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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정의 참견] 문대통령, 솔직했지만 솔직하지 못했다


입력 2021.05.12 07:00 수정 2021.05.12 09:02        고수정 기자 (ko0726@dailian.co.kr)

부동산 제외 방역·백신·경제 현안에 '자화자찬'

일부 장관 후보자 자격 논란에는 인사청문회 탓

기자회견 아닌 '토론'했던 노무현과 다른 행보

"지지 많다고 다 맞는 것 아냐"…낮은 자세 보여야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취임4주년 특별연설을 마친 후 질문을 위해 손을 든 취재진을 지목하고 있다.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4주년 특별연설과 기자회견에서 방역과 백신, 부동산, 검찰개혁 등 수많은 이슈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상세하게 밝혔다. 문 대통령의 '꼼꼼한 성격'이 답변에 묻어났고, 기자들의 질문을 놓치지 않기 위해 메모하는 대통령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행사가 예정된 시간보다 10분가량 더 진행된 뒤에야 종료된 걸 보면 문 대통령이 국민을 향해 많은 말을 하긴 한 모양이다.


그런데 행사가 종료된 후 오히려 더 찝찝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던 건, 문 대통령이 '솔직했지만 솔직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문 대통령 입장에서는 평소와 달리 소극적인 태도를 벗어나 허심탄회하게 입장을 밝힌 것일 테지만, 전체적인 발언 맥락을 놓고 보면 국민 공감대에는 한참 못 미쳤다. 실제 문 대통령은 경제 현실과 방역 관련해 자화자찬했고, '자격 논란'이 한창인 일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서도 변명으로 일관했다.


문 대통령의 말을 빌리자면 이렇다. '세계는 이미 우리나라를 모범 방역국으로 인정했고, 이를 기반으로 경제 상황도 코로나 이전으로 빠르게 회복하고 있다. 그런데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세력들이 찬물을 끼얹고 있다.' 문 대통령은 "우리는 국민을 믿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민들이 이뤄낸 이 위대한 성취를 부정한다거나 과소평가하는 그런 일은 절대로 안 될 일"이라고 했다. 국민은 힘들다고 신음하는데, 대통령은 계속 '성공적'이라고 얘기한다.


일부 장관 후보자의 자격 논란에 대해서도 "청와대의 검증은 완벽할 수 없다. 그런 기능을 갖고 있지 못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흠결보다는 능력 위주의 인사를 해야 하고, 차기 정부에서는 좋은 인재 발탁을 위해 무안주기식 인사청문회는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집권 초 '7대 인사 원칙'으로 높은 도덕성 잣대를 세웠던 문 대통령이 임기를 1년 남겨두고 돌변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야당에서 "국민과 같은 하늘 아래 산다는 게 의심스러울 정도의 인식 차이"라는 비판이 나올 법하다.


문 대통령은 14년 전인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의 비서실장으로서 노 대통령의 취임 4주년을 함께했다. 당시 노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 처음으로 인터넷 언론과 단독으로 취임 4주년 행사를 가졌다. 이 행사는 방송인 김미화 씨의 사회로, 데일리안과 프레시안, 오마이뉴스 등 한국인터넷신문협회 소속 언론과 패널·누리꾼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노 대통령은 준비해 온 답변 외에도 '이 자리에서 하고 싶은 말은 다 하겠다'는 듯 기자회견이 아닌 '토론' 방식으로 진행하자 제안했다. 노 대통령은 개헌과 진보 논쟁, 한미 FTA, 경제·민생 등 각종 현안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모두 답변하겠다는 의지를 보였고, 이에 행사는 종료 예정 시간(4시 30분)을 훌쩍 지난 5시 30분이 되어서야 끝났다.


당시 화제를 모은 노 대통령의 발언은 단연 지지율 관련이다. 노 대통령은 "지지가 낮은 대통령이 제기한 것도 옳은 것은 옳은 것이고 지지가 높은 대통령이 제기한 것도 틀린 것은 틀린 것이다. 그것이 민주주의"라고 했다. 당시 노 대통령의 지지율은 16%대(한국갤럽 기준)로 낮았다. 그는 지지율을 잃은 책임은 오로지 대통령에게 있다며 정치적 역량이 부족한 탓이라고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서 "대선에 관계없이 할 일은 하고 부당하게 공격당하면 반드시 해명할 것"이라고 끝까지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역대 대통령의 동 기간 기록 중 가장 높은 30% 중후반대다. 그래서일까. 문 대통령의 취임 4주년 행사는 자신의 기조를 국민에 주입하기 위한 설명회에 불과했다. 만약 문 대통령이 노 대통령처럼 잘못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과했다면, 기자회견 방식이 아닌 토론으로 국정 기조를 설명했다면, 국민이 진정으로 듣고 싶어 하는 답변을 했다면 어땠을까.


물론 '노무현의 길'은 따로 있고, '문재인의 길'도 따로 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임기는 이제 1년도 채 남지 않았다. 문 대통령의 말처럼 남은 임기 1년이 대한민국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만큼, 이제라도 '문재인의 길'에 변화를 줘야 할 때다. 지지율이 높은 대통령이 한다고 해도 틀린 것은 틀린 것이다.


"정치를 잘 알고 가치를 말하고 정책을 말하는 사람이, 가치 지향이 분명하고 정책적 대안이 분명한 사람이, 특히 정치를 좀 알면 좋겠다." 노무현 대통령이 생전에 꼽은 차기 대통령의 조건이다.

고수정 기자 (ko0726@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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