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개설 1년여 만에 28만 구독자 보유
"시골살이, 장난치는 것처럼 접근하지 않으려 노력"
"부지런함이 건강한 삶의 습관 만든다"
반복되는 일과 개인적인 힘든 일을 겪고 회의에 시달리던 30대 초반의 MBC 최별 PD는 자신 만의 ‘리틀 포레스트’를 꿈꾸고 전 재산 4500만원으로 전라북도 김제의 한 시골 마을에 폐가를 사들였다. 보통 사람이라면 무력감에 지칠 법도 한 상황이지만, 최 PD는 오히려 이 무력감을 이겨낼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 나섰다.
아주 시골에 눌러앉으려던 건 아니었다. ‘시골에 집이 하나 있으면 서울살이가 쉬워질까’하는 생각으로 충동적으로 시골집을 사들였던 것이다. 그러나 워낙 오래 된 집이다 보니 예상치 못하게 공사가 커졌고, 서울 도심의 전셋집도 처분해야 했다.
최 PD는 방송사 PD라는 이점을 살려 시간과 자본에 있어서 일반 사람들 보단 자유로웠다. 마침 회사도 이 시골살이를 유튜브 콘텐츠로 만들겠다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그렇게 유튜브 ‘오느른’(오늘을 사는 어른들)이 탄생했다. 그의 시골살이 브이로그는 개설 1년여 만에 28만여 구독자를 모았다.
“속았어요. 배신감까지 들더라니까요”
최 PD에게 첫 시골살이가 어땠냐는 질문을 내놓자마자 돌아온 대답이다.
‘슬로우 라이프’를 추구하며 시골살이를 영상으로 담아내는 유튜브 ‘냥숲’ ‘해그린달’처럼 예쁜 영상을 담아내고자 하는 ‘로망’이 있었다. 그 로망은 시골집 공사와 함께 배신감으로 다가왔다. “방송사 PD라는 사람이 영상에 속은 거죠. 영상 뒤에 현실을 못 보고…”라며 고개를 가로젓는 그였다.
실제로 ‘오느른’에 담긴 영상들 속의 현실은 노동, 또 노동이었다. 분명 그가 꿈꾸던 ‘리틀 포레스트’는 아니었다. 오랜 기간에 걸친 집 공사가 마무리된 듯 했지만 난데없이 물이 새고, 전기와 인터넷 설치도 수일이 걸렸다. 완벽히 집이 완성된 건 지난해 11월이었다. 그런데 또 그는 사무실 겸 카페 용도로 김제 죽산면 거리의 상가 건물을 매입하고 또 한 번 공사에 돌입했다. 조금의 쉴 틈도 용납하지 않는 최 PD의 영상에 오죽했으면 “이제 좀 쉬라”는 구독자들의 요청도 잇따랐다.
“아직은 시행착오를 겪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살다보니 느낀 것들이 있었거든요. 처음엔 사람이 없어서 좋았는데, 정말 사람이 없어요. 가끔은 정말 외롭더라고요. 당장 옆집 할아버지가 안 보이면 살아 계시는지 확인해야 하는 일을 겪었죠. 순간 평화로웠던 분위기가 적막으로 한 번에 반전이 되더라고요. 또 제일 친한 옆집의 1호 할아버지네 어머니가 아프셔서 병원에 모셔다 드리기도 했고요. 동네친구들과 지내는 걸 구독자들이 좋아하시는데 이런 일을 겪고 나니 ‘이게 힐링이라고 할 수 있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람들이 불편하거나 부담스러워하지 않은 선에서 현실을 보여주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콘텐츠는 2021년 한국PD대상 디지털부문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최 PD는 “아직도 왜 이 채널을 보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래서 마련한 것이 바로 죽산면의 카페 ‘오느른 오,피스’였다. 이 카페는 단순히 음료를 마시는 공간은 아니다. 동네 어르신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 또 구독자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의 의미다. 손님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이곳에서 제공되는 음식에 대한 페이인 셈이다.
“사실 이 채널이 잘 될 거라곤 생각 안 했거든요. 잔머리였죠(웃음). 공식적으로 내 집을 고칠 시간을 벌면서 돈도 벌고, 동시에 콘텐츠도 만들고. 1석2조 아니, 1석3조인가요? 하하. 그런데 방송만 하다가 유튜브를 하니까 흥미롭더라고요. 이젠 책임감까지 생겼어요. 그러다 보니 구독자들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지더라고요. 왜 제 채널을 보는지 직접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컸어요. ‘어른이’(구독자 애칭)들을 만나면서 ‘우연’을 확장시키려는 개념이죠. 실제로 많은 분들이 찾아와 주시는데,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또 다른 이야기들이 쌓여가고 있는 것 같아요. 우연의 확장, 그게 저희의 세계관이도 하고요. 처음부터 생각을 해보면, 아무것도 없던 동네에 집이 생기고, 사무실·카페가 생긴 것처럼요.”
‘오느른’ 채널엔 최 PD의 아버지도 등장한다. 딸의 과감한 결정에 한숨을 내쉬고, 등을 돌리던 아버지였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보다 김제의 시골집을 아끼고 딸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는 사람 또한 아버지다. 아버지를 불특정 다수가 보는 콘텐츠에 노출한다는 것이 처음엔 걱정도 됐지만, 이 역시 다른 세대의 또 다른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참 신기한 게, 제가 PD가 되고 싶었던 것도 이런 이유였다. 막연하게 피디가 되면 이런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해야지 생각했어요. 다큐멘터리 같은 류의 방송으로 꾸려질 거라고 생각했죠. 막상 ‘오느른’을 시작할 때만해도 몰랐는데, 하다 보니까 내가 그걸 하고 있더라고요. 다만 저는 MBC에서 월급 받는 PD니까 여기서 먹고 사는 걱정을 안 하지만, 대부분 청년이 농촌에 오면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크잖아요. 진정성 있지만 장난치지 않는 것처럼 접근하려 노력하고 있어요.”
누구나 준비가 완벽히 된 채로 어른이 되는 경우는 없다. 사회생활, 조직적 생활을 통해 스스로를 단련시키면서 조금씩 어른이 되어간다. 그러나 이런 사이클 속에서 살아가다 보면 대부분이 회의를 느끼게 된다. 물론 사람마다 이 과정을 넘기는 방식은 모두 다르다. 최 PD가 이 과정을 넘기는 방법으로 택한 건 ‘삶의 균형’을 찾는 것이었다.
“저도 스스로를 내모는 성격이었어요. 그런데 시골로 떠나면서 제 자신을 몰아치는 구조에서 벗어나게 된 거죠. 삶의 균형을 찾는 것이 저에겐 ‘쉼’의 의미와도 같아요. 서울로 언제 다시 돌아갈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돌아가게 됐을 땐 지금 보단 성숙하게 살아갈 수 있는 훈련이 됐다고 할까요?”
영상 속에서 최 PD의 바쁜 일상에서도 힐링은 있었다. 오히려 현실감이 있어서 더 와 닿는 듯하다. 그 역시 ‘슬로우 라이프는 부지런해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 부지런함만 있다면 누구든 영화 속 ‘리틀 포레스트’까진 아니어도, 자신만의 ‘슬로우 라이프’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부지런함이 건강한 삶의 습관을 이끌어준다고 생각해요. 내일 아침에 샐러드를 먹고 싶으면 그 재료들을 미리 준비해 놔야 하잖아요. 농촌에서 지내는 분들을 보면 별 것 안 하는 것 같아요 쉼 없이 움직이세요. 제에겐 그 모습이 충격이었어요. 다만 그 부지런함이 서울에서의 압박에 의한 것과는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오느른’ 채널을 통해 하나씩 만들어 나가는 것처럼, 이 곳에서의 생활도 하나씩 익숙해질 때마다의 그 느낌이 좋아요. 처음엔 키우다가 먹지도 못하고 버린 것들이 많아요. 힘들더라고요. 돈을 벌어서 내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 외에도 직접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것들이 더 큰 기쁨을 주는 것 같아요”
“아, 슬로우 라이프 정말 추천하지만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건, 집은 절대 함부로 사지 마세요. 하하.”
① 예능으로 느끼는 ‘일상 탈출’의 판타지
② 코로나19 영향…다시 찾는 ‘느림의 미학’
③ 전 재산 털어 폐가 산 MBC 최별 PD의 ‘시골’ 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