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회말 홈스틸 시도한 마고, 재키 로빈슨 떠올라
발 빼고 송구한 커쇼의 기본기도 칭찬 받기 충분
메이저리그 전 구단 영구결번(42번)으로 유명한 재키 로빈슨은 최초의 흑인 선수라는 상징 외에 실력도 매우 뛰어난 선수였다.
그는 1947년부터 1956년까지 10년간 브루클린 다저스(현 LA 다저스)에서만 활동했는데 통산 타율 0.311 137홈런 734타점을 기록했고 MVP와 신인왕, 타격왕까지 거머쥐며 당대 최고의 선수로 활약했다.
로빈슨을 평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바로 도루다. 그는 선수 시절 두 차례 도루왕에 오른데 이어 197개의 도루를 적립했고, 무엇보다 홈스틸도 19개에 달할 정도로 상대 배터리의 혼을 쏙 빼놓았다.
로빈슨의 신들린 주루 플레이는 최근 개봉한 영화 ‘42’에서도 잘 표현된다. 루상에 나간 로빈슨은 몸을 요리조리 흔들면서 상대 투수의 신경을 자극했고, 그 결과 1955년 뉴욕 양키스와의 월드시리즈 1차전서 역사적인 홈스틸을 성공하게 된다. 게다가 상대는 양키스 역대 최고의 배터리라 불리는 화이티 포드-요기 베라였다.
시간이 흘러 65년이 지난 이번 월드시리즈서 재키 로빈슨을 떠올리게 할 주루 플레이가 나왔다. 공교롭게도 로빈슨의 정신을 이어받은 다저스가 아닌, 그들과 상대한 탬파베이였다.
이날 탬파베이는 정교하게 제구 된 커쇼의 공을 제대로 공략하지 못했다. 그리고 맞이한 4회말. 커쇼로부터 볼넷을 골라 출루한 마고는 기습적인 2루 도루를 시도했고, 송구가 뒤로 빠진 틈을 타 3루까지 진출했다.
무사 상황이었기 때문에 탬파베이 입장에서는 절호의 득점 찬스였고, 실점 위기에 몰린 커쇼는 타자와의 승부에 집중해야 했다. 이때 3루 주자 마고가 커쇼의 와인드업 자세를 취한 틈을 이용해 홈으로 파고 들었다. 이에 놀란 커쇼도 황급히 공을 홈으로 던졌다.
마고의 헬멧이 벗겨질 정도의 접전. 바로 앞에서 지켜본 주심은 아웃 판정을 내렸다. 만약 마고의 슬라이딩이 세이프 판정을 받았다면 3-3 동점이 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순간이었다.
다만 아쉽게도 아웃으로 판정됐지만 팬들 입장에서는 야구의 묘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장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홈스틸 자체가 흔히 볼 수 없는 플레이인데다가 월드시리즈와 같은 큰 경기에서 시도하기란 더욱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마고의 담대한 플레이는 강인한 심장과 배포를 지녔던 재키 로빈슨을 떠올리게 하기 충분했다.
더욱 대단했던 이는 바로 커쇼다. 이미 와인드업 자세에 들어갔기 때문에 그대로 공을 던졌다면 보크로 판정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홈 송구 사인을 포착한 커쇼는 곧바로 발을 뺀 뒤 공을 던졌고 그대로 아웃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커쇼의 탄탄한 기본기와 빠른 눈치가 만들어낸 명장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