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주> 우리나라는 음주공화국이라 할 만큼 음주에 관대한 사회입니다. 반면, 술로 인한 폐해는 매우 심각합니다. 주취자의 강력범죄가 증가하고 알코올중독자가 양산됩니다. 평화로운 가정과 사회가 풍비박산나기도 합니다. 술 때문에 고통 받는 개인과 가정, 나아가 사회의 치유를 위해 국가의 음주·금주정책이 절실하게 요청됩니다. 술은 야누스의 얼굴을 가졌습니다. 항상 경계해야 하는 마음으로 이 소설을 들려드립니다.
제32화 청주여자교도소
이철백은 인터폰으로 맥주와 마른안주를 주문해 놓고 욕실에 들어갔다. 샤워를 하고 욕실을 나오니 어느새 맥주와 안주거리가 와 있었다. 방선희는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방안에 담배연기가 자욱했다. 샤워를 하고 나오는 이철백이나 담배를 물고 앉아 있는 방선희나 두 사람 모두 어색함이라고는 없었다.
“담배 필래?”
방선희가 담뱃갑을 들이밀자 이철백이 손바닥을 펼쳐 보이며 거절했다. 방선희는 담배를 비벼 끄고 이철백의 글라스에 맥주를 채워주었다. 거품이 넘쳐흐르는 것을 보고 방선희가 얼른 손으로 잔을 훔쳤다.
“오랜만이다. 깜짝 놀랐어.”
“나도. 널 진짜 만나게 될 줄은 몰랐어. 오래 전에 아르바이트 삼아 택시 한다는 소식 들은 게 생각나서 혹시나 하고 홍 기사님에게 물어봤는데…. 지금까지 하리라곤.”
“그렇게 됐어.”
이철백이 자조적인 웃음을 지으며 맥주를 쭉 들이켰다. 택시를 처음 시작한 게 인간에 대한 관찰과 탐구가 목적이었지만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른 후엔 타성에 젖어 직업으로 삼고 있었으니 지금껏 택시를 하고 있는 걸 문학 때문이라고 말하긴 면구스러운 일이었다. 방선희가 다시 맥주를 채워주었다. 이철백은 오징어다리 하나를 입에 넣고는 질겅질겅 씹었다. 방선희가 맥주 한 모금 마시고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왜, 선생 하지 않고?”
방선희가 계속 아픈 손가락을 건드렸다.
“졸업 안했어.”
“왜?”
“그냥. 문학하느라고.”
문학은 이철백에게서 학교 선생만 앗아간 것이 아니라 부모와의 관계도 끊어지게 하고 사랑하는 자식까지 전처에게 빼앗기게 했다.
“남편, 뭐해?”
이철백이 화제를 돌릴 겸 방선희에게 질문을 툭 던졌다. 한 마디로 남편이 뭐하는 작자이기에 마누라 술장사 시키고 있냐는 질문에 다름 아니었다.
“죽었어.”
“아니 왜? 지병이 있었어?”
방선희가 대답 대신 맥주를 들이키더니 이철백의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이철백 역시 방선희의 시선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응시했다.
“내가 죽였어.”
이번에는 이철백이 말문을 닫았다. ‘뭐?’ 라며 짐짓 놀라 반문할 상황이었지만 그 한마디마저 나오지 않았다.
“술집 작부나 하다가 말 팔자인 줄 알았는데 남자를 알게 되었어. 처음엔 손님으로 왔었지. 귀공자 타입에 훤칠하고 매너도 좋았어. 하지만 결혼하고 나니까 사람이 변하더라. 아니 본색을 드러냈다고 할까. 다니던 직장 그만두고 빈둥거리지 뭐야. 내가 벌어온 돈 가지고 허구한 날 술이더니 딸아이를 낳고나니까 이젠 어떤 놈의 새낀지 알게 뭐냐고 두들겨 패기까지 하네. 하루가 멀다 하고 돈 달라며 때리고 애비가 누구냐며 실토하라고 때리고. 그래 내가 맞고 사는 거야 우리 애를 봐서라도 참는다지만 망할 놈이 이제 딸아이에게까지 손을 대더라고. 그 조막만한 걸 어디 때릴 데가 있다고. 이혼은 죽어도 안 된대. 하긴 나만한 물주가 어딨어. 못 죽어 산다고 어쨌든 참고 살아보려 했는데, 후우.”
방선희가 목이 타는지 글라스를 입으로 가져갔다. 이철백도 맥주 한 모금을 마시고 방선희의 입술을 응시했다.
“십년을 살았어, 청주여자교도소에서.”
“애는?”
“살아있으면 열다섯 살이니까 중학교 이학년이나 되겠네.”
“그럼 같이 살지 않아?”
“응, 그렇게 됐어. 미안.”
누구에게 미안하다는 걸까. 방선희가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집었다. 이철백이 얼른 라이터를 켜서 불을 붙여 주었다. 담배연기를 깊게 들이키는 방선희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흘러나왔다.
“내가 잡혀 들어갈 때 우리 숙이가 세 살이었어. 아마 고아원으로 보내졌나 봐.”
“네 동생들도 있잖아.”
“동생?”
“그래. 둘이나 있었지, 아마?”
“인연 끊은 지 오래됐어. 쪽팔려서 얼굴 들고 못 다니겠대. 휴, 대학까지 공부 시켰더니 나더러 구역질이 난대나 어쩐대나. 아유, 이것도 팔자지 뭐.”
“그런데 애를 보호자 동의도 없이 그렇게 마음대로 고아원에 보낼 수 있는 거냐?”
“몰라, 높으신 양반들이 그랬다는데 난들 어떡해?”
“그럼, 고아원에 가서 애를 데려왔으면 되잖아.”
“없어. 입양 보냈대. 홀트 아동복지회에 가서 알아보라는 거야.”
“어디로 입양 보냈대?”
“몰라.”
“안 알아봤어?”
“못 알아보겠더라.”
방선희가 새 담배에 다시 불을 붙였다. 이철백도 담뱃갑을 집어 담배 한 개비를 빼서 물었다. 가급적 방선희의 담배를 축내는 놈이 되고 싶지 않았지만 방선희는 자못 담배라도 태우지 않고서는 들을 수 없는 그런 종류의 이야기를 너무나 태연하게 하고 있었다.
“십년이나 못 본 애를 이제야 찾는다 해도 내가 걔한테 엄마 소리나 들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더라고. 자격지심일까, 이게?”
“보고 싶지 않냐?”
“보고 싶지. 아주 많이 보고 싶지. 미치도록 보고 싶지. 출소한 지 이년이나 되었는데도 난 술 안마시면 잠을 못 자. 잠이 안 와.”
방선희가 탁자에 엎드려 소리 죽여 흐느꼈다. 이철백이 가슴이 미어지도록 안쓰러워 방선희의 등을 토닥거려 주었다. 한참을 울고 난 방선희가 몸을 일으켜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다. 그러더니 이제 그만 가봐야겠다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 시간에 어디 가려고. 집이 어디야?”
“가게에서 자면 돼.”
“그러지 말고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라.”
이철백이 방선희의 손목을 붙잡고 만류했다. 방선희가 마지못한 듯 자리에 앉더니 다시 담배를 피워 물었다. 이철백도 함께 끽연을 즐기며 야릇한 감정에 빠져들었다. 방선희가 잠자코 피우던 담배를 끄더니 욕실에 들어갔다. 한 동안 물소리가 세차게 들리더니 화장을 지운 맨얼굴에 목욕가운을 걸쳐 입은 방선희가 욕실 문을 열고 나왔다. 이철백은 가슴이 방망이질하듯 두근거려 느닷없이 방선희를 끌어안고 키스를 시도했다. 방선희는 의외로 이철백의 키스를 거부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철백이 손으로 앞섶을 더듬어 목욕가운을 풀려고 하자 완강히 거부하는 것이었다.
“왜 그래?”
“이제 늙어서 볼품없는 걸.”
방선희가 수줍어하며 말했다.
“괜찮아.”
이철백이 방선희를 안아 침대에 눕히고 가운을 풀었다. 방선희의 말처럼 유방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그리고 아랫배엔 제왕절개 자국이 선명했다. 이철백은 방선희의 늘어진 가슴을 혀로 건드리고 아랫배 제왕절개 자국에 입을 맞춘 다음 아래로 내려갔다.
“많이 늘었네?”
방선희가 상기된 표정으로 이철백을 내려다보았다. 이철백은 오직 방선희를 기쁘게 하는 것이 지상명령인양 온몸의 신경조직과 감각기관을 총동원하여 혼신의 힘을 다했다.
박태갑 소설가greatop@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