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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일자리④] “활기찬 노후 말고 우리 일자리가 뭐가 있죠?”


입력 2021.09.10 07:02 수정 2021.09.09 15:44        장정욱 기자 (cju@dailian.co.kr)

만 65세 이상 인구 43.8%가 ‘빈곤’

일하는 노인 73% “생계 유지 목적”

공공 일자리만으로 노후보장 못 해

기술·경험 활용 민간일자리 늘려야

노인 일자리 문제가 심각한 가운데 한 노인이 지난해 일자리 박람회를 찾아 상담하고 있다. ⓒ뉴시스

노인복지법 등에 근거한 우리나라 노인 연령 기준은 만 65세다. 지난해 전체 인구의 15.7%가 노인으로 우리나라는 이미 고령화 사회에 속해 있다. 노인 인구 비율이 매년 확대되고 특히 가난한 노인이 늘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1위다. 노인 셋 중 한 사람은 생계를 위해 일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지난해 빈곤율은 43.8%에 이른다. OECD 평균인 13.5%의 세 배가 넘는다.


지난해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노인 고용률은 32.9%다. 2019년 대비 1.6%p 올랐다. 반면 현재 삶에 만족하는 고령자는 25%로 전년 대비 2.9%p 떨어졌다. 노인 4명 가운데 3명은 현재 삶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의미다. 모든 연령대 평균(39.1%)과 비교해도 14%p 이상 낮은 수치다. 고령자 가운데 사회·경제적 성취에 만족하는 사람 비중도 21.8%로 전년보다 3.5%p 감소했다. 전 연령대와 비교하면 6.5%p 낮다.


고용률에서 알 수 있듯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일자리 지표는 일부 개선된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 들어 공공일자리를 해마다 늘려온 영향이 크다. 내년에도 취약계층 공공일자리 105만 개를 늘리는 데 이 가운데 노인 일자리가 84만5000개를 차지해 80%가 넘는다.


일자리 숫자 늘어도 불행한 노인은 여전

일자리 수가 늘어난 것과 달리 일자리 질은 여전히 열악하다. 노인 하루 평균 노동 시간은 1시간 28분이다. 여기엔 구직 활동 시간까지 포함됐다. 5년 전보다 2분 늘어나는 데 그쳤다. 65~69세 근로시간은 일평균 2시간 17분으로 5년 전보다 14분 늘었다. 70~74세는 1시간 25분으로 12분 줄었다.


지난해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일하는 노인의 73.9%가 생계비 마련을 위해 일한다. 하루 2~3시간 초단기 일자리로는 생계비를 넘어 안정적 소득 창출이 어렵다. 이른바 ‘용돈벌이’ 수준일 뿐이다.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저축 등은 기대하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현재 노인 일자리는 안정적인 노후를 담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유럽 국가처럼 일자리를 대체할 사회보장 체계가 잘 갖춰진 것도 아니다. 기초노령연금과 국민연금이 있어도 소득을 대체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기초노령연금은 최대 30만원에 그친다. 노인들의 약 35%가량이 받는 국민연금 또한 평균 35만원 남짓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기준 노인 월평균 가구소비지출액은 162만2000원에 달한다. 65만원 정도 공공연금만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다.


일자리 안전사고도 늘어나는 추세다. 2019년 노인 일자리 사업 내 안전사고는 1453건으로 2016년 373건 대비 1080건(74.3%) 늘었다. 이 가운데 산업재해보험 적용을 인정받은 사례는 전체 대비 10% 수준에 그친다.


이호선 한국노인상담센터장은 “노인 고용 지표가 좋아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임계장(임시 계약직 노인장)’으로 불리는 일자리가 많아 안정성이 매우 떨어진다”며 “노인들의 수명은 늘어나는데 일자리 불안감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삶의 변화를 가져올 만한 노인 복지도 부족하니 만족도는 계속 떨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경하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연구조사센터장은 “여전히 노인 일자리는 가난한 노인들의 빈곤문제에 관여하며 사회보장제도의 보충적 역할을 하고 있다”며 “(현재의 일자리 정책은) 새로운 제도적 경로로 진화하지 못하고 기존의 경로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인천시 부평구 노인인력개발센터에서 열린 노인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사업에 일자리를 구하는 많은 노인들이 몰려 신청을 하고 있다. ⓒ뉴시스
베이비부머 숙련된 기술·경험 민간에서 활용해야

정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베이비부머 세대 은퇴가 본격 시작됐다. 정부는 이들이 숙련된 기술과 풍부한 근로 경험을 가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은퇴 후 사회참여 욕구도 큰 것으로 조사됐다. 새로운 노인 세대 등장에 맞춰 새로운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란 의미다.


정부는 이들에 대한 일자리 정책으로 공공근로를 중심으로 한 직접 일자리를 계속 늘리고 있다. 올해만 해도 84만5000개의 노인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양성일 보건복지부 1차관은 “일자리 혜택이 더 많은 노인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참여 기준을 완화해 의료와 교육, 주거급여 수급자도 올해부터 참여할 수 있다”며 “특히 청년과 함께하는 세대 통합형 일자리, 노인 세대에 적합한 일자리 발굴 등의 노력도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정부 정책에 전문가들은 민간 부문 비중을 늘려야 한다고 조언한다. 공공부문만으로는 일자리 질을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김호일 대한노인회장은 “공무원·대기업 퇴직자 등 안정적인 연금을 받는 노인의 비율은 15% 안팎이고 나머지는 정기적인 소득 확보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일자리 확대와 기초연금액 인상 같은 방안도 중요하지만 노인이 지속해서 일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 공급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박경하 센터장은 “민간형 노인 일자리가 공공형 일자리의 대안으로 자리매김하려면 안정적인 소득보장과 일자리의 지속성을 동시에 충족하는 일자리의 근로조건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며 “공공형 일자리보다 근로시간, 급여 수준, 근속기간 등 조건이 개선된 다양한 취업형, 창업형 일자리 모델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센터장은 “노인의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훈련과 일자리 수행기관의 경쟁력 제고, 담당 인력의 전문성 강화를 위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인구절벽·고령화 해결 위한 노인 경제 가치 중요

노인 일자리는 인구감소 문제와도 직결한다. 행정안전부 ‘2020년 주민등록 인구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지난해 처음으로 출생자가 사망자 수를 밑돌아 인구가 자연 감소했다.


저출산 고령화의 심화로 40년 후인 오는 2060년엔 국내 인구가 절반 이후가 줄어들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60년 인구는 현재의 절반 수준인 2500만 명으로 줄고 그 가운데 생산가능인구는 48.1%에 그칠 것으로 예상됐다.


인구절벽 속도가 빨라지면서 전문가들은 최대한 빨리 고령사회에도 지속 가능한 국가 시스템으로 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베이비부머가 은퇴한 후에는 체질을 개선하고 싶어도 사회적 여건이 뒷받침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은 양질의 노인 일자리 확보다. 노인인력 활용은 중소기업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게 전문가 의견이다. 중소기업일수록 고령화 사회 충격이 더 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통계에 따르면 중소기업 임직원 가운데 50대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은 42.2%에 달한다. 특히 조선과 철강·자동차 등 핵심 제조업에 부품을 공급하는 금형, 용접 등의 뿌리산업의 고령화가 심각하다. 숙련공 대다수가 50~60대인 상황 속에서 이들이 은퇴하면 기술 전수의 맥이 끊길 위기다.


이삼식 한양대 고령사회연구원장은 “인력난에 허덕이는 중소기업도 부담 없이 은퇴한 노년층을 고용하고 노인 역시 가볍게 생산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며 “노인을 위한 파트타임 일자리를 마련하는 등 다양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용주 한국노인인력개발원장은 “민간 기업도 고령 노동력 활용에 눈을 돌려야 한다”며 “ 특히 베이비붐 세대는 교육 수준이 높고 전문성도 뛰어나다. 기업이 이들을 고용해 생산인구 감소로 인한 노동력 부족을 해결하고 베이비부머들은 다시 사회활동을 할 수 있는 상생구조가 시급히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라진 일자리⑤] ‘쉽고 빠른’ 공공일자리만 매달리는 정부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장정욱 기자 (cju@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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