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회생절차 돌입 후 인수 적임자 찾기 나설 듯
인수 후 신차투자 등 선순환 위한 자금수혈 여력 관건
쌍용자동차의 법정관리행이 임박하면서 법원 회생절차 이후 쌍용차의 운명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미 개발을 완료한 쌍용차 최초의 전기차 E100 등 신차 출시를 비롯, 앞으로 완성차 업체로서 정상적인 기능을 할 수 있을지 우려가 크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회생법원은 이르면 이번 주 초 쌍용차에 대한 회생절차 개시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앞서 법원은 지난 1일 쌍용차 채권단에 회생절차 개시 여부를 묻는 의견 조회서를 보냈고, 주채권은행인 산은은 8일 법원에 의견을 회신했다.
의견서에는 회생절차 개시 동의 여부에 더해 관리인·조사위원 선임 사안 등에 대한 채권단의 견해가 담겼다.
산은 내부적으로는 회생절차 돌입이 불가피하다는 기류가 강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의견서가 제출됨에 따라 법원의 결정도 회생절차 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크다.
쌍용차의 유력 투자자였던 HAAH오토모티브는 법원이 요구한 지난달 31일까지 투자의향서를 보내지 않았으며 아직까지 진전은 없는 상태다. 이런 가운데 HAAH의 투자 유치를 주도해 온 것으로 알려진 예병태 사장이 사퇴하면서 사실상 HAAH의 투자는 물 건너 간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회생절차를 통해 쌍용차가 생존하려면 인수·합병(M&A) 추진이 필수적이다. 기업계속가치보다 청산가치가 클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라 파산을 면하려면 새로운 투자자가 나타나야 하기 때문이다.
쌍용차에 5000명에 육박하는 직접고용 인력이 딸려 있고, 협력사까지 감안하면 수만 명의 고용과 연관돼 있음을 감안하면 법원은 청산보다는 공개 입찰을 통해 인수 적임자를 찾는 작업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HAAH는 아직 투자 의사를 철회하지는 않은 상태다. 그동안 HAAH는 쌍용차 인수시 떠안아야 하는 3700억원 규모의 채권에 대한 부담으로 투자 결정을 미뤄온 것으로 알려졌던 만큼 구조조정과 채권탕감 등을 통해 인수 부담이 줄어든다면 다시 적극적인 모습을 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HAAH외에 국내 전기버스 업체 ‘에디슨모터스’ 등 2~3개 업체가 쌍용차 인수에 나설 가능성도 언급되고 있다.
어느 쪽으로 인수되건 쌍용차가 지금의 고임금·대규모 인력 체제로 유지되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 쌍용차는 그동안 임금 동결과 성과급 반납 등으로 인해 현대자동차나 기아와 같은 메이저 완성차 업체들에 비하면 임금 수준이 낮지만, 15분기 연속 적자를 내고 완전자본잠식에 빠진 상태라 어떤 식으로건 임금 등 고정비용을 줄여야 하는 형편이다.
2009년에 이어 또 다시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이 이뤄질 가능성도 점쳐진다. 인력 구조조정을 최소화하려면 큰 폭의 임금 삭감으로 고통분담을 해야 한다. 쌍용차 노조는 그동안 회사 정상화를 최대한 협조한다는 방침 하에 각종 자구노력에 동참해 왔지만 큰 폭의 임금 삭감까지 수용할 지는 미지수다.
더 큰 문제는 ‘신차개발투자→판매→수익 확보를 통한 재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다시 만들 수 있을지 여부다.
완성차 업체들은 지속적으로 신차를 내놓아야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현대차와 기아의 경우 통상 5년 주기로 풀체인지(완전변경) 신차를 내놓고 그 사이 2~3년 사이에 페이스리프트(부분변경) 모델을 출시해 소비자 취향 변화에 대응한다.
중견 완성차 업체들의 경우 현대차·기아의 모델체인지 주기를 따르긴 벅차지만 길어도 7~8년 주기로는 구형을 밀어내고 신차를 내놓아야 한다.
특히 쌍용차는 완성차 라인업이 티볼리, 코란도, G4렉스턴, 렉스턴 스포츠 등 4종에 불과해 거의 매년 1종씩의 신차를 출시해 다른 모델들의 노후화에 따른 물량 감소를 보완해줘야 현상 유지라도 할 수 있다.
쌍용차는 현재 자사 최초의 전기차 E100(프로젝트명)을 개발해 놓은 상태다. 당초 올해 초 출시될 예정이었으나 경영난으로 P플랜(단기 법정관리·Pre-packaged Plan) 신청에 나서는 등 혼란 상황을 고려해 출시를 미루고 있다.
이미 시장에 현대차 아이오닉5와 기아 EV6, 테슬라 모델Y 등이 잇달아 출시되면서 전기차 보조금 조기 소진이 예상되고 있어 쌍용차가 뒤늦게 E100을 내놓는다고 해도 높은 의미 있는 판매량을 기대하긴 힘들다.
쌍용차는 지난 6일 더 뉴 렉스턴 스포츠&칸을 출시했으나 이 차종은 페이스리프트 모델이라는 점에서 판매량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현 상황에서는 신차 투입으로 사업을 이어갈 만한 동력이 소진된 상태다. 신차 개발에는 3000억원가량의 비용이 투입된다. 새로운 투자자가 쌍용차 인수 이후에도 신차 개발 선순환 재진입을 위한 마중물을 지원해 줘야 앞으로 정상 운영이 가능하단 의미다.
하지만 연 매출이 250억원에 불과한 HAAH를 비롯해 국내에서 거론되는 인수 의향 업체들도 인수 자금까지는 어떻게 마련하더라도 쌍용차의 ‘돈맥경화’까지 해결해주기엔 버거워 보인다.
쌍용차 법정관리 이후 유력 인수자로 떠오를 것으로 보이는 에디슨모터스의 경우 기존 전기버스 사업을 통해 확보한 기술력을 앞세워 전기 승용차 사업에 진출한다는 방침으로, 쌍용차를 인수한다면 자사가 개발한 전기차를 쌍용차에 위탁생산을 맡기는 방안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방식으로라도 생존이 가능하다면 다행이지만, 독자적으로 신차를 개발해 판매하던 기존 완성차 업체로서의 사업구조에는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