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선언은 '공허한 선언'"
'한반도 완전한 비핵화' 표현서도
韓美 입장차 가능성
한국과 미국이 대북협상에 활용할 핵심 개념과 용어를 서로 다르게 정의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협상 당사자 간 해석 여지를 남겨두는 외교 관례를 감안하더라도 한미가 '완전히 조율된 대북정책'을 펴기로 한 만큼, 향후 교통정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지난 21일 정상회담을 통해 판문점 선언·싱가포르 선언 등 기존 남북 및 북미 간 합의를 존중하기로 했다. 특히 한미 정상의 공동선언에 명시된 판문점·싱가포르 선언의 경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직접 서명했다는 점에서 북한 역시 높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다.
다만 싱가포르 선언이 '상징적 선언'에 불과해 해당 선언을 존중한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한미가 컨센서스를 이룰 필요가 있다는 평가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지난 25일 윤보선민주주의연구원이 주관한 학술회의에서 "판문점 선언은 내용이 아주 구체적이라 이견이 없을 것"이라면서도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평화체제로 구성되는 싱가포르 선언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미국 측 인사들과 이야기해보면 싱가포르 선언을 '공허한 선언(empty declaration)', 즉 구체적 내용이 없는 선언으로 평가한다"며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과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가 무슨 의미인지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나 북한이 원하는 '새로운 북미관계'의 개념은 대북 적대시 정책 폐기, 종전선언, (북미)수교일 것"이라면서도 "과연 미국이 거기까지 생각하고 있을지 불명확하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관련해서도 남북이 생각하는 개념은 지난 1992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일 가능성이 높다며 "과연 미국이 생각하는, 싱가포르 합의에 나오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도 그러할까(하는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바이든 행정부 아시아 정책을 총괄하는 커트 캠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 조정관이 인터뷰를 통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남북 모두 비핵화해야 한다'는 정도로 간단하게 정의했다"며 "미국이 (북한이 요구하는)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고, 북한만 (핵을) 없애주면 한반도 비핵화가 완성된다는 개념을 가지고 싱가포르 선언을 받은 게 아닌가(하는 의문이 든다)"고 밝혔다.
앞서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지난 25일 브리핑에서 "한반도 비핵화는 지난 1992년 남북한 간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했을 때부터 사용했던 용어"라며 "2018년 4월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의 의미를 분명히 했다. 남북 정상은 한반도를 핵 위협과 핵무기가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기로 약속한 바 있다"고 했다.
정 장관은 "싱가포르 선언에서도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목표로 분명하게 설정했다"며 "북한이 말하는 '한반도 비핵지대화'와 우리가 정부가 말하는 '한반도 비핵화'의 큰 차이는 없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북한이 주장하는 '조선반도(한반도) 비핵지대화'는 미국이 한국에 제공하는 핵우산 폐기 등을 포함하는 개념이라 문 정부의 '자의적 해석'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북한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발표한 논평에서 "조선반도 비핵화란 우리(북한)의 핵억제력을 없애는 것이기 전에 '조선에 대해 미국의 핵 위협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라고 하는 게 제대로 된 정의"라고 밝힌 바 있다.
같은 맥락에서 김 교수는 싱가포르 선언에 담긴 '평화체제 구축'과 관련해서도 "바이든 대통령이 한미동맹 약화로 이어질 수 있는 평화체제를 받아들일지 아직 불명확하다"고 말했다.
한반도 평화무드 조성 시 연합훈련 및 전략자산 전개 등이 제한될 여지가 있는 만큼, 중국 견제에 공들이는 바이든 행정부가 쉽게 동의하긴 어려울 거란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