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극장 나무와 물, 코로나19 사태 이후 첫 소극장 폐관
"정부의 지원대책, 소극장까지 효과 미치지 못해"
올해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장기화는 의미 있는 문화 공간들을 다수 빼앗아 갔다. 공연장과 영화관, 대학로 소극장들까지 하나, 둘 들려오는 폐관 소식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오랜 기간 대중과 함께 했던 문화 공간들이 사라지게 된 과정과, 이들 공간이 가진 의미를 되짚어본다. -편집자주
2020년은 문화체육관광부가 1991년 이후 29년 만에 지정한 ‘연극의 해’다. 연극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촉구하고 침체된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오히려 최악의 한 해를 겪고 있다. 수많은 연극인이 무대에 서지 못한 채 생존을 위협받고 있고, 끝까지 버텼던 공간들도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했다. ‘연극의 해’는 연극인들에게 더 없이 잔인했다.
소극장 ‘나무와 물’은 이제 더 이상 문을 열지 않는다. 2003년 12월 약 150석 규모로 문을 연 이 극장은 이후 쾌적한 관람을 위해 객석 수를 100석 규모로 줄여 공연을 올려왔다. 개관 초기 ‘기차’ ‘줄리에게 박수를’ 등의 연극을 선보였고, 극단 차이무의 ‘슬픈 연극’ 등을 초연했다. 정유란 대표가 공연을 운영하기 시작한 2013년 이후에는 연극 ‘도둑맞은 책’ ‘구름빵’,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 등의 공연을 올려왔다.
기존에도 넉넉지 못했던 수입이었지만 올해 2월부터 코로나19로 공연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그나마 조금씩 들어오던 수입마저 끊겼다. 월세를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이 되자 결국 지난 4월 폐업을 선언했다. 공식적으로 이 극장은 5월 1일 폐관했다. 정 대표는 “2월부터 수입이 1원도 들어오지 않는 상황에서 매달 내야 하는 월세를 감당하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나무와 물’은 이번 코로나19 사태 이후 대학로 소극장이 문을 닫는 첫 번째 사례였다.
정 대표는 극장을 정리하면서 “겨우 몸만 나오는 상황”이라고도 말했다. 철거비와 폐기 비용 등 건물 원상복구에 사용되는 금액과 밀린 임대료 등을 보증금으로 해결해야 했다. 꾸준히 공연을 올리면서도 적자를 면치 못해왔던 건, 잘 알려져 있듯 기형적으로 높은 대학로 지하 임대료 때문이다. ‘나무와 물’ 역시 ‘구름빵’처럼 관객의 호응이 큰 공연을 올리면서도 계속되는 적자를 감수해야 했다.
당시 정부가 내놓았던 코로나19 지원 대책은 소극장에 근본적으로 도움이 되지 못했다. 대관료 지원 사업 등 기초예술인 연극을 지키지 위한 지원책으로 나왔지만 이는 건물주를 위한 정책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적인 입장이었다. 예술인 긴급생활자금 융자 등 대책도 규모가 작은 극장이나 극단까지 그 효과가 미치진 못했다. 자력으로 공연을 이어가는 극단 관계자들에게 직접 지원이 가능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대학로 다른 극단도 상황은 비슷하다. 극단에 속한 한 배우는 “이전에도 오를 수 있는 무대가 많이 없었지만, 올해 2월부터는 사실상 공연이 멈춰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마냥 기다릴 수 없었다. 기존에는 연극과 아르바이트를 겸한 삶을 살았다면, 지금은 아르바이트가 주업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가 속한 극단은 물론이고 다른 극단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대학로에서 함께 꿈을 키웠던 많은 연극배우들을 무대가 아닌, 편의점, 공사현장, 물류창고에서 뛰고 있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고 상실감을 드러냈다.
‘나무와 물’에 이어 서울 종로5가의 50석 극장인 종로예술극장도 6월 문을 닫았다. 종로예술극장은 2011년 창단된 ‘극단 종로예술극장’의 독립 공간이다. 이 극단은 2014년 연극 ‘리더스’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자본의 독립에 대해 고민해왔다. 2018년 6명의 배우조합원이 중심이 돼 협업 전용관인 종로예술극장을 개관했다.
종로예술극장은 카페와 갤러리를 함께하는 방식으로 운영해왔지만 코로나19로 관객이 줄고 공연을 할 수 없게 되면서 임대료 등 지출을 감당할 수 없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성천모 극장장은 당시 SNS에 “‘종로예술극장’이 계획했던 모든 것을 멈추고 6월부터는 사랑하는 종로5가역의 이 공간에서 거리로 나서 이 뜻밖의 시대를 준비하려고 한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6월 이후에는 종로5가역 6번 출구의 낡은 건물 4층에 존재했던 ‘이상한 종로예술극장’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슬프지만 저희 극단은 이 불행의 시대에 관객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가치와 방식을 조금이라도 빨리 고민하고 만들어내는 것이 또 하나의 여행이라 여기게 됐다. 기쁜 마음으로 짧은 여행을 좀 다녀오겠다”고 덧붙였다.