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최대 36개 라이시미터 운용
물・비료 이용효율 증대
빅데이터 활용한 가뭄 예측까지
#. 농사직설은 조선 세종 때 문신인 정초, 변효문 등이 편찬한 농서다. 1429년에 관찬으로 간행해 이듬해 각 도 감사와 주, 부, 군, 현 및 경중 2품 이상에서 나눠줬다. ‘新농사직썰’은 현대판 농업기법인 ‘디지털 농업’을 기반으로 한 데일리안 연중 기획이다. 새로운 농업기법을 쉽게 소개하는 코너다. 디지털 시스템과 함께 발전하는 농업의 생생한 현장을 독자들에게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편집자 주>
일반인에게 라이시미터는 다소 생소한 용어다. 농업용어사전에 등재된 라이시미터는 ‘증발산량이나 물수지 등을 정밀하게 측정하기 위한 금속 또는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토양조’라는 의미다. 또 다른 이름으로 ‘증발산량계’라고도 불린다.
우리나라는 지난 2014년 논・밭토양 각각 3종 18개 등 모두 36개 라이시미터를 보유하고 있다. 이는 아시아 최대 규모다. 이 대형화분에는 무게측정기, 토양수분센서 등 센서류와 토양용액채취기, 지하수위 조절장치 등이 갖춰져 있다.
2015~2018년에는 중만생종벼와 콩 등을 연구했으며, 2019년부터 현재는 조생종 벼와 고추 등의 생육환경을 토양별로 관찰・연구 중이다.
허승오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토양비료과 농업연구관은 “라이시미터는 농진청이 수원에서 전주로 이전할 때 같이 설치됐다.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연구를 수행하기 시작했다”며 “라이시미터는 토양 내 물질이동을 측정하기 위해 시설 내에 논・밭 환경을 현장과 비슷하게 재현한 장치”라고 설명했다.
◆디지털 시대, 최적의 시스템을 만나다
라이시미터를 ‘대형화분’으로 비유하는 것은 시스템 자체가 마치 화분과 같은 형태이기 때문이다. 깊이 1.5m 대형 콘크리트 안에는 약 3t 토양이 가득 담겨 있다. 대형 콘크리트 구조물은 흡사 대형화분을 연상케 한다.
허 연구관은 “라이시미터는 대형화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큰 통 안에 약 3t의 토양이 가득 차 있다”며 “단순하게 삽으로 토양을 채운 것이 아니라 토양구조를 파괴하지 않고 자연상태 그대로의 토양을 떠와서 이 공간에 설치했다”고 소개했다.
이 시스템이 처음 도입된 2014년 당시만 해도 디지털농업은 걸음마 단계였다. 이 시기에 도입된 라이시미터는 아직 데이터에 익숙하지 않은 농가 입장에서 그 기능을 두고 물음표를 던지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디지털농업이 정착된 현재에는 라이시미터의 존재감에 이견을 보이는 농가를 찾기 힘들다. 그만큼 라이시미터는 디지털 농업에서 최적의 시스템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이 거대한 대형화분은 상당히 정밀하다. 바닥은 완전 수평을 이뤄야한다. 3t의 토양을 담은 거대 콘크리트 답지 않게 정밀하다. 라이시미터 한 대당 센서 6종 543개, 장치 9종 612개가 쉴새 없이 측정을 하고 있다. 마치 거대한 데이터 베이스를 옮겨 온 듯한 인상이다.
라이시미터는 도입단계부터 디지털농업의 초석을 다지는데 큰 역할을 했다. 우선 토성을 고려한 벼·밭작물 생육단계별 물 필요량 산정에 들어갔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농업 물관리 대책을 수립했다. 영농에서는 물사용 기술서를 보급했고 이는 물절약과 노동력 절감으로 이어졌다.
작물별 토양내 양분이동 평가를 통한 양분수지 산정 역시 라이시미터만의 고유 영역이다. 농가에서는 양분 이용효율 산정으로 적정 비료사용량 설정이 수월해지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토양유효수분 기반 전국 밭가뭄 현황 및 예측 정보는 라이시미터 도입 전과 후 성과가 확연하다. 현재 4~10월 연간 30회 167개 시・군 밭가뭄 정보를 농업현장에 제공한다.
이밖에 물부족 대응 농업용수 및 가뭄 분야 기관간 업무 협력로 속도를 내고 있다. 농식품부와 환경부는 농업용수 관리체계 개편, 통합물관리 등 정책 추진 지원에 라이시미터 데이터를 활용 중이다. 통합물관리지원단은 밭가뭄 정보 고도화 및 밭작물 물관리 연구 협력이 한창이다.
◆물・양분 등 기초평가 팔방미인 ‘라이시미터’
농진청은 라이시미터를 도입한 다음해인 2015년부터 논에서는 중만생종과 조생종 벼를, 밭에서는 콩, 옥수수, 고추 등을 재배하면서 작물이 필요로 하는 물과 양분이 어떻게 이동하고 얼마나 필요한지를 연구하고 있다.
허 연구관은 “이양시기, 관개방법, 토양특성 등 여러가지 조건을 다르게 해 서로 비교하며 작물별로 어떻게 관리하는게 물과 양분측면에서 가장 효율적인지 분석하고 있다”며 “잔디와 아무것도 재배하지 않는 나지도 있는데, 잔디는 물량 산정에 기준이 되는 기준작물이다. 나지는 토양에서 증발하는 수분의 양이 얼마인지 측정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라이시미터의 모든 센서와 장치는 지하에 있다. 지하부에 설치된 센서와 장비들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무게 변화를 측정하는 중량센서다. 관수나 비가 오면 무게가 증가하고 작물이 물을 사용하면 무게가 감소하게 되는데 이러한 무게변화를 가지고 작물이 물을 얼마나 사용하는지 분석이 가능하다.
또 층위별로 온도, 토양수분센서, 장력센서, 토양용액채취기를 설치해 지표면에서부터 지하까지 물과 양분이 얼마나 이동한지도 확인할 수 있다. 양분은 채취한 토양용액을 실험실에서 직접 분석해 확인한다.
이외에도 지하로 빠져나온 물량을 측정하는 티핑카운터, 물이 지표에서 넘쳐서 흘러나온 물량도 직접 측정해 물과 양분이 들어오고 나간 모든 것을 측정하고 있다.
허 연구관은 “측정된 모든 데이터는 실시간으로 자동 저장돼 분석할 수 있게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며 “건강검진할 때 내시경이나 초음파 등을 사용해 검사하듯이 토양내 물과 양분의 이동을 여러 센서들을 활용해 다양한 방법으로 관측・분석하고 있다. 농업관련 연구도 갈수록 첨단화 돼 가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라이시미터 토양채취와 설지 과정을 보면 특수장비로 토양외곽으로 잘라내고 1.5m 밑에 부분을 잘라서 비교란 토양을 채취한다. 그리고 바닥부분에 여과층을 만들고 무진동 차량과 대형 크레인을 이용해 토양수분이동실험동에 설치한다.
라이시미터에서 연구하는 토양은 점토 함량이 많은 식양토, 모래 함량이 많은 사양토, 그리고 이 두 토양의 중간에 있는 양토로 구성된다. 점토와 모래 함량에 따라 물과 양분의 이동 특성이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토양특성은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토양환경정보 시스템 ‘흙토람’과 찰떡궁합
라이시미터에서 연구한 데이터는 농업현장에서 활용이 가능해야 가치가 높다. 그 가치를 극대화해주는 시스템이 바로 농진청 토양환경정보 ‘흙토람’이다. 라이시미터와 흙토람은 찰떡궁합이다. 흙토람은 토양특성과 작물별 비료추천량 정보를 제공하는 웹시스템이다. 농진청이 2008년부터 운영하는 방대한 토양 데이터베이스다.
세계 최고 초정밀 토양전자지도(1:5000) 구축과 405개 토양통 분류가 흙토람에 모두 담겨 있다. 대표적인 서비스로는 전국 세부정밀토양도 1만8502도엽 열람이다. 토양도는 2019년 16만3000도엽에서 지난해 27만4000도엽으로 확대됐다. 농어촌공사 농지은행과 정보연계로 농지매입, 작물선택 등에 활용되고 있다.
토양검정 기반 비료사용처방 서비스(226작물)의 경우 토양검정(60만건/년), 공익직불제 화학비료 사용기준으로 사용된다. 비료사용기준 설정 작물 확대(누적)는 올해 12월 227작물에서 2025년 246작물로 확대할 방침이다.
또 시설 토경작물 관비(물·NPK) 공급량 처방 서비스가 제공되는 13작물은 관비처방 기준 국내 전체 관비재배 면적의 76.7% 해당한다. 이밖에 밭작물 생육단계별 물사용 처방 서비스 10작물은 지역별 기준증발산량 반영한 생육단계・관수방법・관수면적별 물 필요량 등의 데이터가 제공된다.
허 연구관은 “흙토람은 최적 토양관리를 통한 안정적인 생산기반 조성에 기여하고 있다”며 “공익직불제 등 농업환경 보전 정책지원 통합관리시스템으로 서비스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2월 17일 [新농사직썰㉕]이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