐단을 청산하는 작업이어야 한다. 그런데 정권측은 노무현 정권 다음의 우파정권 담당자들에 대한 인적 청산에 매달렸다. 당시 대통령을 비롯, 정권 핵심에서 일했던 사람들의 감옥을 향한 긴 행렬이 생겼다. 그 대열에는 직전 정부 대통령뿐만 아니라 그 전 정부의 대통령도 포함됐다.


공수처가 안전 지켜줄 수 있을까


혁명 검찰과 혁명법정은 박 전 대통령에게 32년(현재까지 받은 형량), 이 전 대통령에게 17년(확정)의 징역형과 엄청난 금액의 벌금‧추징금이라는 징벌을 내렸다. 살아서는 교도소 문을 나설 생각을 말라는 뜻이겠다.


문 대통령도 너무 나갔다고 여길 법하다. 직전 정부, 우파 정부 격하 및 보복으로서는 정도가 지나치게 심하지 않은가. 너무 오래 끈 바람에 퇴로가 막혀버렸다. 당할 만큼 당한 사람들로서는 두려울 게 없다. 그러니 사면의 효과도 기대할 바 못된다. 설령 멈출 생각이 있더라도 극렬 지지자들이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이래저래 계속 직진하겠다는 것인데 언제까지나 자신이 칼자루를 쥐고 있을 것은 아니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 검찰을 무력화시키고, 경찰을 순치하고, 공수처라는 초법적 수사 및 기소 기관을 운용하겠다고 기를 쓰는 듯하다. 그야말로 범정권적 권력집중 작업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2차 혁명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게 언제까지 문재인 정권 보호막이 되어줄까? 누구에게도, 어느 기관에도 책임을 지지 않는 공수처가 과연 문재인과 그의 사람들에게 영구히 충성을 다 하리라고 기대하긴 어렵다. 뻔 한 이치 아닌가. 그런데도 ‘공수처’야말로 자신들의 안전을 지켜줄 든든한 방벽이라고 여겨 그 출범에 올인하는 모습들이 기이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대법원 확정 판결 후 “법치가 무너졌다. 언젠가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훨씬 할 말이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말을 않고 있다. 그들의 감옥 위로도 세월은 흐른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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