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 100일] 계속되는 압박에 고민 빠진 보험사
'국민보험' 실손·車보험, 서민 물가 안정화 정책 타깃 되나
30만 설계사 고용·산재 보험 의무화 공약 현실화될까 관심
수익은 줄고 비용은 늘고…부담 늘어난 보험업계 전전긍긍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계속되는 압박에 보험사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서민 생활 물가 안정화에 나선 정부가 보험료 잡기에 나서면서, 국민보험인 실손의료보험과 자동차보험부터 타깃이 된 모양새다.
여기에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 노동 3권 보장에 나서겠다고 약속한 특수고용직의 절대 다수가 보험설계사들인 만큼, 공약이 현실화 될 경우 보험료와 더불어 보험사의 새로운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12일 정부에 따르면 2022년까지 자기공명장치(MRI)·초음파 촬영처럼 치료에 필수적인 비급여를 모두 급여화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이에 따르면 미용이나 성형 등 치료와 무관한 항목들만 비급여로 남게 된다. 암과 심장·뇌혈관·희귀 난치 질환 등 4대 중증 질환에 한정했던 의료비 지원은 모든 중증 질환으로 확대된다.
건강보험 보장 확대, 실손보험 직격탄
이 같은 정책이 현실화 되면 민간 보험사들은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실손보험료를 인하하라는 정부와 여론의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어서다.
앞선 지난 6월 이번 정부의 인수위원회 역할을 하던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실손보험료 인하를 유도하기 위해 건강보험과 민간의료보험 연계법을 올해 안에 마련해 제정하겠다고 밝히면서, 건강보험의 보장 확대로 최근 5년 동안 민간 보험사들이 1조5000여억원의 반사이익을 봤다고 주장해 보험업계의 반발을 샀다.
이는 보험사들이 실손보험에서 손실을 보고 있어서다. 국내 생명·손해보험사들의 지난해 실손보험 손해율은 평균 122.7%였다. 손해율은 보험사가 가입자들로부터 받은 보험료 대비 지급한 보험금의 비율을 의미한다. 즉, 손해율이 100%를 넘는다는 것은 보험사가 거둬들인 보험료 보다 내준 보험금이 더 많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번에 정부의 방안처럼 건강보험의 보장이 크게 확대되면 보험사들의 실손보험료 인상 명분은 사실상 사라지게 되는 셈이다. 이에 따라 보험사들이 실손보험료 인상에 스스로 제동을 걸 수밖에 없을 것이란 해석도 제기된다.
보험사 입장에서 더 큰 문제는 실손보험의 필요성 자체가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가입자가 3400만명에 이르며 국민보험으로도 불리고 있지만, 비급여 진료항목 감소로 추가로 낼 진료비가 줄면 실손보험에 가입할 이유가 그 만큼 줄기 때문이다. 실손보험의 위상이 떨어지면서 보험사의 주요 상품 하나가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실손보험發 보험료 압박, 車보험으로 전이
정부의 공식적인 보험료 낮추기 정책은 실손보험에서 시작됐지만, 실제로 먼저 조정이 일어난 것은 자동차보험이었다.
국내 주요 손해보험사들은 올해 들어 자동차보험에서의 수익성이 개선되고 있다며 일제히 보험료 인하를 결정했다. 하지만 정부가 실손보험을 필두로 생활과 밀접한 상품의 보험료 인하 요구를 노골적으로 내보인 상황 속에서 벌어진 일인 탓에, 코드 맞추기 차원이란 해석도 만만치 않다.
삼성화재와 현대해상, 동부화재, KB손해보험, 메리츠화재 등 국내 5대 손보사들은 모두 최근 몇 개월 사이 자동차보험료 인하를 발표했다.
근거는 손해율 하락이었다. 실제 이들 손보사들의 올해 1분기 손해율은 평균 77.46%로 전년 동기(81.79%) 대비 4.34%포인트 하락하며, 80% 아래로 떨어졌다. 손보업계에서는 통상 78% 정도를 적정 손해율로 보고 있다.
그런데 자동차보험료 인하 행렬의 이유가 단지 손해율 개선 때문만이 아니란 의견도 계속된다. 손보사들이 보험료를 낮추라는 정부의 눈치 보기에 나선면도 적지 않다는 풀이다.
설계사 노동권 보장, 예고된 뜨거운 감자
보험업계에 큰 영향을 끼칠 새 정부의 정책은 아직 더 남아 있다. 30만명이 넘는 보험설계사에 대한 노동 3권 보장 여부는 앞으로 예고된 뜨거운 감자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이 권리 보호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 노동 기본권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지난 5월 고용노동부에 이들의 노동 3권을 보장할 것을 권고하면서 힘을 보탠 바 있다.
특수고용직 노동자는 근로계약이 아닌 용역·도급 형태로 계약을 맺고 일을 하는 근로자들을 가리킨다. 보험업계가 촉각을 기울이는 이유는 이 중 절대 다수가 보험설계사여서다.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보험설계사 수는 34만305명으로 다른 특수고용직인 학습지 교사(6만1130명), 골프장 캐디(2만8159명), 신용카드 모집인(1만8544명) 등을 압도한다.
이들에 대한 노동 3권 보장이 이뤄질 경우 핵심은 고용·산재 보험의 의무화다. 이렇게 되면 보험사의 부담은 크게 늘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이미 1조5000억원 가량의 추가 비용이 들 것이란 추정도 나온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정책 기조에는 적극 동의하지만, 보험업계에 유난히 많은 부담이 한꺼번에 지워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생활 물가와 밀접하게 닿아 있는 보험료에 대한 인하 요구와 함께 사회적 비용은 더욱 늘이라는 분위기 속에서 보험사들의 고민은 점점 깊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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