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저소득 계층의 생존소득 보장은 선진국으로 가는 기본
그러나 비유는 시대에 맞아야 하고 돈보다 제도에 중점 둬야
의제는 잘 띄웠다.
보수 진영 안에서 반대와 비판의 목소리가 높으니 아주 나쁘진 않다고 해두자. 2022년 대선을 목표로 잡고 어젠다(Agenda, 의제) 선점 작업에 나서고 있는 한국 보수당 비대위원장 김종인의 기본소득 화두와 관련해, 이 대선 출전에 뜻이 강한 경기도 지사 이재명이 "정부와 민주당이 포퓰리즘 비판이 두려워 머뭇거리는 사이 (김종인의 당이) 그들의 주요 어젠다로 만들어 가고 있다"라고 초조한 마음을 토로했을 정도이다.
그러나 그 비유가 좀 낡고 어설퍼서 “저 말이 대 김종인 입에서 나온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대(大) 김종인이란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의 후손으로서 명문 대학 교수도 지냈고, 박정희 정부와 노태우 정부 등에서 굵직굵직한 정책들을 만들어 냈으며, 2000년대 한국의 여야당 선거 사령탑으로 두 번이나 승전을 이끈 실력파이기에 그렇다.
“배고픈 사람이 모락모락 김이 나는 빵을 보고도 사 먹을 수 없다면 자유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필자는 신문에서 이 인용문을 보고 한참을 생각했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빵이라니... 지금이 60년대인가, 70년대인가? 인터넷으로 전해지는 현재 한국의 생활상은 김 나는 빵 먹고 싶은 단계는 오래 전에 졸업했고, 비싼 소고기를 맘껏 먹고 싶은 게 서민들의 요구이다.
물론, 안다. 그가 이런 시대 변화를 모르고 그런 레토릭(Rhetoric, 修辭學)을 구사했을 리는 없다. 하지만 시험 문제의 답은 알고 잘못 썼더라도 틀린 건 틀린 것이다. 2020년에 맞게, 더 바란다면, 2022년에 맞을 비유를 미리 생각해서 말을 했어야 했다.
김종인의 어설픈 비유에 대해 험담을 길게 펴는 이유는 그의 말이 보수당의 사활에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는 ‘과거의 가치관과 멀어지는 일이 있어도 너무 시비하지 말아 달라’ ‘시대가 바뀌었으니 진보·보수·중도라는 말은 쓰지 말라’는 등의 한 자락 미리 깔기로 자나 깨나 나라 걱정이 일인 ‘꼴통 보수’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고 불안하게 했다.
어떤 파격을 위한 포석이었다고 할지라도 이런 말을 굳이 할 필요는 없었다. 먼저 적을 많이 만들어 놓고 더 힘겨운 싸움을 하는 것과도 같은 식이다. 그냥 진영에 관계없이 절대 다수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기본소득 같은 어젠다를, 비유도 세련되게 시대에 맞게 하면서, 학자 출신다운 설득력으로 제시하기만 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의 모델은 현 독일 집권 보수당, 앙겔라 메르켈의 기독민주당(Christian Democratic Union, CDU)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독일에서 공부한 경제학 박사이며 독일 정치와 경제에 깊은 지식과 경험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독일 기민당은 보수당이면서도 사회 변화에 따라 정책을 과감히 수정해 오면서 오랫동안 정권을 잡고 있다. 진보 어젠다를 선점, 좌파 정당이 설 자리를 잃게 한 그 당의 유연성에 김은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가 훨씬 더 잘 알고 있겠지만, 한국은 독일이 아니다. 국민도 문화도 경제도 다르고, 더욱 중요한 것은 노조도 다르다. 좌클릭 일변도로 나가면 진보좌파 집권 세력과의 무책임한 포퓰리즘 경쟁에 지나지 않으며 그러면 결국 나라가 거덜 나지 않겠느냐는 보수우파의 우려가 커질 것이다.
사회주의 색채가 가미된 캐나다에서 20년 살아보니 선진국의 복지란 '어떤 상황에서도 굶어 죽지는 않을 것이라는 안심 제공'이란 말로 표현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쉽게 말하면 제도적 장치이고, 다른 말로 사회안전망이 개인들을 보호해 주고 있는 사회인 것이다.
여기서는 레이오프가 쉽게 일어난다. 한국과 토양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회사가 어려우면 직원들을 내보내는 것이다. 노조가 있어도 레이오프를 막을 수는 없다. 노사협약에서 그것은 예외로 규정돼 있다. 자기 과실이 아닌 경영 문제로 해고가 됐을 경우 EI(Emploment Insurance, 고용보험)를 받아서 생활한다.
의료비는 무료에 장애인이 되면 장애 연금을 받는 건 물론이고, 65세가 되면 개인연금과 국민연금 외에 노령연금(Old Age Security, OAS)이란 걸 받게 된다. 여기에 GIS(Guaranteed Income Supplement, 소득보장보조금) 라는 게 보태진다. 국민연금이나 직장연금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생존비용을 나라에서 대주는 것이다.
이 OAS+GIS 가 한 달에 대략 2300불 정도 된다. 1세대 한국인 이민자들은 대개 변변한 직업을 갖지 못하고 스몰 비즈니스들을 했기 때문에 이 돈을 받는 부류에 속한다. 한국 화폐 가치로 약 200만원이다. 주택 모기지와 자동차 할부금을 다 끝내고 더 이상 다른 부담이 없는 사람들은 이 돈이 남는다. 식품과 골프 등 여가생활 비용이 2000불이 안되기 때문이다. 소고기도 자주 사먹을 수 있는 돈임은 물론이다.
이 같은 고용보험, 노령연금 등 지속적인 사회보장 제도에 더해 이번 코로나 사태 같은 재난시에 지급하는 일시 지원금도 돈 100만원 가지고 주네마네 논란을 한 한국 정치인들에게는 지극히 놀라운 규모일 것이다. 3월부터 6월까지 4개월 동안 주는 실직자 생계 지원금만 월 2000불이다. 이것 말고 연방정부는 육아수당, GST(Goods and Services Tax, 부가가치세) 환급금, 노령연금 등의 일회적 인상, 전기요금 감면, 주택 몰기지 6개월 연기 등을 제공하며 주정부도 따로 지원금을 일시적으로 준다.
한국 보수당이 불평등 해소와 약자들을 위한 좌클릭 어젠다를 선점해 2년 후 대선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면 이런 지속가능한 제도적 장치를 튼튼하게 갖추는 작업을 시작해야 할 것임은 불문가지이다. 그렇지 않고 혹시라도 돈 살포에 지나지 않는 효과에 그친다면, 좌파의 포퓰리즘에서 한 수 더 뜬 꼴이 되고 말리라고 본다.
기본소득(Basic Income)이 그렇지 않은 방향과 내용이 되는 제도로 다듬어져 이재명이 또 한 번 탄식하게 되기를 바라고 싶다. 재원 조달 방안, 기존 복지 제도들과의 조정 등에 관한 확실한 해답 제시를 통해 '좌파 정책'이 아니란 것을 보여 주길 기대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80노인 김종인을 보좌하는 사람들이, 나이 탓으로 보고 싶지만, 그의 입에서 가끔 헛나오는 불필요하고 시대에 맞지 않는 레토릭부터 바로잡아 주어야 할 것이다.
글/정기수 자유기고가 (ksjung724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