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업 사장 자리 놓고 청와대-인수위 泥田鬪狗 꼴불견
한국해양대학교는 우리나라 해양 관련 산업의 역사와 함께 해온 학교다. 모태인 진해고등해원양성소(1919년 설립)부터 계산하면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해양에 특화된 학교인지라 전공 분야가 다양하지 않음에도 불구, 현재 학년 당 재적생은 2000명이 넘는다. 매년 그 정도 숫자가 이 학교를 나와 해운과 조선 등 관련 업종에 종사한다. 서울 상위권 대학에 갈 실력을 지닌 우수 인재들이 가계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해양대를 선택하는 사례도 많았다.
오랜 기간 한국 해운‧조선업계의 중요한 인재 풀 역할을 해온 학교인 만큼 해양대 출신들이 업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도 자연스런 일이다.
그런데 최근 해양대 출신 인사 한 명이 사장 직함을 달았다가 구설수에 올랐다. 박두선 대우조선해양 대표이사 얘기다.
‘정권 막판 알박기 인사’. 박 사장에게 달린 꼬리표다. 이 사안을 놓고 청와대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여당과 야당이 공방을 벌이는 통에 박 사장은 취임식도 제대로 못 하고 대표이사 직을 수행하고 있다.
물론 알박기 인사가 사실이라면 심각한 일이다. 민간 기업의 수장 자리를, 국책은행이 대주주라는 이유만으로 정권에서 누군가에게 선물할 특혜로 활용한다는 건 비난 받아 마땅한 적폐다.
하지만 ‘알박기 인사의 근거’로 제시한 것이라고는 오직 대통령의 동생과 대학 동창이라는 사실 뿐이다. 동생의 동창이건, 사돈의 팔촌이건, 그 정도 거리의 인맥은 평범한 소시민이라도 전국에 수만 명은 될 것이다.
심지어 그 대학이라는 곳이 조선업계에 수많은 인재를 공급해 온 해양대다. 대우조선 뿐 아니라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등 모든 조선업체에 해양대 출신 임직원들이 수두룩하다.
뒷배경 없이는 사장 자리는 꿈도 못 꿀 엉뚱한 인물이라면 모를까, 박 사장은 대표이사 선임 이전 단 두 명이었던 부사장 중 한명이었고, 그 중에서도 선박 건조 과정을 총괄하는 조선소장이었다. 1986년 대우조선해양에 입사해 무려 36년간 한 직장에서만 일한 ‘성골 중의 성골’이다. 차기 사장 자리 대기표 1번을 들고 있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 문제가 이슈화되니 오히려 차기 정권에서 대우조선해양 사장 자리를 ‘전리품’으로 생각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일각에서 ‘박 사장이 대우조선해양에서 오랫동안 근무했으니 부실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지적까지 나오니 더 그렇다. 그럼 대우조선해양과 무관한 인물을 낙하산으로 내려 보내야 한단 얘긴가.
그룹총수체제가 아닌 기업들이 정치권의 외풍에 시달린 일은 비일비재했다. 과거 포스코와 KT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회장이 임기와 무관하게 교체되는 흑역사를 겪었고, 고(故)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은 정치적 사안에 휘말려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했다. 보수건 진보건 정권만 잡으면 적폐청산을 외치는 시대에 더 이상 그런 적폐는 없어야 한다.
대우조선해양은 정부 기관이나 공기업이 아니다. 정권에서 낙점한 이가 아닌, 경영정상화를 앞당길 수 있는 인물이 이끌어야 한다. 현 정부와 차기 정부 인수위가 어떤 사안을 놓고 진흙탕 개싸움(泥田鬪狗)을 벌이건 민간 기업은 영향을 받지 말아야 한다. 대우조선해양 사장 자리는 개밥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