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법원 판결서 FI측 모두 무죄
검찰 항소로 공방 장기화할 듯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과 재무적투자자(FI) 사이의 풋옵션 분쟁이 빠르게 매듭지어지지 못하고 장기화할 것으로 보인다. 회사의 지분 가치 산정을 둘러싼 위법 여부를 가리는 첫 재판에서 법원이 FI 측의 손을 들어 주면서다.
이를 두고 항소가 이어지면서 법정 공방이 길어질 가능성이 커진 가운데 교보생명의 지배구조와 기업공개(IPO)를 둘러싼 불확실성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1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양철한)는 공인회계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안진회계법인 관계자 3명과 교보생명의 FI인 어피너티컨소시엄 임직원 2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안진회계법인이 가능한 범위에서 다양한 가치평가 접근법을 적용한 것으로 보이고, 어피너티컨소시엄에 유리한 방법만 사용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신 회장과 FI 간 갈등의 시작은 1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 회장은 2012년 대우인터내셔널이 보유했던 교보생명 지분을 매입한 어피너티컨소시엄과 풋옵션 권리가 포함된 주주 간 계약을 체결했다. 2015년 9월 말까지 기업공개(IPO)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 주당 24만5000원에 인수한 교보생명 주식을 신 회장에게 되팔 수 있다는 조건이었다.
그런데 교보생명은 약속한 시점까지 IPO에 나서지 못했고, 어피너티컨소시엄은 끝내 2018년 10월 풋옵션을 행사했다. 이 때 어피너티컨소시엄 측의 풋옵션 가격 평가기관으로 안진회계법인의 회계사들이 참여했다.
문제는 안진회계법인 측이 교보생명 주식의 1주당 가치를 40만9000원으로 평가하면서 불거졌다. 교보생명과 신 회장은 어피너티컨소시엄이 회계법인을 앞세워 과도한 풋옵션을 챙기려 한다며 반발해 왔다.
법원의 첫 판결이 나오긴 했지만 교보생명의 풋옵션 행사를 둘러싼 대립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어피너티컨소시엄과 안진회계법인 관련자들의 유죄를 확신하고 기소를 진행한 만큼, 항소에 나설 공산이 크다는 평이다.
아울러 교보생명도 앞서 검찰이 피고인들에 대해 징역 1년에서 1년6개월과 추징금을 구형했던 점을 고려할 때 이번 판결은 매우 안타깝다며, 검찰 측이 항소해 항소심에서 적절한 판단이 도출되기를 기대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번 판결로 지배구조 불안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봤던 교보생명의 기대감은 물거품이 됐다. FI가 원하는 가격대로 풋옵션 지분을 사들이면 2조원에 달하는 자금이 필요한데, 신 회장이 이를 소화하기 위해서는 본인이 가진 교보생명 지분을 정리하는 방법 외에 뾰족한 수가 없다. 신 회장과 어피너티컨소시엄 사이의 대립이 교보생명 지배구조를 흔드는 이슈였던 이유다.
교보생명이 추진 중인 주식시장 상장도 제동이 불가피해 졌다. 한국거래소는 지난해 말 교보생명이 청구한 IPO 예비심사에 대해 연기 결정을 내린 상태다. 주주의 경영권 분쟁 또는 중요한 소송 분쟁이 있는 경우 그 내용이 IPO 이후 경영 안정성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에서다.
다만, 교보생명은 증시 상장을 예정대로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이번 판결과는 무관하게기업공개를 성공적으로 완수해 새 국제회계기준과 신지급여력제도에 선제적으로 대비하는 한편, 장기적으로 금융지주사로의 전환을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