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평가·높은 구주매출' 판박이 공모
"IPO 실패 외부서 찾는 인식 아쉬움"
"속는 사람은 없고 속이는 사람만 있다." 뻔히 다 거짓인걸 알면서도 누리꾼들이 서로 장난으로 속이려고 하는데서 비롯된 인터넷 밈(Meme)이다.
최근 몇 년 간 공모시장이 그랬다. 투자자들은 특정 종목의 공모가가 비싸단 걸 알면서도 청약에 나섰다. 거품인 걸 알지만 '따상(공모가 두 배로 시초가 형성한 뒤 상한가 도달)'에만 성공하면 그만이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IPO 대어의 공모 일정이 다가오면 '빚투(빚내서 투자)'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이 난무했다.
'속는 사람'이나 '속이는 사람'이나 웃음이 넘치던 시절은 지났다. '제로금리'가 막을 내리며 유동성 파티도 끝이 났다. 인플레이션 압력 상승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를 비롯 글로벌 중앙은행들이 긴축에 속도를 내며 유동성 회수는 가팔라지고 있다.
실제 지난달 일평균 코스피 거래대금은 10조8666억원으로 전년 동기(15조7368억원) 대비 30.9%가 줄었다. 신용거래융자 잔고도 22조2616억원 규모로 지난해 4월 말(23조3747억원)과 비교하면 1조원 이상이 빠졌다.
상황은 180도 급변했는데도 '뻥튀기 IPO'는 여전하다. 최근 SK쉴더스는 기관참여 저조로 수요예측 흥행에 실패하며 IPO를 철회했다. 기관들 상당수가 희망 공모가 범위 아래로 가격을 부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보다 앞서 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 1월 수요예측 결과 경쟁률 100대 1을 기록하며 공모시장에서 발을 뺐다.
높은 구주매출로 투심이 쏠리지도 않는데 공모가마저 높게 잡은 영향이다. IPO 당시 SK쉴더스와 현대엔지니어링 구주매출 비중은 각각 47%와 75%나 됐다. 당연히 시장에서는 "경영진이 눈치도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예비 상장사들은 이들을 반면교사(反面敎師) 삼아야 하지만 어쩐 일인지 '후배' 대어들도 똑같은 전철을 밟고 있다. 논란 발생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 것과 자신들은 여타 기업들과 다르다는 인식 역시 판박이다.
이재환 원스토어 대표이사는 최근 IPO 기자간담회에서 "같은 계열사(SK쉴더스)가 상장을 철회한 점은 안타깝지만, 원스토어는 전혀 다른 업이기도 하고 앞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훨씬 크다"고 말했다.
투자자도 그렇게 생각할지는 의문이다. 원스토어는 지난해 58억원의 투자손실을 낸 적자기업이지만 공모가 산정 비교그룹으로 알파벳, 애플, 카카오 등을 올렸다. 회사는 적정성 논란에 텐센트, 네이버, 카카오, 넥슨 등으로 비교그룹을 바꿨지만 공모가 밴드는 되레 높아졌다. 구주매출 비중도 29%나 된다.
하반기 IPO를 검토중인 LG CNS와 11번가도 공모시장을 오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양사가 각각 7조원과 5조원의 기업가치를 원하는 것으로 알려져 벌써부터 '고평가 논란'에 불씨를 지피고 있기 때문이다.
상식 밖 IPO가 이어지자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대주주 배불리는 공모주를 누가 사겠냐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IB업계 관계자들도 공모주가 IPO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구주매출 비중을 큰 폭으로 줄이거나 공모가를 낮출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시장은 변하고 있다. IPO에 나서는 경영진은 모기업 종목토론방 여론이라도 살펴 더 이상 속아줄 투자자가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