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운용 '안정성' 최우선 주장
예적금-ETF, 자산편입 필수조건
"도입 전 가입자 연금 교육 우선"
은행과 보험업계는 퇴직연금의 안정성이 최우선이라는 입장이다. 퇴직연금 자체가 노후대비를 위한 상품인 만큼 원금손실 없이 만기까지 안정적으로 운영되는 것이 최우선 가치인 만큼 공격적인 투자를 진행하는 디폴트옵션 도입에 부정적이다. 업계 일각에선 디폴트옵션이 도입되기 위해서는 예·적금 등 원리금보장형 상품은 물론이고 주가연계펀드(ETF)까지 운용자산에 포함시키는 방안이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28일 생명·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기준 보험사들의 퇴직연금 수입보험료는 4조7211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5조7048억원 대비 17.2%(9837억원) 감소한 규모다. 지속해서 하락하고 있는 퇴직연금 수익률이 고객이탈을 부추기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확정급여(DC)형 기준 보험사 평균 수익률은 3.44%로, 은행 수익률인 2.71% 보다 높지만 증권사 수익률 9.69% 보다는 낮은 상황이다. 수익률이 낮은 이유는 저금리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원리금 보장 상품의 편입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은행권도 얘기는 다르지 않다. 개인형퇴직연금(IRP) 시장에서 증권사의 점유율은 지난해 말 21%에서 올 1분기 24.4%로 3.4%p 상향됐다. 같은 기간 은행권 비중은 69%에서 67%로 2%p 하락한 것과 대비된다. 아직 걱정할만한 수준의 격차는 아니지만 업계에서는 증권사로 머니무브가 시작되고 있는 근거로 해석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논의 중인 디폴트옵션이 도입된다면 은행·보험사 퇴직연금 시장에 다른 지각변동이 찾아올 것이란 우려가 생겨나고 있다. 특히 증권업계로의 고객 이탈이 심화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아울러 디폴트옵션이 도입되면 금융 지식이 부족하거나 이직이 잦은 근로자는 상대적으로 손실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퇴직금 인출 시기에 수익률이 나쁘면 원금마저 잃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은행·보험업계는 퇴직연금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디폴트옵션을 도입할 경우 원리금보장형 상품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고객에게 부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소극적인 자산운용을 원하는 고객이 퇴직연금 운용지시를 깜빡하고 있다가, 금융사의 자의적인 공격적인 투자로 인해 손실을 입을 경우 민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이 같은 주장이 확산되면서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디폴트옵션 대상에 '원리금 보장 상품'을 선택할 수 있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한 상황이다.
아울러 은행업계에서는 IRP고객 이탈을 막기 위해 퇴직연금에 ETF를 운용자산으로 포함시킬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까지 하고 있다. 실제로 국민은행을 비롯한 일부 은행들은 지난 3월 퇴직연금 ETF 편입 관련 비조치의견 요청을 금융당국에 전달했다. 이와 관련해 금융위는 최근 법령 해석상 은행들의 DC·IRP 계좌에 ETF 위탁매매 업무는 집합투자증권 투자중개업 범위에 포함된다고 볼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정원석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퇴직연금을 디폴트옵션 중 실적배당형 위주로 운용한다면 높은 수익률을 거둘 수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제도 실행으로 인한 손실 가능성에 대한 가입자를 대상으로 한 교육이나 상품 선택 시 이해상충 문제 해결 방안 등이 우선 해결되지 않으면 금융사들이 소비자보호에 대한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