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특별연장근로 특례 이르면 내주 시행
반도체특별법은 13일 패스트트랙 지정 앞둬
"TSMC가 100시간씩 일해서 1등 된게 아니다"
"노사·정부가 긴밀히 대화하고 개선책 찾아야"
반도체특별법 내 '주 52시간 적용 예외' 조항의 명문화가 사실상 어려워지면서 정부가 내놓은 '특별연장근로 기간 확대' 카드에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기술 패권 경쟁이 한창인 국내 반도체 업계의 숨통을 터줄 것이란 기대가 커지는 가운데, 일각에선 이마저도 미봉책에 불과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오는 13일 본회의를 열고 반도체특별법을 신속처리(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 처리할 방침이다. 패스트트랙 지정을 위해서는 국회 재적의원 5분의 3(180명)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170석의 의석을 가진 민주당에 12석을 가진 조국혁신당의 지지가 더해지면 처리가 가능한 상황이다.
다만 연구직종 근로자의 '주 52시간 적용 예외' 조항은 포함되지 않을 전망이다. 반도체 연구개발(R&D) 직종 근로자에 한해 주 52시간 근로 시간 준수를 적용하지 않도록 하는 게 조항의 골자다.
그간 여야는 R&D 직종에 한해 근무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의견과 '주 52시간 적용 예외' 조항이 악용될 수 있다는 의견을 각각 내세우며 총돌해왔다. 더불어민주당은 근로시간 규제 예외 조항은 뺀 반도체 특별법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해 처리하자는 입장이지만, 국민의힘은 해당 조항이 포함된 입법을 주장하고 있다.
반도체 기업들은 글로벌 패권 경쟁이 한창인 상황에서 반도체특별법 제정을 통해 주 52시간 근로제한 규정을 완화해 달라는 입장이다. 반도체 기술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연구개발에 재정적 투자 외에도 시간 투자가 절실한 데 주 52시간 규제가 혁신의 발목을 잡는다는 게 업계의 입장이다.
업계의 요구에도 법 제정의 키를 쥔 거대 야권이 끝까지 반발하면서 반도체특별법 내 주 52시간 적용 예외 조항 추가가 사실상 어려워진 상황이다.
이에 정부는 반도체 R&D 직군에 대한 주 64시간 특별연장근로 제도 활용 확대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 11일 산업통상자원부와 고용노동부는 반도체 기업들과 간담회를 열고 특별연장근로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안덕근 산업부 장관은 간담회에서 "반도체 전쟁은 기술 전쟁이고, 기술 전쟁은 결국 시간 싸움"이라며 제도 개선 의지를 드러냈다. 김문수 노동부 장관도 "관계부처와 협력해 정부 차원의 조치를 조속히 마련하겠다"고 말하며 힘을 보탰다.
간담회에 참석한 반도체 소부장 기업들도 의견을 피력했다. 이준혁 동진쎄미켐 부회장은 “늘 납기를 고려해야 하는데 근로시간 규제로 어려움이 많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안태혁 원익IPS 대표는 “반도체는 속도가 핵심이라 특정 시기 필요하다면 6개월 정도는 노사가 합의해서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해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힘을 보탰다. 그는 이날 열린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 겸 경제관계장관회의 겸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근로시간 특례 규정이 반도체 특별법에 포함돼야 하지만 여야 간 입장 차이가 여전히 좁혀지지 않고 있다"며 "정부는 기업들이 필요 시 근로 시간을 더욱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특별 연장근로 인가 제도를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경제계도 환영의 뜻을 내놨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글로벌 수요 둔화, 공급망 불안, 후발국의 추격 등 반도체 산업이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정부가 반도체 연구개발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 보완방안을 마련한 것을 환영한다"며 "이번 개정으로 연구 현장의 근로시간 제약이 다소나마 완화될 것으로 기대되며, 이는 기술 혁신과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의미있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특별연장근로제는 불가피하게 법정 근로시간을 초과해야 할 경우 노동자 동의와 노동부 장관의 인가를 거쳐 주 64시간까지 연장근로를 가능케 하는 제도다. 1회 인가 기간은 3개월이고 최대 3번 연장할 수 있다. 노동부는 특별연장근로제의 1회 최대 인가 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으로 늘리는 내용의 행정지침 개정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특별연장근로 특례는 이르면 내주 시행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실제로 이같은 제도 개선이 주 52시간 적용 예외 조항 삽입을 원하는 반도체 업계의 숨통을 터줄 것이란 의견이 나오지만, 일각에선 이번 조치가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반도체 연구개발 직종의 한 연구원은 "기업들이 사실상 '플랜B'로 내놓은 요구가 받아들여졌다는 점에서 핵심 기술 개발에 더욱 몰입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질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다만 이보다 더 명확한 규제 완화가 필요한 것은 여전히 남은 과제로 보인다. 새로운 기술 개발에 수개월이 필요한 데 규제로 근무시간이 제한되면 속도를 내지 못하고 뒤처지는 상황은 여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 안팎에선 근무 시간이 본질적인 개선책이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학과 교수는 "TSMC가 60시간, 70시간 일하면서 세계 1등이 된게 아니다. SK하이닉스도 지금 조건에서도 충분히 HBM 경쟁력을 갖췄다"면서 "노사와 정부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문제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