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중앙·지방정부(D1) 부채만 나랏빚 개념
선진국, 公기관·기업 부채도 함께 산출·관리
"공공기업+공기업 부채 현금주의에 가까워"
최근 일부 언론에서 "나랏빚이 2000조원에 육박하고 사상 처음 국내총생산(GDP)을 추월했다"고 보도하자 지난 7일 기획재정부가 강한 어조로 반박에 나섰다. '연금충당부채를 포함한 전체 국가부채 2000조원을 나랏빚이라고 표현하는 건 매우 부적절하며, 나랏빚은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상환의무가 있는 국가채무(D1) 846조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나랏빚=국가채무' 산식은 기재부의 단골 메뉴다.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국가 재정건전성을 가늠하는 지표가 됐고, 다른 나라와 재정 상황을 비교할 때에도 항상 '국가채무'가 등장한다. 최근 홍남기 부총리도 "GDP 대비 국가채무 비중은 그 어느 나라보다 건전하고 여력이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재정학자들은 이러한 기재부 표현은 '눈 가리고 아웅' 격이라고 지적한다. 국가가 실질적으로 떠안는 전체 부채에 비하면 국가채무는 빙산의 일각이다. 한국은 중앙정부와 지자체 비중에 버금갈 정도로 공공기관·공기업 비중이 상당하다. 이에 공공기관·공기업 부채가 국가 전체 재정 운용에 타격을 줄 정도로 상당한 수준인데도 나랏빚 개념에서 제외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선진국, IMF 지침 따라 나랏빚 관리…한국, 公기관·기업 부채 배제
우리나라의 이같은 협소한 국가부채 규정은 세계적 추세를 역행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재정통계매뉴얼(GFSM)을 따라 D1(중앙·지방정부 부채 및 기금), D2(비영리 공공기관 부채), D3(비금융 공기업 부채) 등에 입각해 각국 부채 규모를 작성해 보고토록 하고 있다. OECD 등 선진국들은 여기에 D4(사회보험·연금·보장제도 등)까지 적용해 부채 관리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한 경제 전문가는 "한국만 유독 D2·D3·D4를 배제한 채 D1만 나랏빚으로 규정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공공기관과 공기업 비중이 높은 만큼 IMF 재정통계매뉴얼을 따라 공적부채에 D2~D4 개념을 적극적으로 적용해 부채 관리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IMF 재정통계매뉴얼을 따르면, 우리나라에 D2 개념을 적용하면 기존 D1에 중앙정부 소속 222개 비영리 공공기관 및 지방정부 소속 95개 공사·공단의 부채가 추가된다. D3에는 D2에 167개 비금융 공기업 부채가 더해진다. 이같이 공공기관과 공기업 비중이 유난히 높은 우리나라는 그 빚 또한 상당하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해인 2017년 국가채무(D1)는 660조원이지만 D2와 D3는 각각 735조원, 1044조원으로 급증했다. 이듬해인 2018년에도 D1이 680조원인데 비해 D2와 D3는 각각 759조원, 1078조원으로 늘어났으며 2019년엔 D2와 D3가 810조원, 1132조원으로 급증했다.
특히 탈원전 정책에 따른 에너지 계열 부채가 두드러졌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한국수력원자력, 한국남동·중부·서부·남부·동서발전 등 6개 발전공기업의 최근 3년간 부채가 13조8900억원가량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공무원 땅투기로 물의를 빚었던 LH도 2018년 12조원대이던 부채총액이 지난해 반기 기준 13조원을 넘어섰다.
재정 전문가 "발생주의 현금주의, 국가부채 적용 오류"
또한 기재부는 국가재무제표상 부채는 '발생주의'에 입각해 작성했기 때문에 '현금주의'의 국가채무(D1)와는 성격이 다르다는 입장이다. 현금주의는 현금이 실제 오간 시점을 기준으로 회계에 반영하는 반면 발생주의는 거래가 발생한 시점을 기준으로 한다. 이에 발생주의는 장기충당부채, 미지급금 등도 포함된다.
반면 재정학자들은 기금을 제외한 공공기업+공기업 부채는 발생주의 개념과 무관하고 오히려 현금주의에 가깝다며 반박하고 있다.
한 재정학자는 "기재부가 채무(현금주의)와 부채(발생주의)로 다른 표현을 썼지만 D2·D3에 새롭게 추가된 내용 중 기금을 제외한 공공기관, 공기업 부채는 실질적으로 D1과 동등하게 나랏빚으로 봐야한다"며 "구태여 현금주의와 발생주의, 광의와 협의로 국가부채를 나누어 적용한 건 부채 규모를 축소시키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보여진다"고 해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