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머리카락에 은빛을 드리우고, 손에는 깊은 골을 새겼다. 이 자국들이 나이 듦이나 단지 노쇠함만을 말하지 않는다. 늦었다 싶은 나이에 고향을 찾은 이들이 있다. 그것은 지혜이고, 흙과 생명을 이해하는 힘을 상징한다. 그 힘을 안고 고향으로 돌아온 것은 단순한 귀농이 아니라 인생의 귀향이다.
정년을 맞자 고향 영천의 땅에 샤인머스켓 묘목을 심은 사돈의 이야기는 봄날의 씨앗처럼 희망을 싹틔우는 여정이었다. 공무원이라는 안정된 길을 뒤로하고, 흙냄새 가득한 삶을 선택한 그는 진정한 농부의 표상이었다. 6백여 평의 논을 밭으로 일구어 묘목을 심어 온 정성을 다한 결과 3년 후부터 푸른 열매를 맺었다. 수확의 기쁨은 하늘을 찌를 듯했다. 고생하며 손수 가꾸어 얻은 첫 결실이니 그러지 않겠는가. 포도 수확 철에는 부족한 일손을 돕기 위해 우리 부부도 2박 3일 동안 그곳에 머물렀다.
흙 속에서 자란 열매를 손수 따며 땀과 웃음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풍요로움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돈이 된다”는 소문에 과잉 재배된 샤인머스켓은 가격이 내려갔고 농부들의 기대는 무거운 한숨을 바뀌었다. 그럼에도 사돈은 후회하지 않는다. 한 알의 열매에도 자신의 땀과 정성이 배어 있음을 알기에 오늘도 땅을 쓰다듬으며 흙 내음을 맡는다.
농장 이웃에는 아흔의 어머니가 고향 집을 지키고 계신다. 뽀얀 얼굴과 고운 손은 아들이 자주 들러 챙긴 효심의 증거일 것이다. 일하는 틈틈이 집에 들러 밥을 챙겨 손수 입에 넣어 드리고 틀니를 살펴주는 모습은 마치 어머니가 아기를 돌보는 것처럼 정성스럽다. 그 모습을 보노라면 문득 요양원에서 돌아가신 어머니가 떠오른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어머니를 끝내 모셔 오지 못한 불효의 기억이 가슴을 찌른다. 흙냄새 나는 손으로 어머니를 돌보는 사돈의 모습이 어찌나 부럽던지. 사랑하는 아들이 고향을 지키며 어머니의 곁을 채우는 풍경은 한 편의 시가 아니고 무엇이랴.
서울에서 분주한 일상 속에서도 고등학교 시절의 한 친구는 고향 여주를 떠나지 않는다. 젊지 않은 나이에도 주중에는 보험회사 책상에 앉아 생계를 이어가지만 진정한 삶은 고향의 들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주말이면 어머니가 계시는 고향으로 달려가 식사를 챙기고 넓은 농사일을 도맡아 한다. 구순이 넘은 어머니는 걸음걸이가 불편하여 문지방에 팔을 걸치고 앉아 아들이 일하는 모습을 바보며 그저 미소를 지으신다.
경운기와 트랙터를 다루며 수천 평의 벼농사와 고추와 고구마 같은 각종 밭작물도 재배한다. 바람에 흔들리는 이삭이나 주렁주렁 달리 빨간 고추를 보면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논밭에서 일했던 기억이 떠오르지 않겠는가.
친구는 단순히 농부가 아니다. 태어나고 자란 곳을 애무하는 사랑꾼이다. 동네 친구나 친척들과 함께 들판에서 흘리는 구슬땀은 젊은이들이 떠난 고향을 지키려는 의지가 보인다. 그의 손은 농작물뿐만 아니라 가족과 고향의 뿌리를 붙잡고 있다. 도시와 고향 두 세계를 오가며 삶의 균형을 이루는 것은 바람에 춤추는 벼 이삭처럼 자연스럽고도 강하다. 고향 사랑이 깊어 무농약으로 농사를 짓는다. 하지만 그의 세대가 고향을 지키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우려해야 하는 안타까운 처지다.
나의 고향은 어린 시절의 추억을 소환할 수 없을 정도로 산업화라는 거친 파도에 휩쓸려 공단으로 바뀌어 버렸다. 지금 그가 농사짓는 고향을 바라보면 실향민의 마음으로 그리움과 아쉬움을 느낀다. 고향이란 단순한 장소가 아니다. 마음이 머무는 곳, 기억이 살아 숨 쉬는 곳이 아닐까. 고향을 잃고 나서야 추억을 찾아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푸근하고 행복할까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예천에서 경찰서장으로 마지막 공직생활을 마친 군대 동기도 있다. 퇴직 후 도시의 번잡함을 뒤로하고 고향의 흙냄새 속으로 스며들었다. 천 평이 넘는 들판에 비닐하우스를 세워 남들보다 한발 앞서 추석 전에 탐스러운 포도를 출하하여 풍년의 결실은 거둔다. 농사를 지으며 얻은 이익을 초월해 고향의 숨결을 이어가려는 의지를 증명한다. 여유로운 시간에는 지역 사회를 위해 봉사하며 그곳에 더 깊은 뿌리를 내린다. 친구는 고향을 단순히 지리적 공간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땀이 스며들고 숨결이 묻히고 추억과 꿈이 자라는 생의 터전이다. 서울에서도 경찰서장으로 성공의 길을 걷던 친구는 모든 욕망을 내려놓고 고향을 마지막 근무지로 택한 것은 어쩌면 태어난 곳에 대한 깊은 그리움과 고향의 품으로 돌아가려는 숙명 같은 끌림 때문이 아니었을까.
고향의 경찰서장에 부임했을 때 자신을 위해 평생 헌신한 80대 노모를 취임식 단상에 모셨다. 어머니와 나란히 앉아 참석한 그의 모습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렸다. 바쁜 경찰 생활로 효도 한번 제대로 해 본 적 없는 것을 용서받기 위해 어머니를 모셨다며 직원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식장에서 받은 꽃다발을 어머니에게 전해줘 참석자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기도 했다. 37년간의 공직생활을 마치며 관내 경로당과 읍면 사무소를 찾아가 큰절로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없는 일을 한 친구가 한없이 부럽기만 하다. 내가 친구와 같은 입장이었다면 저런 용기와 발상을 할 수 있었을까. 지금은 포도를 완판하거나, 옛 친구와 소주 한잔하는 것보다 손주에게 용돈 주고 재롱 보는 것이 제일 즐겁다고 하는 진짜 할배가 된 것이다. 그의 말에 대부분 할아버지들은 고개가 끄덕여지리라.
직장 생활을 마치고 신중년의 나이에 귀향한 이들은 단지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흙 속에서 삶의 이야기를 심고 땀으로 그 터전을 일구어간다. 논밭과 비닐하우스는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성채와도 같다. 세월은 흘러 모든 것이 변해도 변치 않는 것은 고향을 향한 깊은 사랑이 아닐까. 고향의 흙 내음과 나이 드신 어머니를 향한 사랑이 이들을 고향으로 불러들였을 것이다. 고향이 사라지고 부모님마저 안 계시는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갈 수 있는 고향이 있다는 것만 해도 행복하다. ‘신중년의 귀환’이란 말은 단지 나이가 들어 돌아온 이들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삶의 근원을 찾아가는 모든 이들의 이름이 아닐까.
조남대 작가ndcho5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