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세력, 4代 좌파정권 이재명 승리에 올인
당대표 이준석 사퇴 여론 들끓는 이유 있다
이재명 변신술 - 문재인 분열 미끼 경계해야
딱하지만 이재명을 향한 송영길의 살신성인은 눈물겹다. 음주운전, 검사 사칭 등 이재명의 전과는 공익활동을 하다 생겼다고 말했다. “준비되지 않은 윤석열 지지율이 이재명보다 높은 것을 우리가 반성해야 한다”라고도 했다. 김건희를 겨냥해서는 “남편한테 반말한다더라”라고 (세상에) 일러 바쳤다. 그래서 윤석열이 대통령 되면 실세 김건희가 대통령을 흔들어 댈 것이라고 우겼다. “전과4범이 형수 욕하는 이재명은 어떡할 거냐”는 물음은 못들은 척했다.
‘문재인 보유국’ 연원(淵源)은 이렇다. 1997년 김대중(DJ) 김종필(JP)은 의원내각제 개헌을 앞세워 대선 후보 단일화에 야합(野合)했다. 대통령으로, 국무총리로 3년 동거 후 DJP연합은 뻔 한 시나리오대로 깨졌다. 치적은 ‘보수 아이콘’ 김종필이 대통령 김대중을 만든 것이다. 그해 김대중은 이회창에게 불과 39만표 많은 1032만표로 당선됐다. 이회창과 반목하고 김종필과 멀어진 김영삼계 이인제는 492만표를 얻었다. 좌파시대는 그렇게 개막했다.
이회창은 노무현에게도 졌다. 병풍(兵風) 사기꾼 김대업이 노무현 승리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민주당은 김대업의 이회창 아들 병역면제 가짜제보에 올라 타 이회창을 흔들었다. 행정수도 공약으로도 큰 재미를 봤다. ‘김건희’ ‘고발사주’ 공작으로 김대업은 환생했다. 안민석(최서원(순실) 재산 300조원 가짜뉴스), 박영선(생태탕), 손혜원(목포 적산 부동산)도 가세했다.
촛불세력, 4代 좌파정권 이재명 승리에 올인
2012년 정권을 탈환한 박근혜는 탄핵 당했다. 집권 새누리당 의원 128명 중 최소 62명이 가담했다. 촛불광란은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민주당 문재인 41.1%, 자유한국당 홍준표 24.0%, 국민의당 안철수 21.4%, 바른정당 유승민 6.8% 득표였다. 사실상 셋이 합심해 정권을 갖다 바쳤다. 가짜보수를 횃불로 태워버리겠다(문재인), 보수를 궤멸시키겠다(이해찬)던 외침은 현실이 됐다. 촛불들은 4대(代) 이재명 좌파정권을 만들려 총공격에 나섰다.
이준석은 2011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26세의 ‘박근혜 키즈’는 박근혜 탄핵과 구속 뒤 유승민 김무성 등과 함께 탈당해 바른정당을 만들었다. ‘개혁 보수’를 기치로 모당(母黨)을 고사 시키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배신자 낙인이 찍힌 그들은 빈사 상태에서 4.15 총선 전 슬그머니 복당했다. 홍준표는 박근혜를 쫓아내고 그들을 맞아 들였다. “춘향인 줄 알고 뽑았더니 향단이더라” “탄핵 당해도 싸다”는 말이 그때 나왔다.
후보 경선 이후 이름 없이 시작된 윤석열-이준석-홍준표 3파전은 더없이 치열하다. 홍준표는 역선택 향수(鄕愁)의 그분이다. 경선패배 분노를 ‘청년플랫폼’으로 삭이며 존재감을 과시한다. 그의 훈수는 대부분 윤석열 훈계다. 예컨대 윤석열의 ‘극빈층 자유’를 후벼 파고는 “나도 이제 모르겠다”고 했다. 애정 어린 충고에 심술이 덕지덕지 보일 리는 없다.
지난 6월 이준석은 일약 국민의힘 당대표가 됐다. 꽤 이견은 있으나 대체로 정권교체를 염원하는 민심이 반영된 결과로 받아들여졌다. 총선 3패, 0선(選)의 사상 첫 30대 제1야당 대표는 역대급 각광을 받았다. 불행히도 유통기간은 짧았다. 빽팩 매고 따릉이 몰며 출근한 선도(鮮度)는 1주일로 끝났다. 구악정치에 물든 애어른으로 그는 다가왔다.
당대표 이준석 사퇴 여론 들끓는 이유 있다
일찍이 그는 “윤석열이 대선 후보 되면 지구를 떠나겠다”고 했다. 자신이 도울 사람은 유승민이며 그래서 당권을 잡을 거라고 공언했다. 당대표가 되고는 윤석열을 ‘정치적 미숙아’로 평론했다. 그는 아버지 친구 유승민 의원실에서 인턴을 했다. 유승민은 새누리당 박근혜 대표 비서실장, 집권당 원내대표로 승승장구하다 ‘박근혜 배신자’로 칼 같이 갈라섰다.
엄혹한 시기에 이준석의 ‘대선 인질극’이 벌어졌다. 홀연히 당무를 거부하고 부산 여수 제주로 공개 잠적했다. “당대표는 후보의 부하가 아니다”며 빈정댔고, “실패한 대통령을 만드는 데 일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자해공갈 버금가는 맞장 뜨기였다. 극적인 울산회동 이튿날 부산 중심가에서 윤석열 이준석이 펼친 ‘빨간 목도리’ 유세는 인파로 넘쳤다.
기껏 보름 남짓 뒤 이준석은 (그의 표현을 빌리면) ‘깔끔하게’ 상임공동선대위원장과 미디어홍보본부장을 내팽개쳤다. 동시에 윤석열과 중앙선대위 공격을 재개했다. 잘 해봐, 왜 내 말을 거역 하냐는 추궁이었다. 그러면서 “성공한 대통령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윤석열이 “이제 누구도 평론가여서는 안 된다”고 하자 “당대표의 제언이 평론이냐”며 대들었다. 이준석에게 ‘내 탓’은 절대 없다.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이재명 변신술 - 문재인 분열 미끼 경계해야
숫제 “대선에서 패하면(가증스런 가정이다) 후보 책임”이라고도 했다. “나는 후보한테 알랑거리지 않는다” “후보 측이 선대위 복귀를 요청하면 생각해 보겠다” “선대위로 돌아가는 일은 없다”는 말이 뒤죽박죽 이어졌다. 이어 “(노무현에게 패한) 2002년 이회창 대선 때와 비슷하게 될까 걱정”이라는 데까지 나갔다. ‘범죄자와 토론할 수 있느냐’는 윤석열 말은 ‘이재명 지지자들을 무시하는 것’으로 깔아뭉개졌다. 선거방해, 낙선운동이나 다름없다.
박근혜는 4.15 총선 직전 옥중편지에서 “태극기를 들었던 모두가 거대 야당 중심으로 힘을 합쳐야 한다”고 말했다. 머잖아 있을 그의 대국민 인사에도 ‘미워도 다시 한 번’ 메시지가 이심전심 담길 것이다. 박근혜 사면 배경은 이석기 형집행 정지와 한명숙 복권 물타기, 야당 분열 기대 정도로 압축된다. 이준석은 “박근혜의 첫 메시지가 무엇이냐에 따라 여론이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남 얘기하듯 이준석이 쉼 없이 쏟아내는 말은 거의 이런 식이다.
윤석열은 “99개가 달라도 정권교체 1개만 같으면 합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명의 현란한 몸짓에 미혹 당하거나 문재인의 분열 미끼를 덥석 물 여유가 더는 없다. ‘이재명 우세’ 여론조사가 스멀스멀 시작된 것에서도 눈을 떼면 안 된다. 이준석 사퇴 여론이 들끓는 것에는이유가 있다. 이준석 홍준표 여럿보다 강용석 전광훈 같은 전사(戰士) 1명이 그리운 때다.
글/한석동 전 국민일보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