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육사오(645)’
인간은 고상한 면도 있지만 탐욕스럽다. 20세기 후반 공산주의가 붕괴한 것도 이러한 인간의 원초적 본성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공산주의가 지닌 유토피아적 이상은 공동생산, 공동분배였다. 함께 일해 동일하게 나누면 사람들은 행복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였다. 열심히 일을 해봤자 돌아오는 몫은 많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원동력인 부에 대한 욕망은 공산주의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실제로 북한에서도 개인의 소유를 인정하는 분야에서는 생산성이 높았으며 인간의 욕망을 활용한 복권식 공채가 많이 팔린다고 한다. 영화 ‘645’는 돈과 욕망이 만들어낸 아이러니를 유쾌하게 다룬 이야기로 1등에 당첨된 복권을 두고 남북한 군인들이 소유권을 주장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최전방 부대에서 복무하며 전역을 코앞에 둔 말년 병장 천우(고경표 분)는 우연히 로또 복권을 줍는다. 맞춰보니 57억짜리 1등 복권인데 어쩌다보니 바람이 불어 군사분계선을 넘어간다. 이 복권을 북한 군인 리용호(이이경 분)가 줍게 되고 그 정체를 알게 된다. 이후 당첨금을 찾으러 갈 수 없는 북한 군인과 돈은 찾으러 갈 수 있지만 당첨 용지를 잃은 남한 군인의 갈등이 심화되고 이를 아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난감한 상황이 눈덩이처럼 커진다.
영화는 돈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유쾌하게 그린다. 살면서 1등 로또에 당첨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수많은 사람이 1등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매주 로또를 산다. 그러나 당첨되기란 쉽지 않다. 로또는 어쩌면 부의 대한 인간의 원초적 욕망이 이용해 매주 희망 고문을 내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남한군과 북한군 모두 57억짜리 1등에 당첨된 복권을 사수하기 위해 반강제 화합의 길로 나아가는 여정은 눈을 뗄 수 없는 기발한 스토리를 만들어 낸다. 영화는 로또를 소재로 인간의 욕망을 유쾌한 웃음으로 승화시켰다.
코미디 장르로 관객들의 마음을 이완시킨다. 장기화된 코로나로 많은 사람들은 지쳐 있다. 여름 성수기에 맞춰 극장을 찾았지만 카타르시스를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많았다. 텐트폴 영화 ‘헌트’ ‘외계+인’ ‘한산’ ‘비상선언’ 등은 무거운 소재 및 주제로 오히려 피로감만 주었다. 반면에 ‘645’는 힘을 빼고 볼 수 있는 영화다. 남북 분단의 비극에 천착해 아픔을 들추거나 눈물을 짜내지도 않는다. 1등에 당첨된 로또가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 손에 들어가는 설정, ‘공동경비구역 JSA’ 이후 20년 만에 GP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남북 청춘들의 이야기는 시종일관 유쾌하며 신선하기까지 하다. 개봉 전부터 입소문을 타며 관객을 모으는 이유다.
감독의 유쾌한 연출과 배우들의 열연도 관전 포인트다. ‘달마야 놀자’ ‘박수건달’을 통해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자연스러운 웃음을 끌어낸 바 있는 박규태 감독은 남한 병사와 북한 병사가 얽히고 설키는 상황 속에서 터지는 웃음을 제대로 잡아냈다. 여기에 배우 고경표, 이이경을 필두로 음문석, 박세완, 곽동연, 이순원, 김민호 등 코미디 연기가 가능한 배우들의 찰지고 능청스러운 연기 궁합은 영화를 더욱 빛냈다.
극장가 위기가 제기되고 있다. 200~300억 원을 투자한 블록버스터 한국 영화들이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코로나와 맞물려 티켓 값이 1만5천원 선으로 오른 데에도 있지만 무거운 주제로 코로나에 지친 관객들의 마음을 읽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영화 ‘645’는 영화가 그 시대의 사회적 여건과 연관이 있으며 동시에 참신한 아이디어만 있다면 50억원 선의 저렴한 제작비로도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음을 알려준다.
양경미 / 연세대 겸임교수, 영화평론가film102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