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서적 판매량, 코로나19 이후 다시 상승세
냥숲·오느른 등 슬로우 라이프 관련 유튜브 인기
#악기를 전공한 39세 A씨(여)는 중학교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 매일 같이 연습실과 집을 오가며 바쁘게 보냈고, 졸업을 한 이후에도 전국구로 공연을 다니느라 눈코 뜰 새 없었다. 그러던 중 지난해 코로나19 여파로 공연을 할 수 없는 환경이 됐다. 의도치 않은 휴식은 ‘여유로운 삶’ ‘느림의 미학’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지난해부터 시골의 한 마을에 정착해 올해 초부터 직접 키우는 작물을 활용한 음식을 파는 식당을 열었다. 그는 “손님이 많으면 많은 대로, 없으면 또 없는 대로 지금의 삶이 너무 소중하다”고 만족감을 보였다.
국내에서 슬로우 라이프가 주목을 받은 건, 2010년 초부터였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여유로움을 추구하는 이들이 조금씩 생겨났고 2010년 중반 슬로우 라이프에 대한 서적들과 TV 콘텐츠들이 다수 등장하면서 대중적 수요도 대폭 증가했다. 2010년 후반엔 조금씩 관심이 꺼졌지만 지난해 코로나19 이후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다시금 슬로우 라이프가 고개를 들고 있다.
도서 판매량에서도 이런 추세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국내 온라인 서점 예스24에서 ‘슬로우라이프’ ‘심플라이프’ ‘미니멀’ ‘자급자족’ ‘오프그리드’ 등의 키워드로 지난 5년간 판매 성장률을 집계한 결과 2016년에 전년 대비 해당 분야의 도서 판매량이 191.2% 대폭 성장을 이뤘지만, 이후 매년 큰 폭으로 판매량이 감소했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사회적인 변화가 있었던 2020년엔 전년 대비 85.0% 상승했다. 올해 상반기(1~6월) 판매량도 전년 동기 대비 3.6% 소폭 상승한 수치다.
예스24 관계자는 “2016년 북유럽식 슬로우 라이프를 지향하는 ‘라곰’이나 ‘휘게’, 미국의 ‘킨포크’ 등 키워드가 크게 유행했다. 그 시기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가 흥행하면서 라이프 스타일 키워드의 도서 판매가 정점을 찍었다. 이후엔 관련 도서 출간도 저조했고, 판매량도 하락 추세였다가 2020년 코로나19를 계기로 거리두기가 일상화됨에 따라 개인의 삶의 방식이나 머무는 공간에 대한 간소화 ‘미니멀 라이프’가 다시금 주목을 받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지난해와 올해, 슬로우 라이프 등 라이프 스타일과 관련된 책들이 다수 출간됐다. 올해 상반기만 해도 이초아 작가의 ‘하나를 비우니 모은 게 달라졌다’, 단단 작가의 ‘매일매일 채소롭게’, 포스터 헌팅턴 작가의 ‘오프 그리드 라이프’, MBC 최별 PD의 ‘오느른’ 등을 포함해 14권의 관련 도서가 출판됐다.
유튜버들의 활동도 두드러진다.
김태리·류준열 주연의 영화 ‘리틀포레스트’(2018)처럼, 한적한 시골에 터를 잡고 직접 식재료를 구하고, 요리를 하고, 반려동물과의 하루를 그리는 등 여유로운 일상을 공유한다. 얼굴도, 목소리도 나오지 않는 조용한 영상에서 들려오는 도마 위 칼질 소리, 보글보글 끓는 찌개소리, 조용한 바람 소리가 네티즌의 귀를 간질이고 힐링을 안긴다.
요리·인테리어 등을 소재로 아기자기한 시골집의 일상을 담는 ‘냥숲’(70만명), 말 한마디 없이 시골의 소리를 영상에 담아내는 ‘키미’(구독자 64만명), 시골집을 고쳐 살고 카페·오피스를 마련해 시골살이에 나선 MBC 최별 PD의 유튜브 ‘오느른’(28만명) 등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이들의 일상은 누군가에겐 그들이 꿈꾸는 ‘리틀포레스트’가 된다.
무조건 귀농을 해야만 ‘슬로우 라이프’를 살 수 있는 건 아니다.
유튜브 ‘허챠밍’(14만.6만명)은 서울에서도 잘 먹고 잘 살면서도 따뜻한 힐링을 담아내는 채널이다. 직접 키운 작은 화분 속 허브로 음식을 만들고, 직접 뽑은 면으로 파스타를 만들기도 한다. 자신이 만든 음식으로 친구들과의 단란한 한 때를 담은 영상은 ‘서울판 리틀 포레스트’의 느낌을 주기도 한다.
① 예능으로 느끼는 ‘일상 탈출’의 판타지
② 코로나19 영향…다시 찾는 ‘느림의 미학’
③ 전 재산 털어 폐가 산 MBC 최별 PD의 ‘시골’ 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