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종 특성상 납기 급할땐 잔업·특근 필수…근로시간 제한 어려워
중대재해법, 사고발생시 기업대표 구속…협력사 기술력 증발 우려
올해부터 50인 이상 300인 미만 규모의 중소기업도 주 52시간제가 전면 실시되면서 조선소들의 생산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지난해 연말 국내 조선 3사들의 수주행진으로 조선소에 모처럼 활기가 되돌아왔지만 규제에 발목이 잡혀 경쟁력을 잃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8일 영국의 조선·해운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은 전세계 선박발주 1924만CGT(표준화물선환산톤수) 중 819만CGT를 수주해 중국을 제치고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올해도 코로나19로 지연된 잠재 수요 회복, 전 세계 환경규제 강화에 따른 친환경 선박 수요 증가 등으로 수주가 잇따를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그러나 조선업 현장 한편에서는 시름이 깊어지는 분위기다. 주 52시간 제약이 걸린 상황에서 수주가 한꺼번에 몰리면 납기일 준수가 어렵기 때문이다. 조선업은 발주처의 인도 일정을 반드시 준수해야 하고 이를 어기면 거액의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
한국 조선업 전체 생산의 70%는 중소 협력사들이 담당하고 있으며 근로자들은 평균 주 60시간 이상을 근무해 왔다. 주 52시간제 적용 확대가 광범위한 여파를 미칠 것으로 보이는 부분이다.
조선소는 바닷가에 위치해 있고 대부분의 작업이 야외에서 이뤄진다. 이 탓에 우천, 태풍, 혹서기, 혹한기에는 부득이하게 일하지 못하고 밀린 공정을 특근이나 잔업으로 만회해야 하는 돌발 상황이 비일비재하다.
아울러 일감 기복이 심하고 선급사의 요청 변경 등 작업 변수가 많아 근로시간을 사전에 예측하는 것이 어렵다. 경직된 근로시간 규제 하에서는 납기를 지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하소연이 잇따르는 이유다.
주 52시간제 적용 시 산재사고가 증가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작업시간은 줄지만 납기일은 맞춰야 하는 탓에 한정된 공간에 최대한 많은 인원을 투입하는 것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특히 산재 사망사고 시 기업 대표를 구속한다는 내용을 담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까지 적용될 경우 중소 협력사들의 부담은 더욱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대표이사가 곧 오너인 중소기업은 사고가 발생하면 대표이사가 구속됨으로써 사실상 문을 닫는 처지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지난 수십 년간 쌓아온 기술 경쟁력이 상실되는 것이다.
임금 감소에 따른 인력유출 심화도 우려된다. 황경진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조선업종 근무자 이직의 가장 큰 이유가 연봉인데 근로시간이 줄면 연봉도 줄면서 인력유출이 가속화될 것"이라며 "잦은 인력교체로 기술 노하우 축적이 어렵고 경쟁 국가인 중국 등으로 핵심 기술자들이 대거 유출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석주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상무는 "장시간 근로를 개선하자는 취지는 공감하지만 조선업의 특성을 고려해 핀셋형으로 제도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며 "특별연장근로 활용성 확대,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등의 연착륙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