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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집념과 뚝심…검찰총장 사퇴 1년 만에 청와대 입성


입력 2022.03.10 05:27 수정 2022.03.10 05:29        이슬기 기자 (seulkee@dailian.co.kr)

술·사람 좋아해 사법고시 9수

늦게 시작했으나 검사로서 승승장구

박근혜 정부서 좌천·文 정부선 징계

권력 견제에 '공정과 상식' 아이콘으로 급부상

국민의힘 윤석열 당선인이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행사에서 당원이 건넨 꽃다발을 받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인생은 '집념'과 '뚝심'으로 요약된다. 사법고시 '9수' 만에 합격한 뒤 '검사' 외길을 걸으며 강골 검사로 국민들에게 각인됐다. 박근혜 정부에서 좌천, 문재인 정부에서는 징계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으며 '공정과 상식'의 아이콘이 된 그는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윤 당선인은 지난 1960년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와 최정자 전 이화여대 교수 사이에서 태어났다. 대광초, 중랑중, 충암고를 졸업해 1979년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다.


그가 대학시절인 1980년 5월, 신군부 세력의 군사 반란을 주제로 진행한 모의 재판에서 전두환 당시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윤 당선인은 사법시험에 도전해 9수 만에 합격했다. 연거푸 낙방하면서도 술과 사람을 좋아해 자기 사람은 확실히 챙긴 일화도 유명하다. 그는 사법고시 2차를 앞두고 친구의 함을 지기도 하고, 일찍 결혼한 친구의 아이를 대신 돌봐주기도 한 에피소드를 공개하기도 했다.


대학생 시절 윤석열 국민의힘 20대 대선 후보 ⓒ국민의힘

동료들보다 다소 시작이 늦었지만, 그는 특수 검사로 승승장구했다. 대검찰청 중수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등 요직을 거치며 수사 능력을 인정받았다. 2003년 불법 대선 자금 수사, 2006년 현대자동차 비자금 수사 등 굵직한 정·관계 비리 수사들을 맡아 처리했다.


그러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3년,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 특별수사팀장으로 적극적인 수사를 펼치다 고난을 맞았다. 조영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에 대한 '항명 논란'을 일으키면서, 2014년 1월, 대구 고등검찰청으로 좌천됐다. 당시 국감에서 "수사 과정에 외압이 심하다"고 폭로한 그는 이 과정에서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두고두고 회자되는 명언을 남겼다.


그가 전면에 다시 등장한 것은 2017년 이른바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이 발생하면서다. 박영수 특별검사가 윤 후보에게 수사팀장을 맡겼고, 삼성 수사 등을 이끌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구속시켰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그는 첫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전격 발탁됐다. '적폐 수사'를 진두지휘하며 중앙지검장에서 검찰총장으로 파격 승진하며 검사로서 정점을 찍었다.


그러나 조국 전 법무부장관에 대한 각종 의혹을 수사하면서 문재인 대통령과 마찰을 빚기 시작했다. 윤 당선인은 추미애 당시 법무부장관과 조국 전 장관 수사를 두고 갈등을 빚었고, 수사에 대한 뜻을 굽히지 않으면서 '공정과 정의'의 상징과 같은 인물이 됐다.


'민주당이 때릴수록 큰다'는 평가를 받은 윤 당선인은 권력의 강력한 견제를 받으며 정치인으로 급성장했다. 정치인으로서 윤 당선인이 승부수를 띄운 것은 지난해 3월 10일 대선을 1년 앞두고 검찰총장직에서 사퇴하면서다.


'반(反)문'의 대표성을 가진 윤 당선인은 검찰총장직 사퇴 약 3개월 만인 지난해 6월 정치 참여 선언을 한 뒤, 지난해 7월 30일 국민의힘에 전격 입당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해 11월 5일 오후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제2차 전당대회에서 대선 후보에 최종 선출된 후 당 지도부, 경선주자들과 함께 인사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윤 당선인은 '정치초보'라는 우려를 받았으나, 터줏대감인 홍준표 의원과 유승민 전 의원, 원희룡 전 제주지사 등과 벌인 당내 경선에서 입당 3개월 만에 당당하게 최종 후보로 선출됐다.


윤 후보는 보수당 최초의 30대 당대표인 이준석 대표와 위기 시 당을 이끌었던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함께 선거를 시작했으나, 당내 갈등이 계속되자 선거대책위원회를 해체한다는 결단을 내리고 선거운동을 본궤도에 올렸다.


'국민이 키운 윤석열, 내일을 바꾸는 대통령'이라는 슬로건으로 선거운동을 펼친 윤 후보는 선거운동 기간 대부분 '박빙 우세'의 위치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치열하게 겨뤘다. 대선을 6일 앞두고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극적 단일화를 이뤄냈다.

이슬기 기자 (seulke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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