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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만해?] '도망친 여자', 불편한 관계에 도망치지 않는다는 것


입력 2020.09.13 13:00 수정 2020.09.13 10:01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주)영화제작사전원사

대화 속의 파동은 누군가의 하루 끝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린다. 사랑과 일상을 공유하며 만들어낸 대화 속 주제는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특별해 보이지 않지만 각자 다른 배경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 각각 다르게 마음에 심어진다. 그렇게 그들의 하루를 엿보다 제목과는 다르게 난처한 상황에서 도망치지 않는 여자들을 발견하게 된다.


홍상수 감독의 스물 네 번째 장편 연출작 '도망친 여자'는 감희(김민희 분)가 남편이 여행 간 사이, 친구 영순(서영화 분), 수영(송선미 분)의 집을 차례로 찾는다. 그리고 혼자 간 독립영화관에서 과거에 멀어졌던 친구 우진(김새벽 분)을 만난다.


감희가 찾아간 친구들은 각자 도망치고 싶은 영역이 있다. 영순이 도망치고 싶었던 순간은 이혼이다. 영순는 위자료와 대출금을 합쳐 빌라를 샀고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또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말라는 이웃의 등장이 영순을 난처하게 만든다. 하지만 영순은 사과는 하면서도 그럴 수는 없다고 피하지 않는다.


수영은 10억 넘게 모아놨다며 이제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것이라고 도망치고 싶은 과거의 돌파구를 마련했다. 또 감희와 식사 중에 찾아온 젊은 시인은 수영에게 왜 자신을 버리냐고 따져묻는다. 수영은 감정적으로 불안한 젊은 시인에게 물러서지 않고 매서운 말로 쏘아붙인다. 비록 돌아와서 해코지를 할까, 썸을 타고 있는 남자가 알게 될까 무섭지만 말이다.


우진에게 도망치고 싶은 사건은 감희의 옛 연인인 성규(권해효)와 결혼한 일이다. 제대로 사과하지 못했던 죄책감을 가지고 지내다 우연히 만난 감희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 자신의 과오를 늦었지만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한다.


감희의 불편한 순간은 옛 연인 성규다. 성규와 인사를 나누다 불쾌해진 감희는 피해 영화관을 나서다 무언가 결심한 듯 다시 돌아와 상영관으로 들어간다.


'도망친 여자'는 홍상수 감독과 연인 김민희가 일곱 번째 함께한 작품이다. 제 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 쿠레슈티 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 스페인 산세바스티안 영화제의 경쟁 부문에도 초청받았다. 불륜이란 이슈를 가지고 있어 국내에서는 차가운 반응일지라도, 해외에서만큼은 홍상수 감독의 작품을 높이 사고 있다.


영화는 홍상수 감독이 재치가 곳곳에 숨어있다.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도 뚝뚝 끊기는 타이밍이 실소를 터지게 한다. 홍상수 감독표 촌철살인도 기대해도 좋다.


등장인물들이 많이 등장하지 않아 단조로울 수 있는 신은 롱 테이크 안에서 줌, 인 아웃 연출기법으로 리듬감을 줬다.


홍상수 감독의 트레이드마크인 '지질한 남자'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도망치고 싶은 순간 혹은 관계를 만드는 남자들을 정면이 아닌 뒷모습만 비춘다. 그들은 자신 만의 논리를 떠들다가 어김없이 뒷모습으로 사라진다.


아쉬운 점은 홍상수 감독과 김민희의 관계 때문에 영화가 단순히 영화로만 보여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무조건 붙어있어야 된다고 그렇게 말하더라고", "우리가 맞는 부분이 많아 싫었던 적이 없다", "생각보다 잘 맞아서 계속 붙어있어도 좋았다" 등의 남편과의 관계를 설명하는 감희의 대사는 홍상수 감독과 김민희의 사생활이 투영될 여지가 있다. 이것을 자전적 고백으로 받아들일지 영화 속 감희에게 오롯이 이입할 지는 관객의 몫이다. 17일 개봉.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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